광장지기가 읽은 만화책

도서: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그림 김예지(코피루왁), 성안당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요즘도 가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뭔가 압박을 당할 때면 소위 MB라고 불리는, 이제는 감옥에 있는 분이 떠오른다. 사실 책이나 말보다 더 강력한 확신을 주는 것은 경험이다. 그래서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고 몰아붙이면 말문이 막히고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해서 속으로는 너랑 나랑 같니?, 너나 잘하세요.’하고 속으로 뇌까린다. 그러나 경험이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수단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헤아리는 도구가 된다면 그보다 더 따뜻한 위로와 용기도 없을 것이다.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는 김예지 작가의 두 번째 만화이다. 첫 번째 만화 저 청소일 하는데요?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생각보다 행복합니다.’라며 엄마와 함께 씩씩하게 청소 일을 하는 젊은 청춘의 이야기다. 작년 여름쯤 읽었던 기억이 난다. 무척 재밌게 봤는데 혹시 콩나물 신문에 소개를 했는지 싶어 ‘*심더심이라는 폴더를 열어보니 글은 있지만 콩나물에 보내지는 않았다. 살짝 아쉽다. 그 글과 이어지면서 권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다. 이 글을 보시는 콩나물 독자님들은 김예지 작가의 저 청소일 하는데요?도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사실 젊은 친구들이 잘 하지 않는 궂은 청소 일을 묵묵히 하면서(그것도 엄마와 함께) 만화 작가로의 꿈을 향해 가는 발걸음이 멋지고 귀하다 싶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누구나 있고, 그럼에도 치열하게 고민하는 동시에 성실하게 살아가는 젊은 친구의 삶을 진솔하게 나눠줌으로 또래의 청춘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는 잔잔하지만 힘 나는 만화였기에 김예지 작가를 향해 엄지척을 했었다. 이번 만화도 그런 맥락에서 어떤 용기와 희망을 줄까 하는 기대를 하며 반가운 마음으로 펼쳤다. 그런데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청소 일을 하는 씩씩한 작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김예지 작가의 다행히도…』는 작가 자신이 겪은, 이제는 극복된, 허나 여전히 여진이 남아 있는 사회 불안 장애에 대한 만화다. 지독히 어두운 터널, 끝나지 않을 터널, 반복되는 터널을 걸어온 이야기다.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고통의 무게를 감히 알 수 없는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작가는 그냥 부끄럼 많고 소심한 성격으로 여기고 참고 견디며 학창 시절을 하고 직장 생활을 했지만, 불안으로 인해 더이상 사회생활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스스로 목숨을 버릴 지경까지 되었다. 자살을 고민했지만 다행히 자살에 실패하고 돌아온 저녁, 죽는 것이 너무 무서워 살기로 작정한다. 여전히 죽고 싶다살고 싶다가 뒤죽박죽이 된 상태이지만 어두운 방에 누워 손에 땀이 나도록 이불을 꽉 쥐며 용기를 내서 살기로결정한다.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기 시작하지만, 정신과 치료와 상담 과정에서 실망과 상처도 받고, 호전과 재발의 지난한 과정을 보낸다. 결국은 희망을 발견하고, 지금도 이겨내고 있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이제 작가의 말을 직접 들어보면 어떨까?

마음이 아파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냥 놔두면 저절로 좋아질 거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했습니다. 마음이 아플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요. 오랜 시간 그렇게 아픈 채로 가혹하게 살았습니다. 남들에게 별거 아닌 일이 나에겐 큰일처럼 다가올 땐 한없이 작아졌고, 일어날 힘조차 없었습니다. 나약한 제 모습에 좌절하고 고통받았습니다....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것도 이런 경험 덕분입니다. 나약하고 힘이 없을 때, 나만 그렇다고 좌절하던 시절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던 여러 작품을 만났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를 그들에게 이런 방법은 어때?”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읽기로 결심하신 분들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기 위해 퀴즈를 냅니다. 표지 사진을 자세히 보면 주인공의 팔뚝에 8자 비슷한 그림이 새겨져 있다. 정답은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알 수 있다. 저 문신은 어떤 의미일까? 나이를 뜻하는 숫자? 아니면 가능성의 무한함을 나타내는 무한대 표시? 팔자대로 살다 죽자는 의미? 아마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문신,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하나씩 새겼으면 싶다. 궁금하면 읽어보시라.

언덕위광장작은도서관 광장지기 남태일

*..심심할 때 읽으면 더 심심해지는 이야기, 마음에 마음을 더하는 이야기라는 의미로 광장지기 개인 폴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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