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의 예술가 24

사람을 뜻하는 영어단어 ‘person’은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가 그 어원이다. 그리스 시대 연극배우들이 썼던 가면을 뜻하는 페르소나는 배역(character)이란 뜻을 거쳐 사람을 뜻하는 person으로 발전했다. 흔히 인생을 두고 한 편의 연극과 같다는 표현을 쓰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어원상으로 보면 사람은 인생이라는 한 편의 연극 속에 등장하는 배우가 틀림없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 나오는 다음 대사는 영문학사 전체에서 최고로 꼽히는 명대사이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한 번쯤 인생이라는 연극 무대에 서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대사를 읊어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으랴?

그래서 그런지 연극이라는 장르는 다른 어떤 예술보다 더 살갑게 우리 가슴에 와닿는다.

극단 믈뫼 대표 임성주. 1997년부터 극단 믈뫼를 이끌어온 그는 부천 연극인으로서 마지막으로 할 일이 시립극단 창단이라고 했다.
극단 믈뫼 대표 임성주. 1997년부터 극단 믈뫼를 이끌어온 그는 부천 연극인으로서 마지막으로 할 일이 시립극단 창단이라고 했다.

연극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최고의 예술이었다. 곳곳에 원형 극장이 지어졌고 관객들은 연극을 통해 역사를 배우고 정치와 인생을 논했다. 당시 공연되었던 수많은 작품 중에 오이디푸스 왕을 비롯한 몇몇 작품들은 2,000여 년의 시간을 초월하여 지금도 세계 각국의 무대에서 활발하게 공연되고 있다.

영국의 자랑 셰익스피어는 약 44편의 희곡과 시집으로 최소 20억 권에서 최대 40억 권의 판매 부수를 기록하며 현대의 기라성같은 작가들을 뿌리치고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1953년 몽파르나스 소극장에서 초연된 후 세계 각국에서 공연이 계속되고 있는 불후의 명작이다. 이처럼 연극은 오늘날에도 문학과 음악과 무용이 결합된 최고의 종합예술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러나 영화나 티브이 드라마 같은 대중예술에 밀려 차츰 관객의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순이야 사랑해》 대학로 공연 장면. 이 작품의 성공으로 그는 부천 연극이 대학로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사진출처 - 다음블로그 늙은 청춘 사랑하는 집)
《순이야 사랑해》 대학로 공연 장면. 이 작품의 성공으로 그는 부천 연극이 대학로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사진출처 - 다음블로그 늙은 청춘 사랑하는 집)

우리 연극계의 현실과 부천 연극의 역사

서울의 대학로는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 연극의 메카로 자리매김하며 한때 소극장 수가 150여 개에 이를 정도의 호황을 누리기도 했으나 지금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연극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예전만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한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라는 직격탄까지 맞고 있으니 지금 연극계는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대학로의 현실이 이러할진대 지방 연극계의 어려운 사정은 말해 무엇하랴? 부천도 한때는 관객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릴 정도의 호시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88올림픽을 전후에 일어난 반짝 특수였고, 이후 사정은 갈수록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부천에는 현재 7~8개의 극단이 있으나 자기 자본으로 작품을 무대에 올릴 정도로 자생력 있는 극단은 한 군데도 없다.

부천 연극의 역사는 생각보다 깊다. ‘문화 불모지인 부천에 무슨 극단이 있었으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 역사는 19801111일에 창단한 극단 믈뫼와 궤를 같이한다. 극단 믈뫼는 경기도립극단 예술단장을 지낸 연출가 윤봉구 씨를 중심으로 창단되었으며, 1980년대 말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1997년 임성주 대표가 취임한 후 극단 믈뫼는 자체 소극장을 중심으로 연극과 뮤지컬, 실험극, 아동극 등의 다양한 공연을 선보이며 명실상부 부천 지역 최고의 극단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뿐만 아니라 극단 믈뫼는 대한민국 예술제 등 각종 경연 대회에 꾸준히 참가하여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2012년에는 대학로에 진출해 순이야 사랑해라는 작품으로 롱런에 성공하는 등 실력 있는 극단으로 중앙 무대에도 정평이 나 있다.

7호선 부천시청역 인근에 있는 극단 믈뫼 사무실에서 임성주 대표를 만났다.

2013 춘천국제연극제 출품작 극단 물뫼 《순이야 사랑해》. 순이는 16살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우리 시대의 아픔이다.
2013 춘천국제연극제 출품작 극단 물뫼 《순이야 사랑해》. 순이는 16살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우리 시대의 아픔이다.

경영학도에서 극단 믈뫼의 대표가 되기까지

올해로 연극 데뷔 37주년을 맞는 임성주 대표는 스스로 연극을 위해 태어난 사람, 뼛속까지 연극인이라고 말할 정도로 연극에 몰입되어온 삶을 살았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서울의 내로라하는 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던 그는 연극반에 가입하면서 송두리째 인생이 바뀌었다. 가족들 몰래 학교를 자퇴하고 연극과가 있는 대학에 다시 입학했다. 당연히 집안에서 난리가 났고 거의 쫓겨나다시피 집을 나가 극단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학교에 다녔다. 그때 아버지의 말씀을 따랐더라면 지금처럼 고생 안 하고 편안한 삶을 살았을 법도 하건만, 하고 싶은 일을 실컷 하고 살아서 그런지 그의 표정에는 후회하는 빛이 없다. 사실은 그의 아버지 또한 연극인 출신이었단다. 대학 2학년 때 방송국에 공채 입사했으나 군대 갔다 와서 후배들이 윗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퇴사, 한동안 극단 현대극장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다. 이후 잠시 경기도립극단에 몸담았다가 당시 극단 내에 만연해있는 파벌 싸움에 환멸을 느끼고 퇴사한 후 극단 물뫼의 대표가 되었다.

극단 믈뫼를 맡아 지금껏 120여 작품을 무대에 올린 그는 무역회사를 운영하며 그 수익금을 연극에 투자했다. 사업이 잘됐을 때는 당연히 극단도 활기를 띠었지만, 사업이 부진하면서 극단도 침체의 늪에 빠졌다. 그동안 쏟아부은 돈만 해도 족히 10억은 넘을 것 같다며 손사래를 치는 그의 표정에서 연극에 대한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연극은 내게 마약 같은 거였어요. 한번 빠지고 나면 결코 헤어나기 어렵다잖아요. 회사는 연극을 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오로지 연극만을 생각하며 평생을 살았죠. 연극에 몰입된 삶이라고나 할까요? 하긴 모든 예술가의 마음이 저와 같지 않겠어요? 지금은 비록 집도 팔고 남은 것은 빚뿐이지만 그래도 후회는 안 해요. 좋은 작품도 많이 무대에 올렸고, 또 현재 활동하고 있는 연극인 중에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이들을 우리 극단에서 배출했다는 자부심도 있고요.”

극단 믈뫼를 거쳐 간 유명 배우로는 최귀화, 김꽃비, 윤서현, 양현민 등이 있으며 대학로 대통령으로 불리는 극단 두레 대표 손남목도 믈뫼 출신이다. 그에게 부천 연극의 침체 이유를 물었다.

2020 제4회 판타스틱 연극제 출품작 《성난기계》. 차범석 원작, 임성주 연출.
2020 제4회 판타스틱 연극제 출품작 《성난기계》. 차범석 원작, 임성주 연출.
2020 제4회 판타스틱 연극제 《성난기계》 팸플릿.
2020 제4회 판타스틱 연극제 《성난기계》 팸플릿.

부천 연극의 운명은 부천 시민의 손에 달려있다

연극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게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대학로가 너무 가까이 있다는 거죠. 예전에 똑같은 연극을 부천에서 하고, 또 대학로에서도 했는데 부천에서 할 때는 여러 학교에 단체 관람 공문도 보내고 했는데 한 군데도 오는 학교가 없었어요. 그런데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니 공문을 보내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단체 관람을 왔더라고요. 똑같은 작품을 똑같은 배우들이 공연하는데도 서울이냐 지방이냐에 따라 이렇게 차이가 나니 참 씁쓸한 일이죠. 어찌 보면 지역민 스스로 지역의 문화 예술을 깔보는 것 같아 서운하기도 하고요.”

극단 믈뫼의 현재 단원은 모두 14명으로 정단원 9명에 준단원 5명이다. 사업이 잘됐던 지난 2001년에는 우리나라 극단 최초로 월급제를 시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대표에 대한 불신과 단원 간의 분열, 질투 등 부작용만 드러나 2년 만에 출연료제로 전환하고 말았다.

안 그래도 어려운 극단 운영이 코로나19의 팬데믹으로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서 이제 믿을 것은 단원들 간의 끈끈한 의리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다행히 김안석 부대표처럼 어려움 속에서도 빛나는 의리를 보여준 이들이 곁에 있어 든든하다. 김안석 부대표는 1997년 극단 믈뫼 인수 당시부터 그의 곁을 지키며 무보수로 음향, 조명 등의 무대 장치를 돕고 있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물었다.

2003년 대한민국 예술제 출품작 《에비대왕》. 임성주 대표가 연출한 120편의 연극 가운데 《순이야 사랑해》와 함께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2003년 대한민국 예술제 출품작 《에비대왕》. 임성주 대표가 연출한 120편의 연극 가운데 《순이야 사랑해》와 함께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시립극단을 만드는 게 부천 연극인으로서 마지막 할 일

앞으로의 계획이라면 두말할 것 없이 시립극단의 창단이죠. 사실 원혜영 시장 때부터 추진해온 사안인데 여태 결실을 못 보고 있습니다. 우리 부천시가 문화도시라고 하는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시립합창단만 있다고 해서 문화도시가 되는 건 아니죠. 최소한 시립극단, 시립 무용단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우리 부천시의 문화 정책은 너무 특정 분야에만 편중돼 있어요. 현재 신축 중인 문예회관도 부천 필을 위한 오케스트라 연주홀이지 우리 같은 연극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라고 봅니다. 문화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음악이나 만화, 영화뿐만 아니고 문학, 연극, 무용, 미술 등 여러 분야가 조화를 이루며 상호 작용을 일으켜야 하는데 아직은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생각해보니 며칠 전 소설가 K형이 술자리에서 했던 푸념이 떠오른다. 문화예술발전기금이라고 해서 작가들의 출판비를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는데 문화도시라는 부천시가 인근의 인천이나 시흥시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지원해주면서 생색만 낸다는 것이다. 정책 담당자들의 발상 전환을 촉구하며 아무쪼록 임성주 대표의 바람대로 조속히 시민극단이 설립되어 40년 전통의 부천 연극이 본격적인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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