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 부모들과 대학 입시와 학생부 종합, 수시 전형, 정시 전형 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아이의 성적과 진학 가능한 대학이 어디인지부터 따져 본다. 성적은 곧 대학 진학이고, 그리고 어떤 대학을 가는지가 인생을 결정한다는 이 간단한 논리에서 자유로운 대한민국 국민은 없었을 것이다. 필자도, 독자도 모두가 그러할 것이다. 문제는 이 간단한 논리를 어떻게 아이를 통해 실현시키느냐다. 거의 대부분의 부모들이 이 간단한 논리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소수의 모범적인 이웃 자녀들의 모습 또는 저기 저 멀리에 존재할 것만 같은 이상적인 모델을 그려놓고 그 모델을 닮아가기를 희망한다. 수험생 부모들은 우리 아이도 참. 저랬으면 좋겠어~”“. 왜 우리 아이는 안 될까?”와 같은 체념을 달고 산다. 정보를 얻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간단한 논리지만,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여럿이 있지만 1. 아이가 따라주지 않는다, 2. 아이에게 더 좋은 여건(사교육 등)을 만들어 주기 어렵다로 요약된다. 그런데 1번과 2번 사이에는 상당히 묘한 관계가 있다. 1번이 충족되나 2번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여 어렵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고, 2번의 투자는 충분하게 하였지만, 1번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1번과 2번 모두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떠한 상황이건 우리 아이에게 할 수 있는 것을 다하여 높은 서열의 대학에 진학하고, 성공시키기 위하여 부모들은 최선을 다한다. 이렇게 우리 대한민국 수험생 부모들은 대학의 서열에 아이의 인생, 아니 엄마, 아빠 인생 모두를 걸어버린다.

서열 높은 대학....좋은 대학....명문 대학....그게 현실이라고? 그래 좋다. 그게 맞다고 치자.” “아이가 어느 정도 따라와 줄 경우, 2번만 부모가 노~오력을 해서 뒷받침만 해주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 거야라는 단순한 논리에 다시금 빠져 보자. 부모는 최선을 다하여 2번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다음은 아이의 몫이다. 그다음은 무엇인가? 그러면 아이는 알아서 좋은 대학가고, 성공하게 되는 것인가? 부모는 그저 아이에게 사교육 및 학습 환경을 제공, 조성해 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을 다한 것인가? 서열 높은 대학에 가는 방법은 사교육이 다 알고 있으니, 그것만 해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가?

그렇다. 필자가 만난 많은 부모들은 이렇게 여기고 있으며, 부모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백번 양보해서 원하는 대학에 갔다고 치자. 그러면 아이에 대한 부모의 의무를 다한 것인가? 이제는 아이가 알아서 잘 커서 성공하게 되는 것인가? .. 스펙을 쌓아야 하는구나. 그러면 또 사교육이네. 부모는 또 투자하면 되는 것인가? 그러면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인가? 우리는 악순환의 반복 속에서,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다.

학생부 종합이라는 전형이 시작되면서 그 나마 어떤 전공을 하면 좋을지, 그리고 해당 전공을 한 이후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갈까 고민이라도 하게 되었지만, 성적과 대학 서열을 중심에 놓고 기계적 편의성만을 강조하는 일부 세력은 학생부 종합이라는 전형이 갖고 있는 중요성, 잠재성에 대해 알려하지 않고, 정시만이 오직 공정한 잣대라고 주장하며, 교육적 관점에서의 학교생활을 충실히 하는 방향에 대한 접근을 무시하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몇몇 독자들은 필자를 순진한 사람으로 치부하며, 몽상을 꾸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런 독자분들께 묻고 싶다. 과연 자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자녀와 얼마나 자녀의 삶에 대해서, 꿈에 대해서, 미래에 관해서 이야기 나눠 왔는지, 진정으로 자녀가 원하는 삶이 무엇이었는지 함께 고민해 본 적이 있었는가를.

수능이 가장 공정하고, 그래야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잘못된 믿음이 있다. 이 믿음은 자녀에 대한 무관심의 소치이며, 나아가 서열화된 대학 구조에서 상위를 차지하면 그만이고, 줄을 세워 앞에 서면 성공이라는 공정성에 숨은 편의주의적 교리(dogma)일 뿐이다. 물론 현재의 학생부 종합이라는 전형이 탄생하기까지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상당한 연구와 노력이 가해졌고, 제도적 개선과 함께 입학사정관들도 높은 전문성을 갖춰 전문직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리고 입학과는 관련이 없었던 교수들이 자기 전공 학생을 뽑기 위하여 직접 학생들의 학생부를 꼼꼼히 읽고 평가하는 시대가 되었다. 한 학생의 학교생활 전체를 살펴보고, 그 학생이 과연 우리 학교, 우리 학과에서 공부할 만한 준비를 학교에서 열심히 하였는지를 보겠다는 것이 학생부 종합의 취지이다.

그럼에도 많은 부모들은 그 취지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내신 등급이 높으면 합격하는 전형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니 혹시나 우리 아이가 뒤처지지는 않을까, 다른 애들은 이런저런 사교육을 받는다던데 하면서 사교육을 통해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고, 아이의 미래를 학원에 맡겨 버린다. 원서 쓸 시기가 다가오면 또 컨설팅이네, 상담이네, 자소서 첨삭이네, 사교육에 아이의 대학 진학 전략을 짜달라고 맡겨 버린다. 원서를 쓰면서도 희망 대학, 희망 학과에 어떤 교수가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어떤 특장점이 있는 학과인지, 최근에 학과 교수들이 어떤 논문을 발표하였는지 전혀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대학이 학문을 하는 곳이란 생각은 애초에 없다. 성공과 출세를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여긴다. 학과는 필요 없고, 서열이 높은 대학을 가고 보면 장땡이다. 가면 알아서 다 해결되니까.

아이와 학문이라는 는 사라지고, ‘서열출세라는 객이 부모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리고 아이는 그것이 싫으면서도 인정하지 않을 방법을 잘 찾지 못한다. 화가 나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111일 월요일 정시 원서 접수가 마감되었다. 원서 마감을 앞두고 근무하고 있는 대학으로 한 전화가 왔다. 입학처 직원들이 편입시험 준비로 자리를 비운 터라 필자가 전화를 당겨 받았다. 전화를 준 것은 학생이 아니라 엄마였고, 질문을 이어갔다. 엄마는 의생명공학과, AI학과, 화학과, 식품영양학과 등 모집단위 계열이 다른 여러 학과에 대하여 합격 가능성에 대해 문의하였고, 아는 한도 내에서 필자는 답을 해 주었다. 우선 학생이 아니라 엄마가 입시와 관련하여 상담을 했다는 것, 아이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수능 성적에 맞추어 여러 학과의 합격 가능 여부를 물으며 상담을 이어갔다는 점, 그리고 곁에서 아이는 ~ 됐다고~ 내가 알아서 한다고~~”라는 짜증 섞인 어투로 엄마에게 이야기하고, 엄마는 아이에게 가만히 있어~”라며 화를 내는 모습을 통해 서글픔을 느꼈다.

<성적-대학-성공>이란 논리의 유통은 너무 쉽게 아이를 키우려는 부모의 게으름 때문에 발생되었다. 나는 그런 부모가 아니라고 이야기하지 말자. 좋은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너무나 편리한 사고, 사교육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과장된 믿음, 세상과 단절하여 공부만 잘하면 성공한다는 이기적인 세계관, 나는 부모로서 할 만큼 했다는 자만심, 남들 다 하는데 우리 애만 안 하면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과도한 불안감이 우리 자신 깊은 곳에 내재하여 있어 쉽지 않겠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시작이라 확신한다. 아이의 잠재력을 믿고, 아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어떤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싶은지를 나누고, 그것을 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부모가 아이와 함께 찾아가자.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인 것 같아 두렵다면 매우 정상적인 반응이다. 다섯 번 두려워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한 번만이라도 아이와 진심을 다해 아이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해보자. 그것이 시작이다.

P.S. 그래서 필자는 어떻게 아이를 키우냐고? 부족하고 모자란 부모이고, 제 발 저린 도둑일 뿐이다. 그래서 잘 한번 해보려고 이 글을 주제넘게 써본다.

 

저자소개

정종원.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 & 입학사정관 실장. 부천YMCA 회원.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고 국제정치를 공부하려고 하였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껴 국내문제로 관심을 돌려 행정학도가 되었다.  부천시민으로 부천시가 살기 좋은 곳이 되고, 가톨릭대가 공부하기 좋은 학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열심히 살고 있다우리나라도 잘 되었으면 좋겠고, 세계 평화도 추구한다. 강의가 알차고 재미있는 선생, 선한 이웃, 자상한 아빠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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