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생각 1월

2021년 버전으로 유언장을 다시 작성한다.

새해가 밝았으므로. 디디는 새해가 시작하면 첫 글로 유언장을 쓴다. 영정으로 쓸 사진도 새로 찍곤 했는데 올해는 자화상으로 대체하련다.

디디는 올해 매우 잘 살 것임을 알지만, 혹시나 모를, 디디를 위한 장례식을 위하여 사전에 만반의 준비를 하려 한다. 내가 없어서 슬퍼하고 당황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세밑이나 세초, 연 단위로 묶이는 그 끄트머리 시각에 차분히 유언장을, 주로 감상적으로 쓰곤 했는데, 이번에는 좀 꼼꼼하게 써 보려 한다. 컴퓨터 디디 폴더 안에 유언장 폴더를 마련해 놓았다. 디디의 부고를 알려야 할 명단부터 희망하는 장례, 부고, 그리고 이후의 제사까지 바라는 바를 작성하고 점검해 나가는 한 해가 될 것이다.

11,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자화상도 한 해 동안, 고쳐지고 다듬어지고 꾸며질 것이다. 지난해까지 영정으로 쓸 생각이었던 사진을 종이 위에 옮겨 보는데, 여간 어렵고 서툴다. 그림이 완성되고 나서 이것을 영정으로 써 달라고 하면, 아마도 가족들이 난색을 하고 반대할 것 같다. 몇 년 전 처음 새해에 유언을 말했다가, 화를 냈던 큰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왜 새해부터 죽는 얘기냐고. 그때 새해 덕담 나누는 자리는 좀 무색해졌지. 잘살기 위해 세초에 유언을 구상하는 것이라고, 너를 위한 것이기도, 또 너에게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는 말을 나누고서야 아이 마음이 조금 풀어진 것 같았다. 여튼 못 그린 그림이라서, 가족들은 그림은 영정으로 쓸 수 없다 결정해 버릴지도 모른다.

 

결국 나를 닮지 않고 어색한 그림일지도, 문상을 온 벗들이 그림 속의 나를 알아보지 못할지도. 그런들 뭐 어떠하리 고인의 뜻이었노라, 이렇게 퉁 치고 넘어가면 되지. 만약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는다면 지난해 준비해 두었던 영정이 사용되겠지. 자화상 영정이 쓰인다면, 사람들은 그림이 디디를 닮았네, 안 닮았네, 이야기꽃을 피울 테지.

디디는 제 입으로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그날엔 사람들이 디디는 괜찮은 페미니스트였지’, ‘좋은 사람이었어’, ‘그래, 페미니스트였으니까’, 이렇게 말들을 나누고 기억해 주면 좋겠다.

올해는 고기를 먹는 것도 줄이려 노력하고 싶다. ‘여성의 권리에 눈뜨면서 페미니즘을 알았다. 나의 권리가, 우리의 권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갔으니, 이 세상에 살고 있음에도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던 다른 생명체의 문제도 고민하고, 조금씩이라도 행동해 보고 싶다. 아르는 디디한테 세계가 확장되었다는 거네’, 이렇게 말했다.

아르는 디디가 자기 세계를 넓히려 애를 썼다 기억해 주겠지. 페미니스트여서 피곤했지만, 날마다 새로워서 좋았다고 할까? 내 아이들은 어떻게 기억할까? 유언장의 머리말대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노력했던 사람으로 기억할 수 있을까? 역시나 유언장은 한 해 열심히 풀어야 하는 큰 숙제를 안겨준다. 그래서 좋다. 호호하하.

 

디디 김용란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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