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EOPLE 1 - 원종시장 컨테이너 시인 윤명석

더 피플은 부천 사람들의 이야기다. 평범한 시민으로부터 유명인까지 부천 사람이라는 공통분모 속에서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와 살아갈 이야기를 기록하려 한다. 모두의 인생은 소중하며 하나하나 글로 기록할 가치가 있다는 대전제 하에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생각이다. 오늘은 그 첫 인물로 0.5평 작은 컨테이너 안에 온종일 쭈그리고 앉아 신문, 담배, 음료 등을 팔며 틈틈이 시를 쓰는 부천 원종시장 컨테이너 시인 윤명석 씨를 소개한다.

 

원종시장 길 건너편 버스정류장 옆에 작은 컨테이너 매점 하나가 보인다. , 과자, 복권, 담배, 박카스 등을 파는 이 작은 가게의 주인은 윤명석 시인, 그는 벌써 15년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이 가게를 지키고 있다. 담배와 교통카드 충전 말고는 그다지 팔릴만한 물건도 없어 보이는데, 더구나 한 사람 들어가 앉기에도 비좁아 보이는 가게를 이렇게 오랫동안 지켜온 이유는 무엇일까? 원종시장 안에 있는 순댓국집에서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연세도 많으신데 온종일 좁은 공간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게 힘들지 않나요?

비록 돈도 안 되고 보잘것없는 가게지만 0.5평 실내는 나만의 공간입니다. 나는 그 안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고, 또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세상의 흐름을 읽습니다. 틈틈이 시()를 쓰니 나만의 집필실이기도 하고, 또 이 사람 저 사람 오가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니 나만의 사랑방이기도 합니다. 내 나이 70인데 어디 가서 이렇게 훌륭한 공간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껏 어떤 일을 하며 살아오셨는지, 그간의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저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2, 전남 해남군 문내면 사교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는데, 우리 5남매 말고도 할아버지, 할머니, 작은아버지, 고모, 일꾼 식구 등 11명이 넘는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어머니는 말도 못 하게 고생하셨어요. 당시 초등학교 선생님 월급이라야 박봉 중의 박봉인데, 술 좋아하시는 할아버지 술값 대랴, 시동생하고 또 자식들 건사하랴, 어머니는 툭 하면 바닷물이 밀려 들어와 1년 농사를 망쳐놓는 악답(惡畓)을 일구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었지요.

저는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군대 다녀와서 부평에 있는 대우자동차에 들어갔어요. 근무조건도 좋고 월급도 괜찮았는데 뭔 돈 욕심이 들었는지 10년 만에 회사를 그만뒀어요. 그러고는 과일 행상부터 호떡 장수, 건어물 가게, 방앗간 등 이런저런 일들을 했는데 하는 일마다 잘 안 됐어요. 아내만 죽도록 고생시켰죠. 지금 생각해도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지금껏 2권의 시집과 1권의 산문집을 내셨는데 시는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 궁금합니다.

“2013년 계간 문학의 봄을 통해 등단하면서 본격적인 시작(詩作) 활동을 했어요. 물론 어려서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았죠. 학창 시절에는 문예반 활동도 좀 하고. 그런데 먹고 사는 일이 급하다 보니 글 쓰는 일은 늘 뒷전이었어요. 현재의 매점을 운영하게 되면서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0.5평 작은 공간이지만 이곳에서 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모습을 보며 세상의 흐름을 읽습니다. 내가 세상을 배우는 학교인 셈이죠. 아내와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조언이 될만한 이야기들을 산문으로도 쓰고 시로도 쓰는데 사람들이 많이 읽어줬으면 좋겠지만 생각처럼 책이 그렇게 팔리지는 않네요. 하긴 그것도 어떻게 보면 욕심이죠. 지금은 그냥 열심히 쓰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윤명석 시인의 시를 보면 화려한 수사나 기교는 없지만 대신 다른 작가에게서 볼 수 없는 진실함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정이 애틋한데 잠깐 어머니 얘기 좀 해 주세요.

나이 들수록 아이가 되어가는 거 같습니다. 어머니 생각이 자주 나요. 부잣집 딸로 태어나 고생 없이 자라다가 선생이라는 직업만 보고 시집와서 11명 대식구 뒷바라지하느라 하루도 허리를 펼 날이 없었죠. 그래도 온갖 어려움 이겨내고 나중에는 우리 윤씨 집안을 사교리 명문가로 만들어 놓으셨으니 여장부도 그런 여장부가 없어요. 그런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게 됐을 때는 정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요양원으로 가겠지만요.”

 

마지막으로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사람이 살면서 제일 중요한 건 건강이에요. 저는 온종일 쭈그리고 앉아있는 생활을 하다 보니 다리 근육이 약해지는 것 같아서 일 마치고 집에 갈 때는 아파트 계단을 20층까지 걸어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서 또 15층 집까지 걸어 올라갑니다. 누가 챙겨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 건강을 챙겨야죠. 그리고 너무 돈, 돈 하지 말고 가족들하고 여행도 자주 하고 취미생활도 하면서 즐겁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여행도 젊어서 해야지 늙으면 재미가 덜합니다. 젊었을 때 악착같이 벌어서 노후에 행복하게 살아야지 하는데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나요?

 

*윤명석 시인은 전남 해남에서 출생하였으며, 2013년 계간 문학의 봄을 통해 등단했다. 부천문인협회, 문학의 봄 작가회 회원이며 시집으로 삶의 간이역, 하나 알고 둘 모른, 산문집 삶의 조각이 있다.

이주희 작가의 THE PEOPLE 1
이주희 작가의 THE PEOPL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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