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지기가 읽은 만화책

100세 시대. 사람의 수명이 이제는 한 세기쯤은 이어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50은 인생의 반환점이다. 물론 산술적인 절반이지 건강과 사회적 역할은 그 방향과 질이 다르다. 평지에서 중간쯤 온 것이 아니라 열심히 땀 흘려 올라간 산의 정상에서 이제는 반대편으로 슬슬 내려와야 하는 산행에 가깝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회사 정년이 55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여 어린 마음에 50대에 접어들면 아이들을 다 키우고 조금은 여유롭게 나이 들어 있는 노년을 생각했다. 세상을 관조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 “젊은이 내가 살아보니 인생이란 이렇고 저렇고…”라고 하며 백발의 품위를 풍기는 멋진 노년을 기대했다. 허나 현실은 오십이 넘어서도 여전히 철이 들지 않아 여기저기 지혜를 구하고, 마음도 몸도 분주하니 시간에 쫓기고 피곤을 호소한다. 미성년 자녀가 있기에 양육과 생업에서 아직 해방되지 않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생업에서 은퇴하면 진짜 안 된다. 앞으로 20년은 더 경제 활동을 해야 한다. 역설이지만 어쩌면 그런 점에서 나이 오십은 진짜 인생의 절반이 맞다 싶다.

소위 ‘아홉수’라는 말이 있다. 보통 마흔, 쉰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몸과 마음에 부정적인 신호가 오는 경우가 있어 ‘아홉수’라는 이야기를 한다. 개인적으로도 마흔을 넘어가면서 허리 디스크로 입원한 경험이 있고(그 후 한 차례 더 있지만), 오십에 들어오면서 수면 패턴에 변화가 생겼다. 달고 달았던 아침잠이 사라지면서 야행성인 내가 졸지에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무조건 새벽 5시 전후면 눈을 뜨고, 대신 저녁 10시면 정신을 차릴 수 없게 잠이 쏟아진다. 게다가 말로만 듣던 신체적 노화가 실감이 된다. 사십 중반에 시작된 노안의 심화, 갈수록 기름칠이 필요한 관절, 쉽게 지치는 체력 등등. 마흔이 되는 것과 달리 오십은 신체적 변화와 함께 초로로의 진입이다 싶어 심리적으로도 우울하다. 청춘 때와 다른 결로 미래(노후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올라온다. 동창들을 만나면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도 늙는다”라고 아우성이다. 이것이 전설로 내려오는 사춘기보다 무섭다는 갱년기인가?

‘50대를 위한 생활 밀착형 코믹 만화’를 외치며 번역된 일본 만화 《50, 내 인생 가장 유쾌한 나이》는 오십 대에 들어선 내 친구들의 갱년기 보고서다. 동네 아르바이트 하나 구하기 힘들고, 확 바뀐 입맛에 스스로 당황하고, 감수성의 변화로 작은 일에도 눈가가 촉촉해지는 민망함, 전혀 준비되지 않은 노후에 대한 불안, 무엇보다 염려되는 건강 그리고 연로한 부모님과의 영원한 이별 등등. 우리 50대 일상을 소소한 에피소드를 통해 유쾌하게 그려낸다. 일본과 조금은 다른 배경과 환경, 문화지만 오십이라는 나이가 겪는 안팎의 상황은 비슷한 것 같다. 나라와 민족은 달라도 나이를 먹어가며 경험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공통분모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여 일본 작가의 만화지만 함께 공감하며 웃을 수도 있고 동병상련의 처지에 위로도 덤으로 받을 수 있다.

50, 정말 유쾌할 수 있다. 아니 유쾌해야 한다. 한 번뿐이 인생인데 웃는 날이 많아야 하지 않을까? 풋풋한 젊음을 보내고 이제 우리는 성숙한 삶, 품위 있는 인생의 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 지금부터 그 길을 시작할 나이가 50이다 싶다. 제철 음식들이 몸에 좋은 것처럼 여운 남은 젊음과 두려운 노년의 사이에서 움츠리는 대신 50의 인생에 걸맞은 제철의 즐거움과 유쾌함으로 50의 품위를 빚어 보자. 보아하니 이 만화가 아주 적절한 마중물이 될 것 같다.

50, 내 인생 가장 유쾌한 나이》 글. 그림 아오누마 다카코/홍성민 옮김/서울문화사
50, 내 인생 가장 유쾌한 나이》 글. 그림 아오누마 다카코/홍성민 옮김/서울문화사

남태일(언덕위광장작은도서관 광장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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