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유승훈 씨 사망 사고를 돌아보며

420일은 장애인의 날이며 그날로부터 1주간을 장애인주간으로 하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높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대한민국의 법정 기념일이다. 반면 유엔이 정한 세계 장애인의 날은 123일이다. 4월은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이 다시 소생하는 계절이기에 재활이란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20일은 통계적으로 비가 오지 않는 날이다. 420일이 장애인의 날로 정해진 이유이다,

41회를 맞는 이번 장애인의 날은 슬프기만 하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로 기념식과 다채로운 행사가 취소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장애인주간이 끝나는 426, 어느 장애인의 죽음을 기억하는 추모식을 부천 상동역에서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편의를 위해 설치된 장애인 화장실에서 죽음을 맞이한 아이러니한 사건은 왜 발생했을까?

지난 39, 지하철 7호선 부천 상동역 변전실에서 전기 점검 중에 스파크가 일며 작업자가 가벼운 화상을 입은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를 감지한 소화설비에서 이산화탄소가 분사되었다. 안전을 위해 역사에 있던 사람들은 밖으로 긴급하게 대피하였고 지하철은 무정차 통과하였으며 역사는 봉쇄됐다. 신속한 대처로 사고는 무사히 마무리되는 듯했다.

사고 발생 두 시간 후, 역사 지하 1층 장애인 화장실에서 50대 장애인이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어 심폐소생술을 하며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사망한 장애인은 생활 성가 가수로 활동하던 유승훈 씨로 밝혀졌다. 감전 사고로 작동한 소화장치에서 분사된 이산화탄소에 의해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전언만 있을 뿐 정확한 사인은 아직 미상이다.

고 유승훈 씨(일러스트 박현숙)
고 유승훈 씨(일러스트 박현숙)

 

414일 밤늦은 시간,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비롯한 몇 명이 상동역을 찾았다. 상동역 장애인 화장실에서 사망한 장애인의 사인을 밝히기 위한 현장 검증이 있는 날이었다. 이산화탄소가 분사된 사고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여 사망과 관련성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검증이었다. 현장 검증은 인적이 끊긴 자정을 넘어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유승훈 씨의 죽음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며 사인에 대한 의문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고자 상동역을 찾았던 몇 명은 현장 검증이 시작되기도 전에 쫓기듯 자리를 떠나야 했다.

장애인 화장실은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등편의법)에 그 설치 근거를 두고 있다. 현행 장애인등편의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장애인 화장실 내에는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비상도움벨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비상도움벨은 장애인이 손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대변기 가까운 곳에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아울러 바닥 면으로부터 0.6미터와 0.9미터 사이의 높이에 설치하되, 바닥 면으로부터 0.2미터 내외의 높이에서도 이용이 가능하도록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의 편의시설은 긴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내포하고 있어야 함을 알 수 있다.

한 달 남짓, 장애인 등의 편의시설 현장 조사업무를 한 적이 있다. 장애인 주차장에는 비장애인 차량이 버젓이 주차되어 있고 장애인 통행로에는 온갖 적치물이 쌓여 있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었다. 급하게 볼 일을 처리해야 할 장애인 화장실은 도어 록으로 굳게 잠겨있는 경우도 많았다. 지속적인 조사와 시정조치를 한다곤 하지만 지난한 숨바꼭질이 이어질 듯싶다. 상동역 장애인 화장실에는 비상도움벨이 설치되어 있다. 고 유승훈 씨는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 왜 비상도움벨을 눌러 도움을 청하지 못했을까?

2년 전 이맘때, 경북 경산에 있는 모 고등학교 화재대피 훈련 과정에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학생이 훈련에서 배제된 채 텅 빈 교실에 혼자 남겨진 일이 있었다. 그 학생은 초중고등학교 내내 대피 훈련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기에 불이 나면 대피도 못 해보고 죽을 수밖에 없다는 억울함을 토로하였다.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이 재난이나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시도가 원초적으로 배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갑자기 닥친 위기나 응급 상황은 사람의 사고를 경직시켜 허둥거리게 만들어 위험을 가중시키는 경우가 많다. 행동이나 사고에 핸디캡이 있는 장애인은 같은 상황이라도 그 위험성이 더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인간이기에 국민이기에 마땅히 평등하게 누려야 하는 안전에 대한 권리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위험의 정도가 더 무겁게 가중됨으로써 안전할 권리가 차별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 유승훈 씨의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기에 앞서 죽음을 막을 수도 있었던 골든타임에 아무도 그 존재를 의심하지 못했다는 점이 더 안타깝다. 매뉴얼대로 할 바를 다 했다거나 소관 사안이 아니었다는 이유는 안타까움을 조금도 희석시키지 못한다. 그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문구가 있다.

선박 침몰 등과 같은 조난사고로 승객이 스스로 생명에 대한 급박한 위험에 대처할 수 없을 때, 선박의 운항을 지배하고 있는 선장 또는 구체적인 구조행위를 지배하고 있는 선원들은 적극적인 구호 활동을 통해 보호 능력이 없는 승객 등의 사망 결과를 방지하여야 할 작위의무가 있다.”

세월호 선장에게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한 대법원 판결문의 일부이다. 상동역 사고 현장을 통제하고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사람들에게 세월호 선장과 같은 구체적인 보증인의 지위를 지울 순 없지만, 의미를 두고 생각할 단서는 될 것이다.

상동역 장애인의 죽음은 세월호 사고를 우연한 교통사고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논리처럼 우연히 발생한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재난이나 급박한 상황에서 위험이 더욱 가중되어 안전에 대한 차별이 계속되는 한 유사한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행복한 삶을 위한 사회적 안전의 작동원리가 가장 취약한 지점에 장애인이 존재한다. 따라서 장애인의 안전은 그 사회가 가진 안전의 척도가 된다. 우리가 고 유승훈 씨의 죽음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고민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 김재성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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