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하반기 부천시민학습원 ‘거대한 도시와 왜소한 인간’ 수업에서, 발터 벤야민의 ‘베를린의 유년시절’을 읽고 유년기를 수필로 쓰는 작업을 했다.
이 글은 1970년 대 서울 대방동을 배경으로 한, 이양순씨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골의 한적한 동네, 저녁밥을 짓는 굴뚝에는 하얀 연기들이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가을걷이로 들에서 바쁘게 일하던 사람들도 잰 걸음으로 집으로 들어가는 저녁 시간이다. 마당 앞 벌거 벗은 감나무에는 전등 불처럼 빨깧게 익은 감들이 졸랑졸랑 매달려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알맞은 늦가을의 어느 날, 등잔불 아래서 부산하게 음식을 장만하고 있는 집이 있었다. 할머니 환갑이라 돼지 잡고 잔치에 필요한 음식을 만들어 다음날 있을 환갑잔치준비를 하고 있었다.

찰떡과 돼지고기 평소 먹기 어려운 음식들이 마당 한가운데 펼쳐진 큰상에 동네 분들이 모여서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나는 평소 먹기 어려운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상에서 할머니가 주는 음식을 먹으며 날마다 할머니 환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중에 찰떡이 제일 맛있었다.
잔치가 다 끝나고 마을 사람들은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할머니를 가운데 놓고 환호성을 지르며 번쩍 들어 올려 헹가래를 쳤다. 다음은 아버지를 들어 올려 헹가래를 치고 잔치는 끝났다.

그 다음날은 보리밭 갈이가 있는 날이다. 전 날의 잔치 분위기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부엌에서 점심 준비를 하던 고모는 일곱 살 조카인 나에게 밭에서 보리씨 뿌리는 일꾼 아저씨들 담배 피우게 갖다 주라며 부엌 부뚜막 옆에서 성냥통을 건네 주며 심부름가다 놀지 말고 빨리 갔다 오라며 당부했다. 습기를 머금으면 성냥불이 일지 않아 성냥통을 아궁이 위 부뚜막 옆에다 놔두면 습기가 차지 않아서 불을 켤 때 발화가 잘돼 부뚜막에 보관해서 사용 하였다.

나는 심부름 가다가 이 성냥이 과연 불이 켜질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성냥이 습기를 머금어 불이 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되었다. 성냥개비를 꺼내서 북 그어 불을 켜려고 해도 성냥에서 불꽃이 일지 않았다. 여러번 반복해도 마찬가지라 짜증이 났다. 나는 그 성냥을 가지고 고모한테 가서 “이 성냥 불이 켜지지 않아요”
“그냥 갖다 주기만 하면 아저씨들이 알아서 쓰니까 아저씨들 기다린데 빨리 가거라.”
나는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다시 성냥개비를 꺼내서 불을 붙였다.
드디어 불꽃이 확 일면서 제대로 불이 붙었다. 지붕아래에 있는 짚 이엉으로 둘러둔 소여물통 노적가리에 불을 붙였다. 붙은 불을 보고 있다가 조그만 손으로 잡아서 비벼 끄고 성냥을 가지고 보리씨 뿌리는 밭으로 갔더니 아저씨들이 밭둑에 앉아서 고개를 길게 빼고 성냥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산 옆에서 하얗게 핀 들국화를 한웅큼 따서 콧노래를 부르며 심부름 마치고 의기양양하게 집 가까이 왔더니 사람들이 지붕 및 소여물 노적가리 옆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손에는 양동이를 가지고 물을 쏟아 붙는 부산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초가지붕에 물을 쏟아 붓는 사람들과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 지붕 쪽에 연기가 피어오르는걸 보면 집에 불이 난 것 같다.
나는 멀뚱히 바라보며 ‘왜 불났지? 아까 여물 노적가리에 불을 붙였어도 분명히 손으로 껐는데, 누가 집에다 불 질렀나?’ 손으로 비벼서 불 끄다가 손가락이 데워 후끈거리는 손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집 가까이 와서 의아한 표정으로 서 있는데 화가 잔뜩난 아버지가 회초리를 들고 와서 나를 때리려 하자 옆집 아저씨가 나를 얼른 등 뒤로 숨기면서 아이 놀라게 무슨 짓이냐며 가로 막았다.

나는 곧잘 심부름을 잘 했기에 고모가 성냥 심부름을 보냈는데 성냥에 불을 붙여 초가집 지붕과 맞닿은 여물 노적가리에 불을 붙였고 손으로 껐다고 생각하고 심부름을 하고 집에 오늘 길이었다.

제대로 꺼지지 않은 불은 건조한 가을볕에 바짝 마른 짚으로 된 이엉에 불이 타오르는 걸 집 옆 밭에서 일하는 아저씨가 뛰어와서, 돼지 주려고 받아놓은 구정물 통을 들고 나가서 지붕에 부으면서 집에 불났는데 빨리 나와서 불 끌 생각은 안하고 뭐하냐고 다급한 소리를 지르는데도 평소 워낙 장난 잘 한 분이라 놀라게 하려고 한 농담인줄 알고 웃고만 있었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부엌에서 다시 물동이를 가지고 나가기에, 웬일인가 싶어 나가봤더니 붙은 불이 소여물 노적가리를 태우고 지붕으로 붙어 올라가는 찰라 였다. 옆집 아저씨의 발빠른 행동으로 다행히 불길은 잡혔고 소여물 노적가리는 전소됐지만 초가지붕에까지 옮겨 붙지는 않았다.

불이 났을 때, 내 여동생 4살짜리가 여물통 옆에서 옆집 또래아이와 같이 놀고 있었는데 불이 타오르자 4살 꼬마는 부엌에서 밥하는 고모한테 가서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고모, 언니가 불 질렀어”
하기에 어린애가 그냥 하는 말로 흘려버리자 다시 아버지한테 가서 언니가 불 질렀다고 해도 흘려버렸다. 꼬마는 타오르는 불이 좋았는지 부채를 가지고 와서 부채질하고, 같이 놀던 또래아이가 불에 손을 쬐고 있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속담이 아닌 실제로 불난데 부채질을 하는 꼬마가 귀여웠는지 일이 수습되고 나자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다.
다행히 집 아저씨의 발빠른 대처로 집까지 태우지 않았지만 집안 식구들이 많이 놀랐다.
불난 것 못지않게 밤에 문제가 발생했다. 저녁밥을 먹으려는데 내가 보이지 않았다.
동네 아이들과 놀고 있는 줄 알고 찾으러 다녔지만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양순아!” 거의 울음에 가까운 소리로 애타게 부르는 엄마와 고모의 목소리가 밤하늘의 찬공기를 가르며 내 귓전에 파고 들었다.
아버지한테 혼날까봐 작은방 구석에 무당벌레처럼 몸을 동그랗게 움츠리고 숨어있는 나를 발견한 할머니는 전날 먹다 남은 내가 좋아하는 찰떡을 가지고 와서 먹으라며 앞으로는 그런 불장난 하지 말라며 등을 다독거려 주었다. 심부름 시켰던 조카가 집에 불 지르고 나서 혼날까봐 없어진 줄 알고 어머니와 고모가 나를 찾으러 마을에 다니다가 작은방에 있는걸 보고 안심된 모양이다. 고모는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이라고 나를 무척 예뻐했다.
그렇게 예쁜 조카가 혼날까봐
“오빠 너무 혼내면 애가 밤에 자다가 놀라요 그냥 놔둬요”
다행히 나를 감싸준 사람이 많아서 매 맞는 일은 없었지만 나는 집에 불 질렀던 아이가 됐고 동생은 불난데 부채질했던 아이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할머니 환갑때 먹었던 찰떡과 그 다음날 벌어진 방화사건은 내 뇌리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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