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아이와 놀자 [93]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여름으로 넘어가기 직전 숲에는 아침, 저녁으로 이슬을 머금은 풀들이 땅에서 쑥쑥 자라납니다. 온 세상이 초록색으로 물들어 갑니다.

숲에 온 아이가 풀밭에 앉아 있습니다. 풀밭이 안방인 것처럼 두 발을 쭉 뻗어 편안해 보입니다. 풀들이 두 발과 엉덩이 주변에서 좌우로 벌어져 있습니다. 아이는 두 손을 이용해 주변의 풀을 뜯고 있습니다. 최대한 풀을 많이 움켜쥐려는 듯이 손을 좌우로 크게 벌려 손바닥을 활짝 펼칩니다. 손에 들어온 풀들이 손에 가득 차면 힘을 주어 잡아당깁니다. 한 움큼 잡힌 풀은 쉽게 뜯기지 않습니다. 아이의 얼굴이 빨개지며 미간에 주름이 생깁니다. 몸을 이용해 잡아당겨 뜯어냅니다. 몇 번 동일하게 한 움큼 잡아 뜯다 하나씩 뜯기도 하고 조금만 잡아 뜯기도 합니다. 뜯어낸 풀은 주변에 던지기도 하고 옆에 두기도 합니다. 코에 가져가 향기도 맡아보고 살펴보기도 합니다. 더러는 입에 넣어 보기도 합니다. 한참을 반복하다 뜯는 양이 줄어들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을 향해 갑니다. 아이가 있던 자리에 손에 뜯긴 풀들과 엉덩이에 눌린 풀이 남아 있습니다.

숲에 온 어른들이 풀밭 주변에서 기기를 만집니다. 기기에 기름을 넣고 이리저리 장비를 점검합니다. 점검이 끝났는지 기기를 둘러매고 작동을 합니다. 기기는 윙윙윙하고 커다란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어른은 보안경을 착용하고 발목까지 오는 앞치마를 입었습니다. 기기는 풀을 베어내기 시작합니다. 꽃과 풀은 순식간에 잘려 여기저기 흩어집니다. 기기의 힘보다 작은 돌멩이들도 풀과 함께 여기저기 날아갑니다. 어른이 지나간 자리에는 숲이 사라지고 기기로 잘린 상처의 흔적만 남습니다. 숲은 공원이 되고 공원에 살 수 없는 생명도 사라집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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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풀 이야기입니다. 아이의 풀 뜯는 행동은 부모에게 혼나는 행동이고 어른의 풀 베는 행동은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꼭 필요한 행동으로 인식합니다. 무엇 때문에 아이는 혼나야 하고 어른은 그 일을 꼭 해야 하는 것일까요? 아이는 놀이를 한 것뿐이고 어른은 일을 한 것뿐인데 문제가 있는 건가요?

행동에는 동기가 있습니다. 동기는 생각을 기반으로 합니다. 생각은 인간적 삶의 근본입니다. 인간은 생각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생각하는 철학의 역사는 동물로부터 인간을 구분하기 위한 학문입니다. 철학은 질문을 통해 발달해 왔습니다. 고대에는 인간에 대한 질문, 중세에는 종교에 대한 질문, 르네상스 시대에는 다시 인간에 대한 질문, 현대에는 과학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발전해 왔습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을 통해 사람들은 스스로의 가치관을 만들고 행동해 왔습니다. 시대에 따라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 왔습니다. 당시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생각이 있고 지금은 틀렸지만, 그때에는 맞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시대는 어떤 생각으로 행동하며 살아야할까요? 이제는 자연에 대해 질문하는 시대가 온 것은 아닐까요?

코로나 시대입니다. 인간의 인구가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 자연의 한정된 자원을 마구 사용하고 있습니다. 생태계가 버티지 못하고 점점 빠르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무너지는 속도가 빨라져 점점 인간이 대처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자연을 소비하며 살아온 인간 위주의 가치관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기존의 방식에 다시 질문을 던지고 생명이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방향을 찾아가야 합니다. <동물 해방>을 쓴 철학자 피터싱어는 우리는 확실히 다른 사람들의 삶에 진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과학을 맹신하고 인간이 모든 것을 안다는 자만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배우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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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저술가 엠마 마리스의 말처럼 아이들에게 자연을 빼앗지 않으려면 아이는 풀을 만지며 커야 합니다. 풀을 만지고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은 소모될 뿐 함께할 수 없습니다. 기기로 잘라버리고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들면 청결하고 깨끗해서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랑할 수 있는 경험을 없애는 것입니다. 부족한 경험은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게 합니다. 자연과 공생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더 많이 자연을 접하고 알아가며 살아야 합니다.

초록이 가득한 6월에 아이와 함께 숲에 가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혹시 나무나 풀이 불필요하게 배어있다면 사진을 찍어 시청으로 민원을 넣어주세요. 그 작은 행동으로 아이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자연과 공존하는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삶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베어 달라는 민원보다 지켜 달라는 민원이 더 많아지길 기원합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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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마리스 관련 동영상 https://youtu.be/hiIcwt88o94

부천시 숲 제초 담당 부서는 녹지과입니다. 032-625-3577     

                                               

정문기 조합원(부천방과후숲학교 대장)

* <부천방과후숲학교> 네이버 카페 운영자
* <도시 숲에서 아이 키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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