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여서 끝까지 해낼 수 있었어

산학교는 공동육아의 철학과 이념을 바탕으로 부모, 교사,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초·중등 9년제 비인가 정규형 대안학교입니다.

 

산학교 7, 8, 9학년(중등 과정) 학생들은 매년 도보 여행을 가는 전통이 있다. 매일 짐을 들고 걸어 이동하는 생활을 열흘 정도 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 밥도 해 먹고 길도 찾고 회의도 한다. 상상만 해도 고생길이 훤한 도보 여행은 두렵지만 도전해보고 싶은 대상이다. 그래서 작년, 코로나 상황으로 도보 여행이 취소되었을 때, 고생 안 해도 된다며 좋아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아쉬움과 허전함을 토로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올해도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도보 여행을 진행하기 쉽지 않았다. 모두 코로나 검사를 받고, 방역 및 안전 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2년 만에 도보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스스로, 함께 준비하는 여행

이번 도보 여행 장소는 DMZ 평화누리길이다. 89일 동안 일산에서 연천까지 DMZ 주변 약 150km를 걷는 일정이다. 큰 주제와 장소는 교사들이 정하되 여행의 세부 일정과 내용은 학생들이 직접 알아보고 교사와 논의하여 계획한다. 새 학기가 시작된 3월부터 4월 초까지 7, 8, 9학년 학생들은 대부분 시간을 도보 여행 준비로 보냈다. 분단과 평화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도보 여행에 필요한 역할을 나누어 맡아 준비와 연습을 했다. 일정 팀이 숙소를 예약하면, 인솔팀이 도보 코스를 짜고, 살림팀이 식단을 짜고, 의료팀이 의약품과 방역을 준비하고, 기록팀이 여행 기록을 준비하는 식이다. 제각각의 이유로 역할을 선택한 학생들은 막상 일을 진행하며 어떤 역할도 쉽지 않은 것 같다라고 한다. 모두가 여행에 필요한 역할을 도맡아 하며 학생들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여행의 주체가 되어간다.

 

도움과 공감을 주고받는 길

속도도, 체력도 다른 열일곱 명의 도보 여행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첫날부터 비가 와서 우비와 버스 정류장의 소중함을 톡톡히 느꼈고, 산길이 많던 둘째 날에는 한 친구가 다리를 삐끗해 숙소로 먼저 돌아가기도 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아 마지막 날까지 잘 걸었다) 가장 긴 코스를 걸었던 셋째 날에는 좀처럼 속도가 나질 않아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오래 걸은 후유증이 남아있던 넷째 날 아침, 한 학생이 나를 찾아왔다. 어두운 표정으로 어렵게 말을 꺼낸다. 도보가 너무 힘들어서 더이상 걷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는 학생을 지켜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실컷 울고, 다시 용기를 내어보길 마음으로 응원하는 것뿐이었다. 아마 바쁜 아침을 준비하며 이를 지켜보던 다른 학생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도보 여행은 함께 하는 것이지만, 스스로 포기하면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 내가 힘든 부분이 무엇인지,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는지 이야기를 나누면 방법이 생긴다. 마침내 그 학생은 다시 한번 걸어보겠다고, 너무 힘든 순간에 도움을 요청하겠다고 용기를 내주었다.

쉽지 않은 길 위에서 우리는 각자 한계의 순간을 마주한다. 짐은 어깨를 짓누르고, 발바닥을 내디딜 때마다 통증이 전해지고,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들이 나를 괴롭힌다. 간식을 꺼내 먹어 보았다가, 노래를 큰 소리로 불러보기도 했다가, 친구와 아무 수다를 떨기도 했다가, 지나가는 풍경에 인사를 해보기도 하고, 집에 돌아가서 하고픈 것을 상상하며 다시금 한 발짝 나갈 힘을 얻는다. 때로는 무엇도 위로가 되지 않아 짜증을 부리기도, 울음을 터뜨리기도, 저 멀리 뒤처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어느새 누군가 다가와 괜찮아?”하며 다독인다. 누군가 아프거나 힘들어하면 선뜻 짐을 나누어 들기도 한다. 신기한 일이다. 내 앞가림도 하기 힘든 이 고생의 길에서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서로를 살피고 진심으로 위로하게 된다.

 

도보 여행에서 내가 배운 것

그렇게 나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고, 서로를 보듬으며 평화누리길 150km의 여정을 모두 무사히 마쳤다. 그곳에 수많은 군인과 경계선, 저 너머의 북한, 그 사이에서 평화의 깃발을 들고 걷는 우리가 있었다. 도보 여행이 끝난 지 한 달, 걸을 때 느낀 고통은 희미한데 마지막 숙소에 도착해서 서로 고생했다며 기쁨을 만끽하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의 89일이 각자에게 어떤 의미와 기억으로 남게 될까?

학생들의 도보 여행 소감 중 일부를 덧붙인다.

 

이번 들살이를 통해서 내가 정말 힘들면 습관적으로든 본능적으로든 도망치려고 했단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참아내고 열심히 계속해서 걸었단 점에서 많이 바뀐 것 같다.” - 7학년 고미주

내가 생각하는 평화는 남을 나와 같은 사람으로 보기이다. 내가 모르는 남을 알려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 들살이 때 그런 게 많았다.” - 8학년 정동윤

도보 들살이를 통해 도전하는 것을 배웠다. 이제까지는 힘든 일은 못 할 것만 같고 하기 싫었다. 도보 들살이를 하고 나니, 이것보다 힘든 일은 없을 것 같다. 자신감이 생겼다. 앞으로는 더 힘든 일도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 - 7학년 김재원

나는 도보 들살이가 처음이어서 긴장했는데 들살이를 가보니 긴장이 저절로 풀어지면서 사람들하고 공동체의 끈끈함을 키우면서 더 많이 친해진 것 같아 너무 행복했다.” - 7학년 김호건

계속 걸어서 많이 힘들었지만 그만큼 즐거운 순간도 많았고 들살이를 통해 많은 사람이 함께라면 자신이 못 할 것도 해낸다는 것을 배웠다.” - 7학년 나하원

 

들살이를 통해 배운 점은 북한이 가깝다는 것을 알았는데 심리적으로 뭔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래서 심리적으로는 멀고 실제로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 7학년 유한울

하기 싫다고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하는 걸 배우고 느꼈다. 좋은 기회가 있을 때도 하기 싫어서 포기하면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고 더 좋은 기회를 날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 7학년 이신우

들살이에서 배운 점이라면 다른 사람들을 챙길 줄 알게 됐다. 한 번 뒤에서 있었는데 그때 뒤에서는 쉬는 시간도 부족하고 오면 다시 출발해서 그때 이후로는 뒤에 있는 사람이나 다친 사람을 챙기거나 기다리게 되었다.” - 7학년 한정우

내 목표는 뒤처지지 않기였다. 처음에는 많이 뒤처지고 잘 안 지켜졌는데 온종일 걷다 보니깐 금방 익숙해져서 잘 지켜진 것 같다.” - 8학년 곽혜주

이번에는 처음으로 들살이가 재미있었고 뿌듯했다. 뿌듯함은 들살이가 끝나면 항상 느끼기는 한다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좋아 이번에도 잘 버텼어! 다음에도 이 정도만 해보자라는 뿌듯함이 아닌 난 완주를 했어! 그리고 내가 성장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던 들살이었어!’ 이런 느낌의 뿌듯함이었다.” - 8학년 장채원

다른 애들이 집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할 때, 선배로서 조언도 해주고 싶고 그랬는데 그런 말을 해도 사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 힘들어서 견디지 못하겠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위로는 되겠지만 그 순간에만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굳이 말을 안 해도 먼저 돌아가는 일은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아무튼 끝까지 모두가 함께 할 수 있어서 좋다.” - 9학년 이하경

모두가 함께하니 완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 혼자였으면 걷겠다는 의지도 안 들고 그랬을 것 같다.” - 9학년 이현우

“‘사람들마다 하는 행동, 느끼는 마음, 생각들이 확실하게 다르다라는 점을 조금 더 생각해보고 몸소 느낄 수 있었다는 점, 도보에서 나의 컨디션이나 감정 상태를 어떤 식으로 생각해보고 조절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던 점, 사람들을 더 넓은 시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점을 배웠다.” - 9학년 홍정우

 

글   자연(산학교 생활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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