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는 역곡동 고택에 단죄비를 세우고 일제 잔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대책을 마련하라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지부장 박종선)가 빗속에서도 부천시청 및 부천시의회 집회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어느덧 23회차(2021.6.18.)이다. 주장은 간단하다. 최근 역곡동 130년 고택을 부천시 향토 문화재로 지정해달라는 일부의 요구에 대하여, “역곡동 고택은 친일파 박제봉이 살았던 집으로 일제 잔재이며, 부천시는 단죄비를 세우고 일제 잔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대책을 마련하라.”라는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의 이 같은 주장은 <경기도 일제 잔재 청산에 관한 조례안>에 근거한 것으로, 조례안에 따르면 도지사는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하여 일제 잔재 조사, 선정, 기록, 관리, 일제 잔재 청산 사업, 일제 잔재 청산 관련 홍보, 교육, 학술, 문화·예술 사업,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하여 필요한 전문 인력 육성 사업 등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에 따르면 박제봉은 친일 단체인 경학원 사성을 지냈으며 194110월 유림 가운데 중견 지도자로 선발된 조선 유림성지 순배 단의 간사로 일본의 이세(伊勢)신궁과 메이지(明治) 신궁을 비롯한 성지·유적을 순례했다. 순례를 마치고 귀국해 황도(皇道)의 성지를 참배한 후의 기쁨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저는 이세신궁의 신 앞에 배례하며 황국신민의 선서를 소리 높여 제창했는데, 지금까지도 가슴이 뛸 정도의 감동이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황국신민이 되었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47년 전, 즉 일청전쟁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이로부터 일로전쟁 후에는 메이지 천황의 은덕이 더욱더 반도(半島)에 미쳐 결국은 한국을 병합하게 되어 완전한 황국신민이 되었던 것입니다.”

1942년에는 총독 미나미(南次郞)와 정무총감 오노(大野)가 이임하는 것을 전별하며 시를 지었는데, 특히 총독 미나미를 살아있는 부처라고 칭송하였다.

한편 부천시청 로비에는 부천을 빛낸 인물 6인의 사진과 행적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 한 분이 친일파 박제봉의 동생인 박제환 선생이다. 박제환 선생은 회고록 지봉한담에서 8.15 광복 후에도 경기도청 식량과장으로 근무하다가 자신의 소극적인 친일반민족행위 경력이 부끄러워 사임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소유한 농지를 기증하여 공립 부천농업중학원을 설립하였는데 지금의 부천중학교와 부천공업고등학교의 전신이 되었다고 한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형제가 완전히 다른 삶을 산 것이다. 형은 친일파로 동생은 부천을 빛낸 존경받는 사람으로 역사에 남은 것이다. 두 형제의 서로 다른 삶은 바라보는 시민들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역곡동 고택은 6월 중 부천시 향토 문화재 심사를 앞두고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시민들의 이목이 부천시와 부천시의회로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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