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교 이야기

산학교에는 학생회가 있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것이, 웬만한 학교에는 학생회가 으레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그곳 학생들의 삶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남는다. 존재감이 있다 해도, 학교의 방침과 다른 목소리를 내거나, 교사의 권위를 넘어서는 힘을 가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산학교는 다르다는 얘길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사실 다르긴 다른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생회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학생이 학교의 주체 중 하나임을 인정하며, 민주교육을 추구하는 대안학교에 학생회가 없다니! 무슨 토핑 없는 피자 같은 소리인가.

학생회가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학생회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회의를 진행하는 의장단은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학교의 일을 돌아가면서 맡는 일종의 당번 같은 것이었고 나름 지식과 권위가 필요한 일이다 보니 고학년이 관례적으로 돌아가면서 맡았을 뿐이었다.

학생회가 필요하려면, 학생들이 모일 필요가 있어야 한다. 동아리나 놀이 같은 특별한 조직이 필요 없는 행위 말고, 모임을 조직해야만 하는 어떤 목적이 있어야 한다. 보통은 조직원의 권익 신장과 복지 증진같은 이유일 텐데, 학생들의 권익이 차고 넘쳐서 좀 규제가 필요하다고 (교사들이) 느끼는 산학교에서 학생회란 정말이지 존재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학교의 주인은 교사 학생 부모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산학교에서 교사회와 부모회는 있는데 학생회는 없다. 그러면 학생들은 어떻게 주인 행세를 하나? 주인이라면 응당 권리와 의무가 있고, 권리야 교사와 부모들의 배려와 존중으로 어찌 확보한다 쳐도(사실 그게 진짜 권리인지 의문이긴 하다. 오히려 복지에 가까운 것이 아닐지) 의무는 어떻게 부담하고 있는가? 돌이켜 보니 학생들의 권리도, 의무도 모두 교사들이 부여해준 것일 뿐, 정작 학생들 스스로 학교의 주인으로 무언가를 해 본 적은 별로 없다. 뭔가 더 나은 학교생활을 위해 고민하고, 의논하고, 실천하는 것 없이 그저 교사가 시키는 대로 때론 만족하며, 때론 불평하며 지내왔을 뿐이다. 재밌는 활동을 하면 좋아하고, 맛없는 반찬이 나오면 투정하고, 아무도 지키지 않는 규칙을 만들어만 놓고 생활은 바뀌지 않는.

올해 학생회를 (사실상) 처음으로 꾸렸다. 뭐 처음이니까 당연히 서투르고 엉성하긴 한데, 그래도 뭔가 기대감이 드는 것은 이 학생회가 처음으로 학교 자치와 관련한 일을 맡아서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학생 교사 70여 명이 매일같이 함께 지내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것들을 교사 또는 부모들이 책임져 왔다. 크게는 학교 시설의 공사부터, 작게는 실내화를 신고 운동장에 나가는 문제 해결까지. 어른들이 의논하여 어른들이 결정하고 학생들은 그저 그에 따르기만 했었다. 책임도 없었고 권리도 없었다.

올해 학생회가 출범하면서 작게나마 처음으로 학교 일의 일부를 가져갔다. 학생 수 55명의 작은 학교에서 무려 12명의 회장단이 선출되었는데, 덕분에 여러 위원회를 꾸려서 그간 어른들이 도맡아 했던 학교 자치(!)를 학생회의 역할로 넘겨주었다. 새로이 만들어진 위원회와 역할은 다음과 같다.

1) 자치기금위원회 : 무려 40여만 원의 거금(?)을 가지고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고 시행한다. 학교에서 먹여주고 모든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에 사실 돈 쓸 일이 별로 없는데, 앞으로는 차차 돈 쓸 곳이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현재는 학생들의 동아리 지원과 한 달에 한 번 교내 벼룩시장 개최, 그리고 학교 매점을 준비 중에 있다.

2) 공간관리위원회 : 학교 내 공간과 관련한 각종 규칙 및 벌칙을 제정하고 민원(?)을 해결한다. 한 예로 학교 운동장에서 한동안 땅 파기 놀이가 유행했는데, 문제는 누군가 파놓은 구덩이에 발을 헛디뎌서 다칠 위험이 있고, 축구 등의 운동을 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 이에 공간관리위원회에서 땅을 팔 수 있는 공간을 정하고, 놀이 후 반드시 원상 복귀하도록 규칙을 정했다.

3) 놀이위원회 : 놀이와 관련한 각종 규칙을 만들고 놀이에서 생기는 각종 갈등을 조정한다. 놀이라는 것이 시대와 사람에 따라 끊임없이 룰이 바뀌는 것이라 업무가 끊이지 않는데, 분쟁이 너무 심한 몇몇 종목(?)들은 아예 별도의 규칙을 만들어 놓고 있다. 일종의 부칙인데, 예를 들면 오징어달구지에 관한 규칙’, ‘딱지치기에 관한 규칙등이 있다.

4) 물건관리위원회 : 학교 내 여러 물건들에 대한 규칙을 정한다. 학교 소유의 물건인 경우 사용 여부 및 사용 절차에 대한 규칙을 정하고, 훼손하거나 분실했을 경우 벌칙을 정한다. 개인의 물건에 대한 규칙도 정하는데, 예를 들자면 학교에 가져올 수 있는 장난감의 종류와 언제 사용할 수 있는지 등을 규칙으로 정한다.

5) 동아리위원회 : 올해부터 5학년 이상은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할 수 있도록 하였다. 농구나 축구 같은 스포츠부터 제빵이나 바느질, 그림과 같은 동아리, 그리고 텍스트게임이나 학교문화관찰같은 감이 잡히지 않는 동아리까지 다양한 동아리들이 활동하고 있고 그 모든 동아리의 활동을 관리하고 지원한다.

 

4. 아직은 엉성하고 시행착오가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할 일이 무궁무진하게 많다. 아마 학생회 위원들은 학생들이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일거리를 만들어내는지 체감하고 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일을 학생들 스스로가 해결해야 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 조금씩 학생회 위원들에게는 생겨가고 있다. 학교 운영의 수동적인 대상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주체가 되어가는 첫 시작이 아닐까 싶다. 그런 분위기가 학생들 전반으로 퍼질 때까지, 그리고 같이 살아가기 위해 각자가, 또 전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배울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그 모든 과정이 우리가 추구하는 대안적인 교육 그 자체가 아닐까 한다.

대안교육의 시초격인 영국의 서머힐 학교에는 400개가 넘는 규칙들이 있다.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하나하나씩 생활 속에서 필요하면 만들고, 없애고를 반복하면서 학생들 스스로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남긴 것이다. 규칙 조항 하나하나마다 아마 수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들이 배어 있을 것이다. 산학교도 어른의 권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학생들 스스로가 인정하고 따르는 삶의 규칙들이 하나씩 만들어져 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규칙들을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학생회가 산학교 자치의 중심이 되어가기를 바란다.

이 글을 쓰는 중간에도 학생 둘이 실내에서 공을 차다가 전등 두 개를 깼다. 예년 같으면 실내 공놀이 금지라는 규칙을 어긴 데 대한 일장 훈시와 더불어 학교 물건을 훼손한 데 대한 질책, 그리고 애들이 요즘 왜 이럴까에 대한 교사회의를 거쳐 학교 학생 전체에게 학교 물건을 아껴야 한다고 잔소리 콤보를 해야 했을 거다. 그러나 학생회가 생겨서 이 모든 절차는 스킵되고 공간위원회와 물건관리위원회에 이 사안을 넘겼다. 아마 연석회의에서 어떻게 할지 의논한 다음 뭔가 나름의 벌칙 또는 해결책을 제시할 거다. 또는 미묘한 사안이라 판단되면 전체 산회의에 올리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아무튼 학생들이 먼저 문제 해결을 고민하다 보니 참 좋다. 부디 좀 강력한 벌칙을 들고나오고 내가 오히려 약간의 선처를 호소하는 아름다운 그림을 소망해본다.

| 파도(산학교 대표교사)

 

*산학교는 공동육아의 철학과 이념을 바탕으로 세워진 초,중등 9년제 대안학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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