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신문 여름 특집

초암사. 신라의 의상대사가 이곳에 초암을 짓고 한동안 수행한 뒤 부석사를 건립했다고 한다.
초암사. 신라의 의상대사가 이곳에 초암을 짓고 한동안 수행한 뒤 부석사를 건립했다고 한다.

 

죽계는 소백산 국망봉에서 발원하여 소수서원이 있는 백운동을 지나 영주 서천으로 이어지는 냇물이다.

냇물은 초암계곡을 흐르며 산과 계곡의 수려한 모습과 그 수려함을 닮은 사람들을 닮는다. 그래서 고려말 안축(安軸)은 죽계별곡을 통해 자연을 즐기며 학문을 숭상하는 고향 사람들의 모습을 자랑하였다. 주자에게 무이산이 있다면 안향에겐 죽계천이 있다. 그러므로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소수서원과 죽계구곡이 있는 이곳은 성리학의 성지인 셈이다. 평생 한 번은 꼭 걸어보고자 했던 선비들의 순례길이었다. 그래서 오는 이마다 계곡을 예찬하고 이름을 지었다. 이황은 소수서원 앞의 백운동 취한대를 1곡으로 정하고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며 9곡 이름을 지었는데, 서기 1849(헌종 15)에 편찬한 안정구(安廷球)재향지(梓鄕誌)역시 제1곡 백운동(白雲洞) 취한대(翠寒臺), 2곡 금성(金城) 반석, 3곡 백자담(柏子潭), 4곡 이화동(梨花洞), 5곡 목욕담(沐浴潭), 6곡 청련동애(靑蓮東崖), 7곡 용추(龍湫), 8곡 금당(金堂) 반석, 9곡 중봉 합류처와 같이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며 이름을 붙였다.

한편 순흥부사 신필하(申弼夏)는 초암사 바로 위 금당반석을 제1곡으로 하고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순서를 정하였다. 오늘날의 죽계구곡은 신필하가 지정한 것으로 제1곡 금당반석(金堂盤石), 2곡 청운대(靑雲臺), 3곡 척수대(滌愁臺), 4곡 용추(龍湫), 5곡 청련동애(靑蓮東崖), 6곡 목욕담(沐浴潭), 7곡 탁영담(濯纓潭), 8곡 관란대(觀瀾臺) 9곡 이화동(梨花洞) 순이다. 신필하(申弼夏)는 음직으로 무신년(1728, 영조 4) 4월에 순흥부사로 부임하여 동년 8월에 통정대부로 승진하였다. 신해년(1731, 영조 7) 4월 임기가 차서 체직되었다.

 

1곡 금당반석(金堂盤石)

금당은 절에서 본존, 즉 석가모니불을 모셔 두는 건물이나 크고 화려한 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렇듯이 이곳은 죽계구곡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곳이다. 화강암 너럭바위도 일품이지만 그 위로 흐르는 맑은 물길은 마치 거울같이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준다.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부석사를 구상했듯이 새로운 계획은 금당반석 맑은 물에서 자신의 구상을 살펴보아야 한다.

죽계구곡의 제1곡. 금당반석.
죽계구곡의 제1곡. 금당반석.

 

2곡 청운대(靑雲臺)

주세붕은 소백산 흰 구름이 비추는 곳이라고 백운대(白雲臺)라 하였고, 이황은 소수서원 백운동과 구별할 수 있도록 청운대로 바꾸었다고 한다. 부딪쳐 휘감아 흐르는 물길 속에 우뚝 서 자신의 존재를 지켜나가는 바위 앞에서 스스로 청운의 꿈을 키운다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3곡 척수대(滌愁臺)

천고의 세월 동안 흐르는 물은 3곡에서 좌우로 부딪치며 돌부리마저 말끔하게 씻어낸다. 3곡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은 이곳에서 한없는 욕망 추구와 세속적 성취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생긴 온갖 근심을 말끔히 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척수(滌愁)는 이백의 우인회숙(友人會宿)’이란 작품의 첫 구절에서 차용한 말이다.

 

滌盪千古愁(척탕천고수) 천고의 시름 말끔히 씻어버리고

留連百壺飲(유련백호음) 연거푸 일백 두루미 술을 들이켰네

良宵宜清談(양소의청담) 좋은 밤은 청담 나누기 안성맞춤이요

皓月未能寢(호월미능침) 밝은 달을 두고 애초에 잠자기 글렀네

醉來臥空山(취래와공산) 한껏 취해 아무도 없는 산에 쓰러지니

天地即衾枕(천지즉금침) 하늘은 이불이요 땅은 베개로구나

 

4곡 용추(龍湫)

용추는 죽계구곡 중 소()가 가장 짚은 곳이다. 아래위로 반석이 편편히 깔리고 좌우편 깎아지른 듯한 암각(巖角) 가운데로 급한 여울이 성낸 듯 달리다가 쏟아져 드리워 비폭(飛瀑)이 되었다. 밑에는 검푸른 물굽이가 소용돌이치는 깊은 못을 이루고, 큰 바위가 못 가운데 누워 마치 용이 꿈틀꿈틀 구름비를 품는 듯하다 하여 용추라 불린다.

순흥 사람들은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살아있는 돼지를 이곳에서 목을 베어 돼지머리를 용추 깊은 곳에 던져 넣으면, 소의 물이 끓어오르듯 핏물이 솟구친다고 한다. 돼지의 목을 베어 던져 넣음은 용이 깃들어 있는 신성한 처소에 핏물로 더럽힘으로써, 신령이 그 더러움을 씻어내고자 곧 비를 내리게 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5곡 청련동애(靑蓮東崖)

5곡이 새겨진 바위 인위적으로 판 머리만 한 홈이 보인다. 아마도 안간교(安干橋) 다릿발을 세웠던 흔적인 것 같다. 안간교 건너 동쪽 낭떠러지로 물이 흘러내린다. 바로 청련암 동쪽 벼랑이다. 하지만 서쪽 어딘가 있어야 할 청련암(靑蓮庵)은 찾을 길 없다.

 

6곡 목욕담(沐浴潭)

6곡 아래와 위로 선녀가 내려와 몰래 몸을 씻었을 듯한 바위와 숲에 가려진 숨겨진 소()가 있다. 옛 선비들이 그 물속으로 첨벙거리며 뛰어들었을 리 없겠지만, 자꾸 뛰어들고픈 충동이 일어난다. 옆에 앉아만 있어도 그 맑은 물에 취해 빠져든 것 마냥 마음마저 씻어 준다."

 

7곡 탁영담(濯纓潭)

초나라 굴원이 지은 어부사(漁父辭)의 구절에서 인용하였다.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濁吾足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고 물리 흐리거든 내 발을 씻을 수 있으리라) 세상을 살다 보면 주어진 상황에 따라 가장 적절한 대처 방법을 강구하여야 하는 경우를 수없이 직면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선택의 고민에 빠지게 된다. 선택의 고민에서 다소 벗어나고자 한다면 굴원의 이 어부사(漁父辭)구절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7곡은 언제나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니 내 갓끈을 씻으면 된다. 나아가 갓끈뿐만 아니라 맑은 물에 내 마음의 때도 함께 씻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8곡 관란대(觀瀾臺)

觀水有術, 必觀其瀾 (물을 보는 데는 방법이 있나니 반드시 그 여울목을 보아야 하느니라) 맹자'(孟子)진심장구(盡心章句」 상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리고 그 주해에 觀水之瀾, 則知其源之有本矣 (물의 여울목을 보면 곧 그 수원에 근본이 있음을 알게 되니라'라는 풀이가 있다. 8곡의 물살은 제법 빠르다. 그 물은 자연스럽게 여울을 이루며 계속 흐른다. 그 흐름이 계속될 수 있는 것은 그 근본이 확실하게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근원이 멀고 깊은 물이 여울져 흐르는 여울목을 바라보면서 본원지수(本源之水)를 생각하는 태도를 우리는 가질 필요가 있다.

죽계구곡의 제8곡 관란대.
죽계구곡의 제8곡 관란대.

 

9곡 이화동(梨花洞)

옥녀봉(玉女峯)과 이자산(二子山 ) 사이로 흐르는 죽계구곡은 이화동까지이다. 이화동 아래 깊은 물을 용소(龍沼)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화동의 어원은 예전에 배꽃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현재는 배보다 주변이 모두 사과밭이다. 이화동 다리 건너 산기슭은 배 순의 대장간이 있던 자리이다. 그 모습은 없지만, 불에 그슬린 많은 돌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소수서원 강학당 내부. 소수서원은 사적 제55호이며, 1542년(중종 37) 풍기군수 주세붕이 숙수사 터에 안향 선생의 사묘를 건립한 것이 그 시원(始原)이다.
소수서원 강학당 내부. 소수서원은 사적 제55호이며, 1542년(중종 37) 풍기군수 주세붕이 숙수사 터에 안향 선생의 사묘를 건립한 것이 그 시원(始原)이다.
삼복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고 있는 소수서원의 유생들.
삼복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고 있는 소수서원의 유생들.
소수서원 경자(敬字) 바위. 서원을 끼고 흐르는 죽계천 바위에 주세붕이 쓴 ‘경(敬)’과 퇴계 이황이 쓴 ‘백운동(白雲洞)’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소수서원 경자(敬字) 바위. 서원을 끼고 흐르는 죽계천 바위에 주세붕이 쓴 ‘경(敬)’과 퇴계 이황이 쓴 ‘백운동(白雲洞)’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죽계구곡 가는 길>

죽계구곡은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 소백산에 있는 계곡이다. 소백산 초암사 앞의 제1곡을 시작으로 삼괴정 근처의 제9곡에 이르기까지 약 2에 걸쳐 흐르는 계곡을 죽계구곡이라고 한다.

부천에서 소수서원까지 승용차로 3시간여가 소요되며 소수서원에서 소백산 삼괴정 등산로 입구까지는 3.85분여가 소요된다. 인근에 부석사, 영주 순흥 벽화 고분(榮州順興壁畵古墳) 등 관광명소가 있다.

 

| 콩나물신문 편집위원회 사진 | 류백현(한국산서회 인문산행팀장)

 

키워드

#죽계구곡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