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괴된 일터공동체

노트북을 사려고 상동 홈플러스를 찾았다가 사고를 목격했다.

 
지난주 토요일(2014.12.13) 상동 홈플러스에서 있었던 사고에 대한 글입니다. 부천 지역신문에서 다뤘으면 해서 콩나물신문에 제보합니다.

쾅! 와장창!
대형사고다. 홈플러스 가전코너의 한쪽 벽면이 무너졌다. 그 벽면에는 몸값 비싼 벽걸이 TV가 10대 넘게 걸려있었다. 아마 TV전시를 위해 나무판으로 설치한 가벽이 TV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사고는 아니었다. 몇 분 전으로 상황을 되감기 하자면 이렇다. 나는 TV코너 옆 노트북 코너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런데 LG TV코너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이 몸으로 벽면 TV를 지탱하기 시작했다. TV는 10대가 족히 넘었지만 직원은 3명 뿐이었다. 그 상황을 바로 옆 삼성TV 아저씨도, 노트북 코너 아저씨도, 카메라 코너 아저씨도, 냉장고, 세탁기, 기타가전코너 아저씨, 아줌마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말 그대로 멀뚱멀뚱 지켜보고 있었다. 누구도 돕지 않았다. 아저씨 3명은 쏟아지는 벽면의 TV를 몸으로 받친 채 전화 좀 해달라고 소리쳤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지나가던 한 아줌마는 예언 하듯 이렇게 말했다. "저 비싼 TV들 와장창 깨지는거 아냐? 호호" 악마같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벽이 무너졌다. 쾅! 아저씨 3명이 벽 밑에 깔렸다. 아저씨 눈 밑에서 피가 났다. 그제서야 홈플러스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몇 명 왔다. 무전기로 심각한 상황임을 전했다. 그리고 놀란 손님들에겐 이렇게 말했다. "아무일도 없어요. 하지만 위험하니 자리를 비켜주세요." "저 아저씨 얼굴에 피나잖아요." 라고 누군가 소리쳤다. 돌아오는 대답은 "아니에요. 괜찮아요." 였다. 자기 얼굴에 피나는 거 아니라고 막 괜찮다고 한다.

똑같아 보이던 홈플러스 직원들이 분리되어 보인다. TV 밑에 깔린 아저씨들은 홈플러스에 근무하며 LG TV를 판매하지만 홈플러스 직원도 LG직원도 아닌 하청업체 직원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삼성 TV, 노트북, 카메라, 냉장고, 세탁기, 기타가전코너에서 일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고보니 이마트에 근무하며 풀무원 제품을 판촉했던 여성노동자가 근무 중 사망했을 때, 이마트도, 풀무원도, 하청업체도 서로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했던 올해 초 사건이 떠오른다. 뒤늦게 달려온 홈플러스 조끼를 입은 사람들도 매장의 보안을 담당하는 하청업체(보안업체)의 직원이다. 분명 사고 원인은 부실한 홈플러스 설비때문이지만, 사고의 당사자도, 수습하려는 직원 중에도 홈플러스 직원은 없었다. 아마 책임져야 할 주체도 홈플러스는 아닐거다. 홈플러스와 입점기업, 하청업체, 노동자 중 홈플러스는 갑 중의 갑이니까.

그래서 그랬나보다. 본인의 구역에서 멀뚱멀뚱 지켜보기만 하는 게 오히려 정상이었다. 나는 노트북만 팔면 되고, 저 사람은 TV만 팔면 된다. TV를 받치던 사람이 전화 좀 해달라고 외쳤지만, 어디에 전화해야할지 몰라 누구도 나설 수 없었던거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별개의 존재들이었다.

 
홈플러스 보안직원들은 빠르게 펜스를 쳤다. 보기 흉한 사고현장을 가리고 아무 일 없다고 말하며 영업을 지속했다. 비정규직이라는 비정상의 고용형태는 사고의 원인을 왜곡하고 책임의 주체를 숨겼다. 홈플러스 설비가 문제였다는 것을 목격했지만 홈플러스가 책임져야 할 사람은 없었다. TV가 전시된 가벽이 흔들릴 때부터 여럿이 달려 들어 사고 시기를 늦출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분절된 개인들이 긴급 상황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비정규직 사용의 남용이 일터공동체를 파괴해버리고 말았다.

쾅 하는 큰 소리에 놀랐고 피나는 아저씨 얼굴에 또 한번 놀랐지만, 사고 과정에서 동료로 보이던 그들 사이에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다는 게 명확히 보였다는 것이 가장 충격이었다. 세월호 선장의 무책임한 행동이 고용형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개인에 대한 비난을 감출 수 없었지만, 이번 사고를 통해 강렬하게 깨닫는다. 비정규직 사용은 예견된 참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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