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아이와 놀자 [98]

4세에서 5세 아이들이 숲에 놀러 왔습니다. 몇몇 아이들은 열매를 모으고 몇몇 아이들은 뛰어놀며 숲을 다양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열매 모으는 아이는 둘입니다. 한 명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열매를 줍고 한 명은 가지에 매달린 열매를 따서 모으고 있습니다. 근처에 있던 아이의 엄마가 아이에게 칭찬을 합니다.

바닥에 이런 열매가 있었어? 〇〇가 잘 찾는구나. 대단하다.”

아이는 열매 줍기를 멈추고 엄마를 바라보며 웃음 짓습니다. 가지에 매달린 열매를 따던 옆에 아이도 잠시 손을 멈추고 열매를 줍던 친구와 친구 엄마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이의 시선은 가지에서 땅으로 옮겨 갑니다. 따던 아이는 줍는 아이가 됩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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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다니던 아이 하나가 열매를 줍는 아이들을 지나갑니다. 아이 둘이 열심히 줍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뛰던 아이는 뛰는 것을 멈추고 아이들을 따라 열매를 줍습니다. 열매를 줍고 있으니 칭찬을 받습니다. 뛰어놀던 다른 아이도 달리기를 멈추고 함께 열매를 줍습니다. 어느 순간 모든 아이들이 바닥에 있는 열매를 주워 엄마에게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엄마는 모든 아이들에게 연신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줍고 보여주고 칭찬받고를 반복합니다. 엄마는 보고 칭찬하고를 반복합니다. 아이들은 더 많이 더 자주 보여주려고 더 빠르게 더 열심히 줍습니다. 놀이가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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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저학년 남자아이 한 명이 나무 위에 올라가 외칩니다.

! , 이거 할 수 있어?”

아이는 나무 위 좁은 공간에 한 발로 서서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나도 할 수 있어 내려와 봐.”

다른 아이도 따라 하자 먼저 한 친구가 이번엔 나무에 올라 두 손을 놓고 빙글 돌며 외칩니다.

이건? 이것도 할 수 있어?”

이번엔 아래에 있는 아이가 아무 말도 없이 쳐다만 봅니다. 위에서 외친 아이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표정이 환합니다. 반대로 아래에서 쳐다본 아이는 어깨가 처지고 표정이 어둡습니다. 놀이가 아니라 경쟁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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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우면 지금이 문제이고 불안하면 미래가 문제입니다. 불안은 심리적 욕구의 결핍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의식주, 인정, 소속 등의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육력>의 사이토 다카시는 욕망은 타인의 욕망을 모방한다.’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욕망과 욕구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을 하고 경쟁을 합니다.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모르고 확신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원하는 것을 합니다. 인정받기 위해 일을 합니다. 친구와 경쟁해 서열을 만듭니다. 인정받고 소속되기 위해 경쟁을 합니다. 아이는 두려움과 불안을 견디기 위해 열심히 일과 경쟁을 합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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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 <놀이의 힘, 진짜 놀이와 가짜 놀이>에서 진짜 놀이의 3요소로 무목적성, 자발성, 아동 주도를 제시했습니다. 진짜 놀이는 자발적이고 무계획적이어야 합니다. 부모의 칭찬으로 목적이 바뀌거나 자발성이 훼손되면 가짜 놀이입니다.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의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놀이의 특성으로 긍정적 정서를 꼽습니다. 친구와 경쟁하며 긍정적 정서를 훼손하면 가짜 놀이가 됩니다. 진짜 놀이는 스스로 판단하고 무계획적이고 즐거워야 합니다. 진짜 놀이를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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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사실은 없다 해석이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음미 되지 않는 것은 무가치하다.”라고 했습니다. 아이에게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한 해석이 중요합니다. 스스로 한 해석이야말로 중요하고 가치 있습니다.

아이는 어른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그중 부모가 가장 크겠지요. 아이가 가장 사랑하고 가장 인정받고 싶은 사람일 테니까요. 부모가 진심으로 함께 해줄 수 있는 범위에서 진짜 놀이를 해주세요. 가짜 놀이는 길어도 소용없습니다. 짧게라도 진짜 놀이를 해주세요. 그러면 아이는 부모의 시간을 가치 있게 여기고 존중할 수 있을 겁니다.

가을입니다. 단풍의 계절이죠. 숲이 알록달록 아름답게 변합니다. 시간 되실 때 아이와 손잡고 아름다운 가을 산에서 진짜 놀이로 즐거운 추억 만드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 정문기 조합원(부천방과후숲학교 대장)

* <부천방과후숲학교> 네이버 카페 운영자

* <도시 숲에서 아이 키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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