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교 이야기

산학교는 1학년부터 9학년까지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9년제 대안학교다. 나는 5년째, 산학교 7~9학년(1~3) 친구들과 지내고 있고, 그중에서도 최고 학년인 9학년 아이들 생활교사로 지지고 볶으며 함께 하고 있다. 5년을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과 지내다 보니 슬슬 아기자기한 매력의 저학년 아이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역시나 이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걸 보면 저학년이 갖지 못한 9학년 만의 치명적인 매력이 있나 보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은 최고참 9학년, 산학교 마지막 1년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을까?

 

우리는 산학교 최고참입니다

때로(아니 자주) 학생들은 교사 말보다 또래 친구나 선배들의 말을 더 잘 듣는다. 그중에서도 9학년은 산학교 최고 학년으로서 학교에서 꽤 영향력이 있는 편이다. 한창 사춘기와 중2병을 겪느라 방황의 절정을 달리는 시기지만, 그 시기의 끝 무렵인 16살 청소년은 제법 의젓하고, 차분하다. 모든 9학년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9학년이 되면 대체로 이렇게 변한다.

 

1. 8학년까지의 지난 내 흑역사를 매우 부끄러워하며 후회한다.

2. 다시 흑역사를 반복하지 않고자 의지를 다지는 시기로 후배들에게는 의지가 되는 멋진 선배의 모습을, 교사들에게는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1년 사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늘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별다른 이유는 없는 것 같다. 5년을 함께 지내보니 자연스러운 인간의 진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보통 마무리를 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제대로 매듭짓고 싶고, 마음과 의지를 새로 다지게 되는데, 그와 비슷한 것 같다. 산학교 9년 생활을 의미 있게 마무리하고,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 그 무게감이 최고참 9학년 아이들을 한 단계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만드는 것 같다.

9학년이 되면 왠지 해야 할 것만 같은느낌이 들고,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생각이 든단다. 올해 학생들의 대표 조직인 학생회가 정식으로 조직되어 운영되었는데, 9학년 정원의 반이 학생회에 들어갔고, 이끔이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작년에 있었던 회장단에는 9학년 모두가 지원했고, 그 이전에도 학교 대소사에 9학년의 참여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후회를 남기기 싫어서든, 간절히 원해서든, 아니면 단순한 의무감이든 졸업을 앞둔 9학년 아이들은 관심 없던 것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고, 늘 귀찮기만 하던 것들(후배들 도와주기, 이끔이 역할 등)에 마음을 내기도 하면서 제법 성숙하고, 멋진 청소년의 모습이 된다. 산학교 최고참은 이렇게 이름값을 하며 마지막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

 

바쁘다, 바빠!

이동학습

어느 학교든 최고 학년의 교육과정이 가장 고민이 많다. 졸업을 앞두고 어떤 정리와 마무리가 필요한지, 졸업 이후 진학과 진로에 대한 고민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한 배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늘 고민한다. 산학교 9학년 역시 마찬가지다. 고등과정으로 진학하기 전, 졸업을 앞둔 9학년들은 고등 진학과 진로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 과정에서 교사가 어떤 도움과 지지를 주어야 할까. 어떤 교육과정이 필요할까. 내가 9학년을 맡은 첫해는 학생이 4명밖에 없었음에도 원서 작성 외에 졸업과 진로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던 것 같다. 현재 학교 교육과정에서는(학교라는 제한적인 환경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교사회는 9학년 교육과정으로 이동학습을 시작했다.

이동학습은 상반기 9학년 교육과정의 전부라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익숙한 집과 학교를 벗어나 자립을 경험하고, 학교에서의 배움을 실제 삶으로 연결해보는 것이 목표인 이동학습은 아이들에게 버거울 때도 있지만, 그만큼 배움도 크다. 산학교의 들살이 및 생활교육의 꽃이 9학년 이동학습에서 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사는 아이들이 삶을 스스로 살아내도록, 단단히 설 수 있도록 지켜봐 주고 그 과정을 함께 하는 동료로서의 역할만 한다. 이동학습은 아이들에게도 큰 배움이지만, 아이들과 밀접하게 관계 맺고, 이해할 수 있어 교사에게도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다.

이동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같이 생활을 꾸려 나가는 것이다. 각자의 생활 방식이 있지만, 함께 살아야 하는 이동학습에서는 자기의 방식만 고집할 수는 없다. 내가 편한 방식이 아닌 우리에게 필요한 방식을 선택해야 하고, 하기 싫은 거라도 함께사는 공간이기 때문에 해야 하고,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 이동학습에서 가장 갈등이 많은 부분이 이 부분이다. “함께살면서 서로에게 맞추고 배려하는 것. 그리고 노력하는 것. 이 특이한 이동학습 환경은 아이들이 자기의 한계와 어려움을 마주하게 한다. 아이들은 공동체를 경험하며, 스스로 한계에 부딪히고, 어려움에 직면한다. 학교였다면 피하고 말았겠지만, 이동학습에서는 그럴 수 없다. 나의 민낯을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고 고된 과정이지만,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고, 나에 대한 이해와 자신감을 갖게 된다. 아이들은 이동학습을 통해 한 뼘 더 성장하고 단단해진다.

 

진로, 영원한 숙제

졸업을 앞둔 9학년은 산학교 졸업 이후의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무조건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내가 하고 싶은 배움과 나에게 필요한 교육과정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선택한다. 9학년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 것이 진로다. 담당 교사인 나조차도 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하는 과정에서 한 번도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 그저 주어진 대로,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학교에 다녔다.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학 졸업 이후, 처음 생각해봤던 것 같다. (그 고민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래서인지 자기 진로를 고민하는 9학년 아이들을 볼 때면 대단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이럴 때, 졸업한 선배들의 조언만큼 도움 되는 건 없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고민과 어려움을 지나온 선배들의 경험담과 조언은 9학년 아이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된다. 해마다 다르긴 했지만, 매년 선배들과의 만남을 가져왔었는데, 올해는 코로나19 상황에도 두 차례나 만나는 자리를 가졌다. 한 번은 서면 인터뷰로, 한 번은 줌으로. 각기 다른 고등과정을 진학한 선배들은 진심을 다해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선배들이 진학한 학교나 교육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도움이 많이 되었지만, 9학년 아이들이 가장 의미 있게 받아들인 조언 중 하나는,

고등학교가 중요하긴 하지만, 하다가 안 맞으면 다른 걸 선택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마. 막상 지나오니 내가 왜 그렇게 고민했나 싶어.”

라는 말이다. 그 시기를 지혜롭게 지나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조언이 아닐까. 분명 진로가 쉽지 않고, 어렵지만 9학년 아이들이 좀 더 편하게 나의 배움을 찾고, 행복하게 10대의 마지막을 보내는 것에 집중한다면 조금은 부담이 줄어들지 않을까. 지금 모습으로도 충분히, 어느 곳에서든 자기 역량을 맘껏 발휘하며 지낼 자질이 충분하니 말이다.

 

, 그리고 시작

9학년은 조금 있으면 졸업을 한다. 졸업이 다가오면 학교에 다닐 때는 몰랐던 학교에 대한 애정이 마구 생긴다. 그동안 배웠던 것들이 하나하나 스쳐 가고, 깨닫지 못했던 학교의 소중함도 느껴진다. 머리가 커져 교사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할 때도 있지만, 9학년과 함께 하다 보면 즐겁고, 뿌듯한 순간이 더 많다. (내가 키운 건 아니지만) 꼬꼬마였던 아이들이 어느새 자라 제법 어른티를 내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오고, 교사와 티키타카 농담을 주고받을 때면 즐겁고, 답이 없는 고민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 모습을 보면 멋지게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

졸업생들과 간혹 이메일이나 문자로 소식을 주고받곤 한다. 산학교에서의 배움이 고등학교 적응과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 흥미를 찾아 즐겁게 배움을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 학교에 오고 싶다는 이야기 등 아이들이 전달해주는 소식에서 각자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고, 마음이 벅찰 때가 많다. 올해는 졸업생들이 동아리도 열어 후배들에게 배움을 나눠주기도 했다. 산학교에서의 배움은 끝이지만, 졸업 이후에도 아이들은 산학교와 계속 연결되어 있다. 올해 9학년들도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산학교 졸업 이후, 더 큰 세상과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며 지낼 것이다. 나는 마음 다해 어디에 있든 빛날, 나의 예쁜 9학년들을 언제나 응원할 것이다. 마지막 남은 산학교 생활을 의미 있고, 즐겁게 마무리하길, 멋지게 작별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아미(산학교 생활교사)

 

*산학교는 공동육아의 철학과 이념을 바탕으로 세워진 초,중등 9년제 대안학교입니다산학교 바로가기 ☞  http://san.gongdong.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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