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살은 2015년 예산

2015년도 예산안을 확정했습니다. 시집행부가 제출한 총 1조 1,828억원 중에서 74억 8,510만원을 삭감한 1조 1,753억원이 내년도 예산입니다. 시집행부는 내년 예산을 짜면서 1,400억원이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발행예정인 지방채 300억원을 포함해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부족한 예산 중 685억원은 지방세 증가와 토지매각 등으로 충당할 가능성이 있다지만 나머지 730억원은 뾰족한 대책이 없습니다. 큰 일입니다.

소속인 재정문화위원회에서는 행정감사에서 지적한 내용들을 토대로 적폐 해소 차원에서 많은 예산을 삭감했습니다. 우리 시의회는 행정감사와 예산심사를 모두 2차 정례회에서 하기 때문에 행정감사 때 예산안이 이미 편성 돼 있는 상태입니다. 행정감사 지적이 예산안에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고, 그 만큼 삭감할 예산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이번에는 지방선거 이후 새로 구성된 상임위원회 위원들이므로 새로운 시각에서 적폐를 해소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같은 상임위원회에 속한 우지영 의원은 우리 위원회 예산심사 후 ‘3대 적폐 해소’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우 의원이 말하는 3대 적폐는 권력과 유착한 기득권 집단 예산, 특정 단체 또는 특정인과 관련된 몰아주기 예산, 법을 넘나드는 관행적 예산 등이며, 이를 해소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이 평가에 저 역시 많이 공감합니다.

그런데 예결특위에서는 3대 적폐가 판을 치는 장면을 목도해야 했습니다. 예결특위까지 함께 했던 우지영 의원은 예결특위의 모습을 ‘지록위마’라고 표현하기까지 했습니다. 사슴을 갖다놓고 여럿이서 말이라고 우기니 사슴이 말이 되어버리고, 사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바보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마침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가 지록위마라고 합니다. 국가고 지역이고 할 것 없이 온통 비정상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사슴을 사슴이라 말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한 시절입니다.

이번 예산심사를 통해 본 몇 가지 예산에 대해 브리핑 드리겠습니다.

0 의원 공무국외연수비 기준액 동결 : 의원공무연수비는 연간 1인당 200만원을 기준으로 편성하되 25% 범위 내에서 증액할 수 있다는 단서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예산절감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기준액을 200만원으로 고수했습니다. 시의회가 오랜만에 칭찬 받을 일 했죠?

0 행정광고비 일부 삭감 : 시 행정을 홍보하기 위한 언론광고비가 4억 1400만원 편성 돼 있었습니다. 발행부수 등을 기준으로 언론사별 등급을 나누어 지급하고 있지만 정작 언론사별 지급횟수에 대해서는 아무 기준이 없었습니다. 기획광고라 하여 특정언론에만 임의로 집행하는 사례가 발견되어 상임위에서는 횟수에 대해서도 기준을 마련해 오라며 50%를 삭감했는데 예결위에서는 20%인 8,280만원만 삭감했습니다. 시의회에도 언론광고비가 8,250만원이 편성돼 있는데 의회운영위가 일부 삭감한 것을 예결위가 전부 살렸습니다. 시의회의 집행횟수 기준은 의회 소식을 많이 싣는 신문, 우호적인 기사를 많이 싣는 신문에 기획광고를 준다는 것인데 이것 역시 언론 길들이기가 될 수 있는 잘못된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0 한국노총 행사보조금 등 일부 삭감 : 한국노총 부천지부에 몇 가지 보조금이 지원돼 오고 있습니다. 그 중 일부 예산이 방만하게 사용된다는 사실을 행감에서 발견하고 상임위에서 그에 해당하는 예산 일부를 삭감했습니다. 산업시찰을 명목으로 근로자 가족을 놀이동산에 데려가서 비용을 전부 내 주는 예산, 노동단체 국제교류를 하면서 항공료 및 체제비용 전액을 지원하는 예산, 노동단체 교류를 위해 방한한 외국 방문단 일행에게 제주도 여행 경비 및 전 일정 숙박비 등을 제공한 예산, 노총 체육대회를 하면서 자전거 등 경품을 구입한 예산 등은 다른 단체에서는 사례를 찾기 힘듭니다. 상임위에서 삭감한 금액 중 일부는 예결위에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0 근로자장학재단 출연금 삭감 : 본회의장에서까지 논란이 된 예산입니다. 한국노총부천지부가 2002년도에 만든 장학재단입니다. 이사장은 한국노총 부천지부장이고 이사 대부분이 한국노총 관련자입니다. 전체 출연금이 12억 1,500만원인데 그 중 10억 5천만원이 부천시 예산으로 지원됐습니다. 지방재정법과 지방예산편성기준에는 조례로 통제할 수 없는 재단에는 출연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올해 추가로 편성한 출연금 1억원을 삭감했더니 예결특위가 표결로 살려놓았습니다. 본회의장에 수정안을 제출하여 표결 끝에 최종 삭감됐습니다.

0 승마장 관련 예산 부활 : 승마를 위한 예산이 여러 가지 명목으로 편성됐습니다. 승마장은 여월동 농업공원 옆에 있는 한 곳 뿐이므로 사실상 이 곳을 지원하기 위한 특혜성 예산이라는 판단으로 상임위에서 많이 삭감했는데 예결특위에서 전부 살려 놓았습니다. 어린이 승마체험교실, 승마장 육성지원, 찾아가는 승마교실, 전문승용마 시범생산 지원에는 도비가 일부 내시됐고 승마교실 운영이라는 명목의 시비도 2억여원이 편성됐습니다.

0 부천예총 관련 예산 삭감 : 이번 예산심사에서 직격탄을 맞은 단체입니다. 예총 산하에는 분야별 9개 협회가 있는데 협회별 행사예산이 보조금으로 편성돼 있습니다. 상임위에서 행사별로 예산 30%를 삭감했으며 예총이 주관하는 복사골예술제 예산도 4억원 중 1억원을 삭감했습니다. 행정감사에서 지적받은 방만한 운영이 예산 삭감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예총은 행사보이콧 등 강수를 뒀고 예결특위에서 일부만 삭감하는 것으로 조정했습니다. 보조금만으로 단체를 운영하던 관행을 돌아보는 계기는 될 것 같습니다.

0 성탄트리 및 연등행사 예산 부활 : 기독교연합회와 불교연합회에 각각 9백만원씩 보조금을 지급하는 예산입니다.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행사에는 지원할 수 없다는 근거로 상임위가 삭감한 예산인데 예결특위가 표결을 통해 전부 살려 놓았습니다. 기독교연합회는 연말에 불우이웃돕기로 1억원씩이나 기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 단체가 굳이 얼마 되지 않는 시보조금을 받으려 애쓰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0 박물관 관장 인건비 부활 : 유럽자기박물관, 수석박물관, 교육박물관 등 3개 박물관 관장 인건비 전액인 1억 3천여만원을 상임위원회에서 삭감했는데 예결특위에서 부활했습니다. 위 3개 박물관은 현 관장들이 소장품을 기부함으로써 생긴 박물관인데, 기증의 대가로 종신 박물관장으로 임명하고 급여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불합리한 협약이라는 것이 상임위 지적이었고, 올해 안에 대안을 만들라는 것이 예결특위의 부활 조건이었습니다. 한편, 우리 시는 옹기박물관 옆에 이 세 개 박물관을 통합하는 건물을 신축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 박물관들이 그 만한 가치가 있는지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0 부천FC 지원금 삭감 : 2012년에 프로 2부에 진입하면서 지원협약을 했습니다. 첫해에는 15억원을 지원하고 매년 2억원씩을 줄여가며 지원하기로 한 것입니다. 내년은 3년차로 11억원을 지원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행정감사에서 운영부실에 대해 호된 지적을 당한 것이 예산심사로 이어져서 상임위원회에서 5억원을 삭감 당했습니다. 지원예산을 이 정도로 토막내버리는 것은 사실상 구단을 운영하지 말라는 이야기나 다름없기 때문에 그것은 별도로 논의하고 일단은 약속한 예산 전액을 지원하자고 주장했지만 예결특위에서 오히려 1억원을 더 삭감해 버렸습니다. 추경 때까지 개선방안을 마련해보고 안되면 해체하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야겠지요? 전국 최초로 시민구단을 해체하는 독배를 마실 배짱은 있는지, 그럴 것이면 처음 창단 때 더 신중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는지 궁금합니다. FC에 대해 이렇게 냉정한 분들이 축구관람 편의를 위해 보조관람석을 설치하는 예산 1억 8천만원은 다시 살린 이유도 궁금합니다.

0 체육회 사무처장 인건비 전액 삭감 : 낙하산 인사, 보은인사로 떠들썩했던 체육회 사무처장 인건비를 예결특위에서 전액 삭감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현 부천시장 선거캠프의 본부장으로 일했던 분이 선거 후 체육회 사무처장으로 임명됐습니다. 이 분은 특정 향우회 회장을 지낸 분이기도 합니다. 시집행부는 체육회와 생활체육회의 통합을 위한 직제신설이라 주장했지만 통합으로 인건비를 더 늘리는 것은 명분이 없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모든 곳에 이런 원칙이 적용되기를 바랍니다.

0 지속가능발전협의회 예산 삭감 : 1992년 리우회의 이후 만들어진 지방의제 실천기구입니다. 민관 거버넌스를 위해 운영하는 기구인데 연간 운영예산 2억 4천만원 중 1억원만 남기고 1억 4천만원이 삭감됐습니다. 저의 배우자가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곳이라서, 제가 노총예산 삭감을 주도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보복으로 삭감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합니다. 예결특위에서도 다시 살지 못했습니다.

0 상동호수공원 수상레포츠 시설 예산 : 호수공원에 수상레저시설을 운영하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수상레포츠 시설을 운영하기 위한 기반시설 조성을 위해 5천만원이 편성되어 왔는데 1천만원을 삭감하고 4천만원을 편성했습니다. 다만, 이 예산으로 호수공원의 노후된 목재 다리를 재설치하는 것으로 부기를 했습니다. 호수공원에 수상레저시설을 운영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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