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아이와 놀자 [100]

작년 8살 아이가 자신의 팔 길이만 한 나뭇가지를 들고 커다란 나무를 향해 뛰어갑니다. 한 손에 쥐어지는 막대기 같은 나뭇가지로 큰 나무의 옆을 칩니다.

악당아! 받아라!”

큰 나무는 악당이 되고 아이는 주인공이 됩니다. 아이가 들고 있는 나뭇가지를 큰 나무는 아무렇지 않게 튕겨냅니다. 아이는 나뭇가지를 더 꼭 쥐고 다시 나무를 칩니다.

이얏! 받아랏!”

큰 나무는 여전히 아이의 휘두름을 의연하게 받아냅니다. 두 손으로 나뭇가지를 꼭 잡은 아이는 결연한 눈빛으로 다시 큰 나무를 향해 휘두릅니다. 다섯 번 정도 소리치며 휘둘렀을까? 아이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치는 것을 멈춥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3~4년 전 7살 아이가 놀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똑같이 나무를 휘두르며 놀이를 하는 아이는 20분 넘게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시간을 보냅니다. 상상 속에서 나무는 악당이 되고 아이는 악당을 물리치는 주인공이 되어 마음껏 힘을 겨룹니다. 다양한 악당들과 결투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그때는 역할 놀이를 해도 20~30분은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5분에서 10분을 넘기지 못합니다. ‘숨바꼭질’, ‘술래잡기’, ‘도둑과 경찰’, ‘얼음땡’, ‘꼬리잡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 해가 져도 노느라 집에 돌아가지 않았던 오래되고 검증된 놀이마저도 아이들의 관심을 오래 끌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은 점점 더 많은 정보에 노출됩니다.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서 보고 배웁니다. 많은 체험을 통해 보고 배웁니다. 어른들을 통해 보고 배웁니다. 과거에 놀이는 1~2살 차의 또래와 함께 직접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은 놀이가 간접적이고 혼자 하는 것이 많습니다. 또래와 함께 만들기보다 혼자 만들고 또래와 이야기하기보다 선생님과 이야기합니다. 혼자 했던 경험들로 여럿보다 혼자가 편하고 즐겁게 느껴집니다. 점점 또래와 함께 하는 즐거움은 경험하기 쉽지 않습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TV 속의 수많은 리얼리티 쇼는 다른 사람의 삶을 간접적으로 지켜봅니다. 다른 사람이 노래하는 모습, 다른 사람이 운동하는 모습, 다른 사람이 놀이하는 모습을 봅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하는 삶, 건강한 삶, 재미있는 삶을 보며 희로애락을 느낍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VIP’라 불리며 돈이 넘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참여하는 오징어 게임은 VIP들이 게임을 구경하고 배팅하며 즐기기 위한 돈으로 운영됩니다. VIP들도 게임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보면서 즐깁니다. TV 앞에서 리얼 서바이벌 쇼를 보고 있는 많은 사람도 ‘VIP'이지 않을까요? 직접 해보기보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며 즐거움을 찾는 간접적인 삶, 아이들은 간접적인 삶을 모방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다수가 즐기는 콘텐츠는 점점 더 많이 만들어집니다. 다량의 획일화된 형식이 최고로 즐겁고 필요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로버트 치알디니의 책 <설득의 심리학>에서 사회적 증거로 사람은 대중의 의견을 따르는 모방 행동을 한다고 했습니다. 심리학자 로버트 오키너가 유치원의 내성적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동적 놀이하는 다른 아이들의 영상을 보여주니 정적인 아이가 동적인 아이들과 놀았다고 합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아이들은 성장하기 위해 사회를 배워 갑니다. 배우기 위해 주변을 유심히 관찰하고 모방합니다. 사회는 변했습니다. 골목이나 학교에서 직접 하는 놀이에서 TV나 핸드폰에서 지켜보는 놀이로 사회가 바뀌어 갑니다. 골목이나 학교에 걸어가서 아이들과 어렵게 소통하여 놀이하는 노력 대신에 집에서 TV 리모컨과 핸드폰 손가락으로 손쉽게 즐거움을 느낍니다. 이런 사회적 변화가 아이들의 집중력을 낮아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요? 함께하는 직접 경험의 기쁨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닐까요?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사진은 본 이야기와 관계없습니다.

 

숲에 오는 아이들의 연령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숲 관련 일을 하시는 분이 예전엔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즐거워했는데 요즘은 7세 정도까지만 즐거워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갈수록 점점 아이들은 숲 활동을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숲은 자극적이지 않습니다. 스스로 호기심을 가지고 발견하고 만들어가야 하는 공간입니다. 책처럼 수동적입니다. 앞으로 아이들은 더 많은 자극에 노출될 것입니다. 어린 시절, 사회에 간섭이 적은 본능적 놀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할지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조금이라도 상상하는 시간, 친구들과 놀이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길 기원해 봅니다.

가을입니다. 낮에는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뛰어놀기 좋습니다. 아이와 동네 공원과 근처 숲에 나가 뛰어보시면 좋겠습니다.

 

| 정문기 조합원(부천방과후숲학교 대장)

* <부천방과후숲학교> 네이버 카페 운영자

* <도시 숲에서 아이 키우기> 저자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