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청마해를 맞아 말처럼 뛰겠다고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며칠 안 남았다. 연말 행사 쫓아다니다 보면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는 것이 피부에 와 닿고 TV, SNS를 통해 연말분위기를 인지할 수 있다. TV에서는 연예 대상, 무슨 대상인지 모르지만 시상식에서 연예인들이 웃고 상을 받는 연예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예전에는 연예인 이름을 줄줄이 외웠는데 이젠 관심 밖으로 밀려나서 그런지,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강호동, 유재석 참 오랫동안 안방을 장악하고 있다. 대단한 능력가다. 2014년 열심히 산 우리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야겠다.
 
3일 연속 송년회를 쫓아다니다 보니 몸이 축 처진다. 눈을 뜨니 새벽 4시다. 대략난감이다. 이른 아침에 마땅히 할 일이 없다.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을 바꾸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는 말이 있다. 습관이 참 무섭다.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이른 아침 시간을 보내는 습관 중에 하나가 되었다.
 
사소하게 여겨온 아주 작은 습관 하나가 우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 있는 것처럼, 작은 습관 하나를 바꿈으로써 삶 전체가 변화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습관의 힘이라고 하는데 작은 습관 하나인 글쟁이가 아닌 낙서쟁이로서 자판을 두드리는 것에 어느 정도 만족을 한다.
 
송년회에서 만난 분들의 다수가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 영화 '국제시장'은 흥남 부두에서 국제시장으로, 서독 탄광 막장에서 베트남 정글로. 혹독한 현대사를 몸뚱이 하나로 살아내야 했던 아버지들 앞에 올리는 헌사(獻辭)란다. 힘들고 괴로울 때면 안타까워하고 근심으로 자식을 돌보는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삼형제 중 인생 멋대로, 막 사는 둘째 아들 때문에 늘 아파한다. 장남은 공무원, 막내는 대기업 부장이라 걱정이 없단다. 통영에서 아버지를 뵐 때마다 가슴이 아려온다. 못난 자식 때문에 주름이 더 깊어진 것 같아서다.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아버지라는 것을 늦게나마 아는 자식이 많다. 뒤늦게 불효자식이라고 울어봐야 소용없다. 살아생전에 잘 해야 하는데 이 핑계 저 핑계로 자식노릇 못하는 아들딸들이 한둘일까. 강해 보이지만 안으로는 한없이 여린 아버지라는 것도 이젠 조금 안다. 마도로스, 선원은 아니었지만 바다에서 거칠게 살았다. 자식 기 살리겠다고 하고 싶은 거 다해주려고, 거친 바다와 싸우면서 자식을 키운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마 영화 '국제시장'을 본다면 눈시울이 붉어질 것 같다. 서예를 즐기며 상을 타셨다며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자랑하는 아버지가 너무 사랑스럽다. 아버지가 외로워 할까봐 삼형제 단체카톡방에 아버지를 초대했다. 가족 밴드에서도 아버지와 문자를 주고받는다. 문자 보내는 재미에 빠진 아버지가 친구 같아 좋다.
 
2014년 상반기 하고 싶은 일이 있어 열심히 뛰었다. 그러나 실패,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무모한 도전이라고 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도전하고 싶었다. 건강한 정신으로 건강한 사회를 위해 돈, 백도 없었지만 객기를 부리고 싶었다. 무모한 도전, 객기 부렸다고 해도 도전한 것에는 후회가 없다. 타임머신 타고 그 시간, 그 공간으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도전하고 싶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만나는 게 큰 기쁨이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캔버스 그림을 보면서 작가를 보게 되었다. 생긴 대로 논다는 말이 있다. 생긴 거 하고 캔버스 그림하고 매치가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산적같이 생겼는데 섬세하게 그리는 화가도 있다. 산적은 아니지만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이군우 화가의 그림을 볼 때마다 놀란다. 밀양 촌놈이 화가가 되기까지의 스토리를 듣고 있노라면 짠하다. 지금은 부모의 경제력이 없으면 붓을 잡을 수가 없다고 한다. 이군우 화가는 소 팔아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팔려 간 소에게 큰절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11월 소로로 갤러리에 전시한 김연옥 작가, 12월에 전시한 구원선 작가가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연예대상 시상식에서도 상을 받으려면 하반기 활동이 왕성해야 상을 탄다고 한다. 하반기에 두 작가를 만날 수 있어 큰 행운이었다. 두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창작은 고통이다. 고통마저 즐기는 수준까지 온 것 같다.
 
11월초부터 우연한 기회에 점토나 도자기로 만든 간단한 취주악기인 오카리나를 배우게 되었다. 통영시청 병무계 단기병으로 근무할 때 시간 나는 대로 피아노를 배웠었다. 피아노 학원하는 분이 친구 누나여서 편안하게 배웠다. 1992년 호주 유학을 가기 전 호주에서 외로울 때 악기라도 하나 다룰 수 있다면 향수병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아 피아노를 배웠던 것 같다. 판단착오였다. 피아노 키보드를 살 수 있는 여건도 안 되었고 공간도 없었다.
 
오카리나는 아주 작고 귀여운 악기이다. 차안에서 주로 연습을 하는데 너무 좋다. 테니스장에서 주로 연습을 하는데 테니스 동호인들이 요즘 짜증을 낸다. 테니스는 안 치고 차에서 오카리나 연습한다고 구박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테니스 보다 오카리나 부는 것이 더 재미있다. 사랑만 변화는 것이 아니라 취미도 변하는 모양이다. 2014년 테니스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파트너의 도움이 컸다.
 
최근 사고를 쳤다. 연주를 했다. 오카리나 모임 이름이 소리샘이다. 창피스럽고 부담스러웠다. 공연 아닌 공연이 끝나자 등골에 땀이 흘렀다. 이 느낌 뭐지~, 테니스 치면서 느끼는 희열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등산하는 사람을 비웃는 사람도 있다. 다시 내려올 산을 왜 올라가느냐는 것이다. 죽을 건데 왜 태어났느냐 하고 다를 게 없다. 무식한 소리다. 악기를 다루는 게 만만치 않다. 스트레스 받으면서 왜 악기를 배우냐고 하는데, 악기가 주는 희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2014년 청마해 숨 가쁘게 뛰었다, 후회는 없다. 2015년 양띠의 해, 양은 온순하며 무리를 지어 사는 습성으로 대인관계 원만하며 순백색의 마음과 성실 화합 이해심 참을성이 뛰어나다고 한다. 양처럼 살아야겠다. 그게 쉽지는 않지만. 2014년 아름다운 한 해였다. 추억이 가득한 한 해였다. 소중한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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