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교 이야기

점심시간이다. 학교에 일이 있어 잠시 들렀다.

3학년 여자아이 셋이 자기 체구와 비슷한 기타를 들고, 악보를 보며 연습하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린이 계신 건가?

(기린 : 3, 4학년 담임이자, 우리 학교 대표 밴드부 선생님, 빨간약밴드리더(부모와 학생, 교사가 만든 밴드), 타칭 멋진뮤지션, 자칭 방구석뮤지션)

그런데, 이리저리 둘러봐도 기린은 안 계신다.

(. 이 고리타분한 추론이란. 내가 받은 교육에서 벗어나질 못하는구나.)

점심시간에 앉아서 기타를 치는 아이들.

아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그리고 눈빛이 살아 있다.

그 옆에는 중등 남학생이 소파에 앉아 기타를 치고 있다.

우리 학교 점심시간에는 라이브 음악이 흐른다. 나도 그 음악에 맞춰 흥얼대본다.

햇볕이 비치는 창가에 나란히 앉아 기타를 치는 아이들. 그 누구도 시키거나, 이끌지 않아도 음악이 좋아 기타를 스스로 찾는 아이들.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너무 예뻐서 찰칵! 사진으로 남겼다.

밴드부 야외 연습 중.
밴드부 야외 연습 중.

 

우리 집 첫째 아이, 둘째 아이가 밴드 동아리에 들어갔다.

큰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멍석을 깔고, 앞에 나가 무언가를 하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했었다. 1학년 해 보내기 잔치 때 일주일 내내 연습해놓고, 막상 발표 날, 안 하겠다고 버티던 아이를 보며, 안타깝고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큰아이가 학교 일상 속에서 밴드공연을 보고, 듣고, 매주 산회의를 하고, 아이들과 이견이 생기고, 마찰이 있을 때마다 동그라미회의를 통해 자기표현을 하고, 학교의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자치회의를 통해 역할을 정하고, 역할을 수행하는 일들을 일상적으로 겪으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고, 선택하게 하는 학교생활을 6년을 지내고 나니, 자연스레 학생회에서 의장을 하기도 하고, 스스로 밴드부를 선택하고, 자연스럽게 공연을 한다.

영상 너머 보이는 녀석의 표정은 1학년 때의 긴장은 1도 보이지 않는다.

침착하게, 아니 즐기며 기타를 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감격이 밀려온다.

아이가 성장한 시간이 그저 놀랍고, 감사하다.

 

둘째 아이는 이제 3학년이다. 에너지가 넘치고, 흥이 많은 아이에게 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음악으로 그 흥을 풀어내면 좋겠다 싶어 취미로 드럼을 권했었다. 그러나, 아이는 드럼 연습실을 한번 가보더니, 소리가 너무 커, 귀가 아파서 못하겠다고 했었다.

둘째 아이는 뭐든 시작할 때, 스스로 동기가 생겨야 하고, 본인이 결정해야 한다. 기다리기로

했다.

그랬던 그 녀석이 어느 날 밴드부에 들어갔단다. 동아리 선택 수업에서 스스로 결정했다고 한다.

5학년, 6학년, 7학년 9학년 누나 형들로 이루어진 밴드부에서 드럼을 맡았단다. 드럼의 드자로 모르는 녀석인데. 가능할까? 그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월간 산학교결성! 한 달에 1곡 연습을 하고, 공연 영상을 공유한다고 한다.

첫 방송을 보고 있자니, 감동이 밀려온다.

드럼의 드자로 모르는 녀석이, 형님들과 박자를 맞추며 비와 당신을 연주한다.

 

작년에 산학교 교장샘이신 달님의 퇴임식이 있었다. 코로나로 위축된 분위기 속에서, 산학교를 만들어주신 달님께 감사한 마음이 컸기에, 퇴임식을 멋지게 해드리고 싶었다.

작년에 나는 부모회장을 맡았고, 행사추진위원회를 맡았었다.

의미 있는 자리에 음악이 빠질 수 없기에.

그렇게 결성된 빨간약 밴드’, 부모와 교사와 학생, 3주체로 이루어진 밴드였다.

밴드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용감하게 보컬에 자원했다.

그러나, 코로나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수시로 생기고, 행사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회의 속에서, 응원차 참여했던 밴드의 연습 시간은 오히려 내게 힐링의 시간이 되었다.

이것이 음악의 힘이구나를 느꼈던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코로나로 노래방도 못 가는데, 밴드 연습을 통해 스트레스가 에너지로 승화되는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하하 후자가 맞는 것 같다. 하하하

 

3주체와 호흡하며 맞추었던 그 시간들을 몸이 기억하나 보다. 글을 쓰는 지금, 몸이 반응하는 걸 보니,

, 아무래도 빨간약밴드를 다시 재결성하자고 기린께 제안해봐야겠다.

 

우리 산학교는 이렇게 늘 음악이 있다. 음악은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 중의 하나일 뿐, 원하는 사람은 언제나 연주할 수 있고, 배울 수도 있고, 부를 수도 있다.

꼭 노래와 연주가 아니더라도, 매니저도 할 수 있고, 무대 설치, 스텝으로, 청중으로 음악을 즐길 수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면 된다. 그 장은 일상 속에서 늘 열려있기에

수업 시간에도, 동아리에서도,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방과 후 시간에도 부모도 아이도, 교사도 하고 싶으면 제안하고, 선택해서 하면 된다.

누군가 이끌지 않아도 스스로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할 수 있는 곳이다.

늘 음악이 흐르기에, 그 음악을 좋아하고 즐기는, 음악으로 소통하는 선생님 · 학생 · 부모들이 있기에 음악의 긍정적인 자극은 일상 속에 존재한다. 그렇게 세 주체가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며, 배움으로 성장하는 곳이 우리 산학교인 것이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배움과 성장. 그렇게 우리 아이들은 커가고 있다.

3학년 6학년 아이를 키우고 있는 토끼 씀.

 

| 이하경(산학교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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