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YMCA 진단과 전망

희한한 박람회가 열렸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소외되어온 비인간 존재들이 개최한 박람회였다. 인간들에게 철저히 소외당한 자연의 벗들을 대표하여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토로하게 만든 슬픈 전시장이었다. 이 박람회는 생명다양성재단을 통해 20211130일부터 125일까지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되었다. 필자는 박람회 첫날 방문하여 깊은 울림을 받았고, 마지막 날에 아이들과 함께 다시 방문하였다. 아쉽게도 박람회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이 글을 통해서라도 이들이 전하는 호소와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박람회를 통해 이들은 절규하고 있다. “사람들은 동물들을 그렇게 좋아하던데, 왜 이렇게 우리를 학대하나요? 가만히 잘살고 있던 우리들의 집에 왜 도로를 놓았나요?” 희한한 박람회장에서 전해진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고, 우리는 이들 야생 비인간 존재들에게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는지 성찰해보자.

 

#철새

타국에서 오는 우리들은 난민, 바이러스, 기생충과 함께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우리가 해마다 머무는 곳을 아주 태연하게 파괴한다. 이전부터 비가 많이 올 때마다 강물이 불어나 넘친다면서 강바닥을 뒤엎고 콘크리트로 강둑을 덮었다. 덤불이 무성하게 자라 더러워 보인다며 봄·가을마다 예초기와 전기톱으로 싹싹 쓸어내는 것은 예사이다. 도로, 아파트, 상가를 강어귀에 너무나 가까이 붙여 짓고, 강변과 강둑에 온갖 시설을 만들었다.

한강에 가까운 안양천 하류에 철새보호구역이 지정되어, 우리 물새들은 오래 발붙이고 살 만한 터전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돌아오기 시작하는 시절에 대규모로 강바닥을 파헤치는 공사가 시작되어 우리의 기대는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우리의 존재에 관심을 두는 인간들이 공사를 저지하려고 애를 썼다고 들었지만, 공사는 강행되었고, 강바닥에 있던 우리의 먹을거리와 우리를 사람들의 시선에서 숨겨두던 갈대숲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우리보고 오라는 건가, 말라는 건가, 여기에 살라는 건가, 말라는 건가.

 

#

인간은 살아있는 우리의 몸에 고무호스를 꽂아 웅담이라 부르며 쓸개즙을 빼어간다. 하지만 생각해 보았는가? 이것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겪는 고통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그들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 떠들썩하게 웃으며 우리의 쓸개즙을 마실 동안, 우리는 매우 좁고 더러운 사육장에서 흙도 밟아보지 못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받아먹으며 일생을 보내고 있다. 갇혀있는 동료들 대부분은 정신착란, 우울증, 정신 분열과 같은 질환을 앓고 있다.

당신네가 꾸며낸 신화 속에서 반달가슴곰이 우리 민족의 조상이라며 멸종위기종으로 귀하게 여기면서, 한편으로는 우리를 이렇게 대하고 있다. 백두대간에서 사는 우리 형제들을 사냥으로 몰살한 것도 모자라 500여 마리 해외 동포들까지 납치하여 감금 사육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아직 철창 속에 남아있는 수백 마리의 형제들이 있다. 야생의 위엄을 읽은, 학대와 고통으로 일그러진 모습으로 생을 연명하는.

고무호스 꽂힌 채 살아가는 반달곰
고무호스 꽂힌 채 살아가는 반달곰

 

#가로수

우리는 거리에서 아파트에서 학교에서 공원에서 묵묵하게 살아가는 나무들. 우리의 존재 이유는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람들은 필요로 해서 우리를 심어놓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 좁은 공간에 뿌리를 내리고 나뭇가지를 펼치기가 무척 힘들다. 대기오염과 폭염도 막고 탄소도 흡수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건강해야 하고 나뭇가지와 잎이 많이 달려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주변의 친구들은 매년 가혹할 정도로 과도하게 잘리고 베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나무와 숲을 좋아한다는 데, 왜 우리를 이렇게 학대하고 멸시할까! 우리에게 혜택을 받으면서도 자기들 집과 가게 앞에 나무가 크게 자라면 불편하다는 사람들의 위선과 탐욕이다. 동네의 나무들이 수난을 당해도 애써 외면해 온 사람들의 무관심이다. 마구 잘라대도 살아난다고 여기는 오해이자 무지이다. 우리는 본래의 모습으로 온전하고 존엄하게 살고 싶다. 풍성하게 자란 우리를 제발 함부로 자르지 마라. 우리를 시설이 아닌 생명으로 대해 달라.

 

#오랑우탄

우리의 집을 제발 가만히 내버려 두라.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열대우림(비숲)이 우리의 집이다. 당신은 한국인이라서 그쪽 동네와는 아무 상관 없다고? 당신들이 얼마나 많은 열대우림을 파괴했는지 지금부터 알려주겠다. 라면, 아이스크림, 과자를 먹거나 샴푸, 치약, 립스틱을 사용한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앉아서 비숲을 불태우고, 우리를 숲에서 몰아낸 셈이다. 그 제품들에는 팜유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오로지 팜유를 생산하기 위해 숲을 거침없이 밀어버렸다. 지난 15년간 10만 명의 우리 친구들이 목숨을 잃었다. 개간을 위해 지른 산불에 타 죽거나, 갈 곳이 없어 도착한 농경지에서 겁에 질린 주민들의 총에 맞아 죽거나, 매달려 있던 나무를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바람에 내 가족과 친구들을 잃었다. 우리 오랑우탄은 건강한 숲에서 잘 살고 싶다. 호랑이와 코뿔소, 코끼리를 비롯한 수마트라의 모든 야생동물 동지들을 대표해서 말한다. 열대우림을 그만 파괴하라. 팜유를 그만 써달라. 어머니 자연을 착취하는 소비를 줄여라.

집을 잃은 오랑우탄
집을 잃은 오랑우탄

 

#멧돼지

참새, 까치, 어치, 직박구리, 까마귀, 갈까마귀, 떼까마귀, , 멧비둘기, 집비둘기, 고라니, 멧돼지, 청설모, 두더지, 오리류 등을 유해조수라고 한다. 이들은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에 피해를 주는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되어있다. 인간은 우리를 유해한 동물로 낙인찍어 죽이고 있다. 과거에는 고기를 얻기 위해, 신체 일부를 약재로 쓰기 위해 죽였고, 지금은 전선을 훼손하거나 농작물을 훔쳐먹는다며 죽이고 있다.

 

인간은 숲에서 가만히 잘살고 있던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도로로 갈가리 찢어놓고, 각종 오염물질로 우리가 사는 곳을 더럽히고, 생태계의 질서를 무자비하게 어지럽히고 있다. 과연 누구의 존재가 더 유해한가? 살아있는 생명에게 그 존재 자체가 유해하다는 딱지를 붙이고 마구 죽이는 인간들의 행위를 규탄한다. 이제 유해조수로 지목된 동물 형제들이 사발통문을 작성하여 인간들의 죄를 고발한다. 인간 정부가 정한 법에 따라 우리 동물들이 유해조수로 지정되어 사살되고 있는바, 이에 불복하여 항소이유서를 제출한다.

 

#비인간 생물들의 메시지

박람회장 입구에서 이들은 인간들에게 이런 글을 남기며 호소하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읍소하는 까닭은 우리들의 아픔을 당신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이지만, 당신들에게 연민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구의 벗들과 연결된 조화로운 삶을 포기하고, 욕심에 눈이 멀어 자신들의 삶마저 망가뜨리는 인간들에 대한 연민 말입니다. 이제, 그 손을 내밀어 우리들의 손을 잡고, 어머니 자연과 형제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 최진우 박사

최진우 박사는 연구자와 사회활동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환경문제 해법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에코 액티비스트 리서처(Eco-Activist Researcher), 환경생태 연구활동가이다. 주요 관심분야는 시민모니터링 및 시민과학, 생물문화경관으로서 자연과 사람의 상호관계, 환경거버넌스 및 시민정치 등이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도시행정학과 강사, 대장들녘지키기 시민행동 정책위원장, 부천YMCA 시민사업위원, 가로수를아끼는사람들 대표,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 경기연구원 비상임연구위원,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연구기획위원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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