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인생학교』 「드론비행 기술 및 영상 촬영반」 졸업생 한재훈

THE PEOPLE 15

겨울이다. 춥다. 차라리 한겨울이면 으레 그러려니 하겠지만 초겨울이라서 그런지 수은주가 영하를 살짝 밑도는 날씨인데도 추위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이런 날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포장마차다. 지금은 많이 사라지고 없으나 예전에는 골목길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게 포장마차였다.

늦은 퇴근길, 어깨 위에 눈이라도 몇 송이 떨어지는 날이면 내 발길은 어김없이 집 근처 포장마차로 향하곤 했다. 뜨끈한 홍합 국물에 소주 한 잔을 들이켜고 나면 세상 모든 추위가 다 물러난 것 같던 그 포장마차 한 귀퉁이에, 정호승 시인의 술 한 잔이라는 시가 서툰 글씨로 쓰여 있었다.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 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 연꽃 소리 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산 나는 아직도 인생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저 거대한 시간의 강물에 떠밀려 목적도 지향도 없이 떠내려온 것만 같다. 그래서 그런지 최소한 앞으로 남은 시간만큼은 내 의지대로, 목표대로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져보기도 한다.

지나온 인생이야 이미 흘러 가버린 강물이니 어쩔 수 없다 해도 앞으로 살아갈 인생만큼은 자기 뜻대로 멋지게 살아보겠다는 사람들을 위한 학교가 있다. 바로 부천시평생학습센터와 관내 4개 대학이 함께 운영하는 부천인생학교. 경력단절 여성을 포함 퇴직 전후 오륙십대 중장년층들이 함께 모여 새로운 지식도 습득하고 취미활동도 하며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공간이다.

인생학교라고 해서 칸트나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을 공부하는 곳인 줄 알았는데 철저히 실용 위주로 인생의 후반부를 준비하는 곳이라고 하니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부천인생학교가 왠지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그곳에 가면 뭔가 지금껏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인생의 길이 있을 것만 같다.

 

콩나물신문 더 피플이번 회의 주인공은 부천인생학교를 통해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질병을 치료한 것은 물론이고, 한국교통안전공단 이사장 명의의 무인멀티콥터/1자격증까지 취득한 부천시민 한재훈 씨다.

 

한재훈 씨의 드론 조종 장면 (2021년 11월)
한재훈 씨의 드론 조종 장면 (2021년 11월)

 

안녕하세요! 콩나물신문 THE PEOPLE입니다. 콩나물신문은 인권, 환경, 생명, 여성, 복지 등 우리 사회의 취약한 부분들을 개선하여 더 밝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언론으로서의 역할과 사명을 다하고자 합니다. 우선 2021 부천인생학교졸업을 축하드리며 아직 치료 중임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2021 부천인생학교에서 드론 비행 기술 및 영상 촬영 과정(유한대캠퍼스)을 수료한 한재훈입니다. 1996, 결혼과 함께 부천에서 26년째 살고 있으며 11녀 대학생 자녀를 둔 평범한 시민입니다. 직업은 IT[정보기술] 분야에서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으며, 등산, 마라톤, 사진 촬영 등의 취미를 갖고 있습니다.

 

IT 분야의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으면서 부천인생학교에 들어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IT 분야의 프로그래머로서 회사생활도 했고 또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수입도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잘 나갈 때 그 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망각한 채 현실에 안주하며 자기 계발에 소홀했고, 50대 들어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급격한 IT 분야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도 어려웠고 거래하던 업체들마저 저처럼 보수가 높은 사람보다는 상대적으로 보수가 낮은 젊은 프로그래머를 선호하다 보니 일거리가 급격하게 줄어들었어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벌써 늦었던 거예요. 그렇기에 잘 나가던 40대 때, 50대 이후에 할 일을 준비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게 패착이었죠. 그러던 중 우연히 부천인생학교를 알게 되었고 유한대학에 드론 비행 기술 및 영상 촬영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드론전문교육원 비행교육 (2021년 09월, 경기도 시흥)
드론전문교육원 비행교육 (2021년 09월, 경기도 시흥)

 

올해 부천인생학교프로그램을 보니 가톨릭대, 서울신대, 부천대, 유한대 등 4개 캠퍼스에 27개 과정이 개설되어 있던데 특별히 드론 비행 기술 및 영상 촬영 과정에 지원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또 학교에서는 어떤 것들을 배우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드론은 그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여 자격증만 획득하면 다른 분야보다 취업에 유리할 거로 판단했습니다. 거기에 제가 오랫동안 사진 촬영을 취미로 해왔기 때문에 영상 촬영도 조금만 노력하면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한대 드론 과정은 57일부터 9월 초까지 매주 목~금 저녁 6시부터 3시간 동안 진행됐는데 드론 일반’, ‘드론 법규같은 이론 과목과 실기를 병행했습니다. 온라인으로 드론 4종 자격증을 취득한 후 처음으로 조종기를 잡아봤는데 섬세함이 필요한 드론 조종과 저의 차분한 성격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론 과정을 공부하면서 우연히 시신경 계통에 심각한 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된 건지 좀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한대 과정이 끝날 무렵 드론 1종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드론전문교육원에 등록했습니다. 전체 3주 과정으로 첫째 주 이론과 시뮬레이션 비행 과정을 마치고 2주부터 비행 실습을 했는데 드론을 착륙시키는 과정에서 자꾸만 오차가 나서 제 눈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즉시 안과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소견서를 써주면서 대학병원으로 가라는 겁니다. 그래서 대학병원으로 갔더니 2주 후에 MRI 촬영날짜를 잡아주더라고요. 그런데 하필 촬영날짜가 드론교육원 수료일과 겹쳤어요. 수료일에는 시험을 쳐야 하는데 시험을 치기 위해서는 무조건 20시간 비행을 이수해야 하거든요. 교육원에 계속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일단은 하고 보자는 생각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연습했습니다.

운명의 MRI 촬영 날, 예상했던 대로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뇌에 종양이 생겼는데 거의 10년 이상 자란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 종양이 점점 커지면서 시신경을 누른 탓에 눈에 이상이 온 거고요. 그대로 두면 실명하게 되니 무조건 수술해야 한다고. 그나마 암이 아니고 단순한 뇌하수체 종양인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습니다. 오전에 뇌하수체 종양을 선고받고 오후에 드론 실기시험을 보는데 울컥한 마음에 집중하기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조건부 합격을 받아냈습니다. 최종목표인 교통안전공단 1급 자격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얻은 거죠.

9월 말에 입원해서 수술하고 10월 초에 퇴원해서 1029일 교통안전공단 자격시험을 치렀는데 다행히 드론 비행과 구술시험을 모두 통과해서 초경량비행장치 조종자(무인멀티콥터/1)’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드론교육원을 수료, 교통안전공단 1급 자격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얻었다.
우여곡절 끝에 드론교육원을 수료, 교통안전공단 1급 자격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얻었다.

 

잠시, 화제를 좀 바꿔보겠습니다. 방금 주신 명함에 인천 런너스 클럽한재훈이라고 되어 있는데 마라톤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으며 현재도 운동을 계속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큰산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으신데 어떤 의미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1999, 회사생활을 할 때 단체로 10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는데 이 정도쯤이야 했는데 5이후 참가자들이 휙휙 저를 앞질러 가는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 꾸준한 연습으로 몇 개월 후에는 20를 완주했고, 2000, ‘다음카페 런너스 클럽에 가입해 토요일마다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 모여 열심히 달렸습니다. 2008, 마라톤을 그만둘 때까지 풀코스 최고기록은 3시간 55분이었네요.

마라톤을 그만둔 이후로는 주로 마라토너들의 인물사진을 찍는 일을 했는데, 물론 봉사활동 차원의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마라톤을 직접 뛰어본 사람으로서 선수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실감 나는 사진을 찍을 수가 있었죠.

2015년인가에는 ()대한울트라마라톤연맹이 주최한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대한민국종단 622울트라마라톤종주에 성공한 시각장애인 부부 사진을 찍었는데 그게 정부간행물 표지 사진으로 선정되어 큰 보람을 느끼기도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마라톤뿐만 아니고 지역아동센터나 노인복지회관 등에서도 무보수로 봉사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큰산이라는 닉네임은 말 그대로 큰 산처럼 넓은 마음으로 베풀고 포용하며 살고 싶어서 지은 건데, 항상 그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제 모습과도 잘 어울린다고 합니다. 어느 날 1,000m 이상 되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저 아래 우리들이 살아가는 곳을 바라 보고 있을 때 큰 산이 저에게 지어준 닉네임이랍니다.

 

대한민국종단 537KM 울트라마라톤 자원봉사 (2020년 07월, 부산-임진각)
대한민국종단 537KM 울트라마라톤 자원봉사 (2020년 07월, 부산-임진각)

 

이런저런 말씀 듣다 보니 벌써 한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난 9월 중순 코엑스에서 열린 드론 박람회에 다녀왔는데,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드론의 쓰임새가 무궁무진하더라고요. 당장 지금 농촌에서도 드론으로 방제 작업을 하고 있고, 또 산불감시라든가, 건물 안전 진단과 같은 분야에서도 드론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활용범위가 넓어질 거로 생각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취업도 용이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일단 취업을 해서 경력을 쌓은 후 개인사업체를 운영해볼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촬영기술이나 영상편집 등에 관한 공부도 계속해 나갈 겁니다.

아무쪼록 부천인생학교를 통해 건강도 되찾고 자격증도 취득해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게 되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 이종헌(콩나물신문 편집위원장)

이주희 글, 그림
이주희 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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