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교 이야기

혼자 학교 계단을 오르는 1학년

1학년 아이들은 대부분 아이 혼자 등교하지 않고 엄마나 아빠와 함께 학교에 온다. 자기 몸만 한 가방을 메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조잘조잘 엄마 아빠와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머리는 삐죽삐죽 까치집을 하고, 다 먹지 못한 아침밥을 오물오물 씹으며 오기도 한다. 머리를 정갈하게 묶은 여자아이들은 그 야무짐 이 귀엽고, 머리가 이곳저곳 뻗어 있는 아이들은 자유로워 보여 귀엽다.

산학교에 도착하면 먼저 주차장이 보인다. 그리고 주차장을 지나 학교 운동장으로 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 계단은 높지 않다. 2층 정도인데, 아이가 엄마·아빠 손잡고 학교에 오든, 차를 타고 오든, 모든 아이들은 이 계단부터 혼자 학교로 들어온다. 학교 바로 앞 입구까지는 엄마 아빠가 함께 해줄 수 있어도, 계단을 올라 학교 안에 들어오는 것부터 하루의 학교생활을 마치고 다시 그 계단을 내려오는 것까지는 아이의 학교생활이고 아이의 몫이다. 그래서 가끔 아이가 학교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뒤에서 볼 때 뭔 지 모를 비장함이 느껴진다. 가느다란 팔다리로 담담히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랄까. 그냥 별것 아닌 장면이지만 어떤 때는 괜히 대견하고 짠하고 그렇다.

 

 

귀여운 1학년

올해 내가 처음 1학년 생활 교사가 되어서 그랬는지 유독 아이들이 귀여워 보였다. 머리는 크고 팔다리는 가는데 그래도 두 발로 자기 몸을 지탱하며 서 있다니…, 너무 귀엽다. 1학년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1학년을 만나면서 아이들 목소리가, 말하는 것이, 행동하는 것도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 하기도 했다.

눈썹을 찌푸리며 속상해 할 때도, 너무 신이 나서 고개가 뒤로 넘어가게 깔깔깔 웃을 때도, 마음만큼 되지 않아 속상해서 어깨가 축 처질 때도, 두 손을 들고 어깨를 으쓱하는 제스처를 할 때도 귀엽고 또 귀엽다. 이렇게 1학년 아이들은 본캐에서 뿜어져 나오는 귀여움으로 교사, 언니, 오빠, 형, 누나들에게 전폭적인 사랑을 받으며 학교에 적응해 나갔다.

 

 

쉽지 않은 몸 깨우기

평소 귀여움을 많이 받는 1학년 아이들이지만, 수업과 생활을 배우고 적응해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몸 놀이에 너무 진심인 2학년들과 함께 매일 몸 깨우기를 하며 놀이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 너무 어려워 보였다. 1학년과 2학년은 한 학년 차이인데 체격부터 기술까지 하늘과 땅 차이었다. 1학년이 어리바리 훈련병이라면, 2학년은 특전사 정도? 한 학년 차이를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여튼, 2학년은 학기초 1학년들에게 친절하게 놀이를 알려주었다. 1대1 짝꿍이 되어 놀이에 필요한 전략과 나름의 비법들을 전수했다. 숨바꼭질과 비슷한 경찰과 도둑, 깡통차기를 시작으로 진놀이, 팔자놀이, 동그랑땡, 육발, 나이먹기 등 자기 진이 있는 놀이들을 배우고 익혔다. 더 나아가서 치열한 승부가 있어 짜릿한 승리와 아쉬운 패배를 맛봐야 하는 축구, 피구를 배우기도 했다.

 

 

산학교와 사람들이 편해지면서, 1학년 아이들은 운동장, 교실, 작은 마당 곳곳을 돌아다니며 놀았다. 그때마다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되었는데, 혼자 가다가 휘청거리거나, 뛰다가 풀썩 주저앉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했다. 뭐에 걸려서 넘어졌나 하고 가보면 아무것도 없을 때가 많았다. 그냥 혼자 뛰다가 넘어지고, 심지어는 그냥 잘 걷다 가도 넘어지곤 했다. 운이 좋아 넘어지지 않는 날에는 어디에 부딪혀서 다치는 일이 허다했다. 학교가 익숙해지고 편안해 질수록 아이들의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생겼다가 아물길 반복했다. 몸이 다치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고생도 많았다. 피구를 하다가 공에 맞아서 울고, 경찰과 도둑에서 경찰이 됐는데 도둑을 잘 못 잡아서 속상하고, 반대로 도둑이 됐는데 너무 빨리 잡혀서 속상하고, 육발을 할 때 한발 뛰기로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한 발 뛰기 세 걸음에 숨이 차 결국 아웃이 돼 버려 허탈해하기도 했다. 생각만큼 잘되지 않아 속상해 하는 그 작은 어깨를 얼마나 토닥여 줬는지 모른다. 그렇게 1,2학기가 지났다.

 

 

1학년의 10가지 힘

3,4학기가 되고, 일주일에 2번 3·4학년과 같이 몸 깨우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때 아이들은 놀이 천재 기린을 만나 ‘바나나 술래잡기’, 상어 술래잡기’, 공 넘기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단체 줄넘기’ 등등 다양한 놀이를 접하게 되었다. 2학년보다 더 힘 세고 의욕적인 3·4학년을 만나 1학년 아이들이 너무 위축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조금씩 매일매일 몸 깨우기를 했던 힘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잠깐 매일매일 몸 깨우기로 아이들에게 생긴 힘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1. 피구 공에 맞은 게 너무 충격적이어서 피구를 하는 날이면 놀이에서 빠졌던 아이가 나도 해 볼래! 하며 피구를 하기 시작했다. 공에 맞아 울기는 해도 놀이에서 빠지지는 않는다.

2. 힘으로는 위 학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자기만의 기술을 쓰기 시작했는데, 주로 빠른 발을 이용해서 도망가기 기술을 쓴다.

3. 이제 육발, 동그랑땡 할 때 한 발 뛰기를 할 수 있다. 한 발로 10걸음 이상 갈 수 있다.

4. 눈빛이 변했다. 본캐에서 뿜어져 나오는 귀여움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눈빛이 생겼다.

5. 몸집이 큰 위 학년을 방패로 쓸 줄 안다. 몸을 피하는 놀이를 할 때 형, 누나, 오빠, 언니 뒤로 쏙 숨는다.

6. 귀여움은 어쩔 수 없다. 1학년의 가장 큰 힘이라 가리려고 해도 가려지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뿜어져 나오는 귀여움 덕분에 위 학년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7. 점프 능력이 상승했다. 높은 곳만 있으면 올라가서 번쩍 뛰어내린다.

8. 뭉치면 힘이 더 세진다는 것을 터득했다. 놀이를 시작하기 전에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9. 놀이에서 지거나 마음처럼 되지 않아도 툭툭 털어낼 줄 안다. 가끔 삐질 때도 있지만, 전보다 받아들이는 마음이 넓어졌다.

10. 할 줄 아는 놀이가 많아져서 몸 깨우기 시간 외 쉬는 시간에도 자기들끼리 모여 몸 깨우기 놀이를 하고 논다.

 

1학년 아이들은 여전히 매일매일 몸 깨우기를 하며 놀고 있다. 2학년은 여전히 체격과 기술이 압도적이지만, 1학년은 굴하지 않고 몸 깨우기를 통해 자기만의 힘을 키워가고 있다.

 

| 노을(산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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