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풍금을 다시 만났다. 풍금에 앉은 어린 딸의 모습을 기억하며 오며 가며 딸 보듯 했다 한다. 무작정 방치한 것이 아니었다.

창고 구석에 있는 풍금으로 다가갔다. 얼핏 보면 아무렇게나 놓인듯하나 그냥 맨바닥이 아니라 벽돌로 받침을 해두었고 비닐을 씌워 두었다. 딸의 어릴 적 추억을 오랫동안 간직해두려는 엄마의 마음이다. 뿌연 먼지를 뒤집어쓴 비닐을 벗기자 엄마가 붙들어둔 유년 시절의 한 부분이 앞에 나타났다.

밝은 갈색이었던 나무의 색은 시커멓게 변했다. 페달에 살짝 발을 올리는데 툭 반이 떨어져 나간다. 페달을 연결한 쇠 부분은 녹슬어 위태롭게 붙어 있다. 나보다 훨씬 나이 먹은 모습으로 나와의 인연을 아슬아슬하게 이어내고 있는 듯하다. 뒤쪽을 보니 크면 누나 가만두지 않는다라는 경고문이 흐릿하게 남아있다. 싸운 뒤 남동생이 적었나 보다. 어릴 적 동생의 필체를 보니 동생의 경고와는 달리 개구쟁이 동생의 얼굴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피아노 소리가 맑고 경쾌하다면 풍금 소리는 가슴을 묵직하게 울리는 멋이 있다. 페달을 밟으며 공기를 불어 넣고 건반을 누르면 그 음만 바람이 통과해서 철판을 진동시켜서 나는 소리다. 피아노는 음을 길게 할 경우에만 페달을 밟는다. 풍금은 페달을 밟지 않으면 아예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열심히 페달을 밟는 수고를 해야만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여러 곡을 연주하려면 노동에 가깝다.

페달이 떼어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풍금에 다시 시선을 둔다. 쉽고 편리하게만 살아가려는 내게 은은하게 소리를 들려준다. 어릴 적 내가 연주한 소리들이다. 페달을 정성껏 꼭꼭 밟으며 아이들과 부른 노래가 들린다.

사촌 언니는 힘들어도 열심히 풍금을 쳤다. 풍금을 좋아한 언니는 피아노를 전공해서 지금 아이들을 가르친다. 힘든 과정을 이겨내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의미를 그때는 몰랐다. 이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엄마가 그동안 풍금을 간직한 것은 아닐까.

묵묵히 나를 기다려 준 풍금이 새삼 고맙다. 손으로 쓰다듬어 본다. 나만 들을 수 있는 풍금 소리는 지친 내게 힘이 되어주고 나태해질 때는 되돌아보게 할 것이다. 마음으로 열심히 페달을 밟아 흘린 땀방울로 삶이 풍요로워지길 희망한다. 희망의 불씨를 안고 있는 풍금은 이제 낡은 풍금이 아니다.

 

 

김혜영

2014<문학이후> 수필 등단

부천소사문학회 회원

부천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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