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 교수의 ‘리드 러시아 Read Russia’

20살 연상의 고위 관료인 남편 카레닌과 여덟 살 아들 세료자와 함께 화려한 귀족 생활을 누리고 있던 안나는 오빠 부부를 화해시키기 위해 모스크바에 도착하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자신이 불륜에 빠져들게 되는 역설적 상황으로 떨어지게 된다. 안나의 오빠 스치바는 아이들의 가정교사와 불륜을 저지르고도, “다자녀의 어머니이자 자기보다 한 살밖에 젊지 않은 아내에게만 빠져 있지 않았다고 해서 이제 새삼스럽게 그것을 후회할 수는 없었다. 그는 다만 아내의 눈을 좀 더 재치 있게 속이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 후로도 숱하게 염문을 뿌린 스치바나, 정부(情夫)들을 둔 다른 귀족 부인들과 달리 안나는 브론스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남편과 사교계에 숨기지 못했다.

 

소피마르소 주연 영화 『안나카레니나』(1997)
소피마르소 주연 영화 『안나카레니나』(1997)

 

바로 그 부분이 필자가 생각하는 안나와 카레닌 부부의 결혼이 파경을 맞은 첫 번째 이유이다. 안나는 상류층 사교계에서 브론스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출한 것이다. 브론스키를 만난 안나의 첫 느낌은 따뜻하다는, 따뜻하다 못해 타는 듯이 뜨겁다라는 것이었고, 브론스키 또한 안나의 생생한 표정강하게 빛나는 잿빛 눈”, “미소를 띤 붉은 입술에 끌리게 된다. 둘 다 첫눈에 서로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 것이다. 거짓과 위선, 가장(假裝)으로 점철된 귀족사회, 사교계, 그리고 정략결혼으로 출발한 결혼생활에서 성적 매력을 느껴 유발된 감정이나 사랑이란 애초부터 어불성설이다. 그런 감정은 안나가 기반하고 있는 삶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며 그런 감정에 사로잡히더라도 그 감정을 솔직히 드러낸다는 것은 안나가 속한 상류사회 그 기반 자체를 흔드는 끔찍한 범죄로까지 간주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귀족이라면 대부분이 사랑과 연애에 기초한 결혼을 한 것이 아니라 정략결혼을 한 상황이고 모두가 성적 매력과는 무관한 애정 없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데 한 부인이 육욕에 사로잡혀 사랑찾아 가정을 깨려 든다면 누가 그것을 인정하겠는가.

그리고 그런 육욕에 기반한 사랑이란 결혼생활에서 금욕을 강조했던 톨스토이가 금기시한 욕정일 뿐이다. 육체관계에 대한 톨스토이의 부정적 태도는 안나와 브론스키의 정사 후 서술된 브론스키의 감정묘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브론스키는 정사 후에 안나에게서 살인자가 자기가 죽인 시체를 보는 것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며, “그가 죽인 시체야말로 그들의 사랑이었고, 그들 사랑의 첫 단계였다라고 서술된다. “살인자는 자기가 죽인 시체에 대하여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느끼면서도 그 시체를 감추기 위해서는 난도질해야 하며, 또한 살인 행위에 의해서 얻은 것을 끝까지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심정으로 브론스키는 안나에게 키스를 퍼붓는다. 사랑의 완성이자, 생명을 잉태하는 행위일 수 있는 육체적 결합이 생명을 소멸시키는 살인행위로 비유된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파경의 두 번째 이유는 안나의 감정을 눈치챈 후 카레닌이 한 행동이다. 카레닌은 아내에게 충고할 생각을 하는데, 그의 충고는 첫째로 여론과 예의 관념의 의식을 설명하고, 둘째로 결혼의 의미를 종교적으로 설명하며, 셋째로 필요하다면 아들에게 불행이 닥쳐올지도 모른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아내의 감정을 다독이고 겉으로라도 자신의 사랑을 확인시켜 안나의 마음을 되돌리려는 제스처를 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때 충고부터 할 생각을 한 것이다. 안나는 자기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사교계에서 눈치를 챘기 때문에 마음에 걸린다 이 말씀이군.”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의 충고로 인해 남편에게 중요한 것은 항상 체면과 지위뿐이라고 생각하던 안나의 마음을 되돌릴 기회를 결정적으로 놓치게 되고 안나의 마음속에는 남편에 대한 혐오감이 증가하고 브론스키에 대한 사랑이 더 켜지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안나의 결혼이 파경에 이른 세 번째 이유는 안나가 자신과 브론스키의 관계를 남편에게 공공연히 고백한 것이다. 브론스키와의 관계에서 아이를 임신한 안나는 브론스키가 출전한 경마장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남편에게 난 그분을 사랑하고 있어요. 난 그분의 애인이에요.”라는 고백을 한다. 여느 부인들처럼 정부와의 관계를 숨기지 못하고 대놓고 고백을 한 것이다. 이 고백으로 브론스키와의 관계가 기정사실로 되어버리고 남편과의 가장(假裝)된 가정생활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런데 필자는 그 고백에 대한 카레닌의 반응 또한 파국의 또 다른 이유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안나의 말을 들은 남편 카레닌은 어째서 그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왜 그런 관계를 남들처럼 감추지 못하고 밝혀버렸는지괴로워하면서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해보기 시작한다. 그가 먼저 생각한 것은 당시 남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결투다. 그러나 카레닌은 죄를 지은 아내와의 관계를 결정하기 위해 사람을 살해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고 자문하면서 그와 같은 일은 헛된 명예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아내에게 표면상의 체면만을 요구하고 결투를 신청하지 않았던카레닌의 선택은 나중에 카레닌 자신에게도 큰 회한으로 남는다.

 

안나와 아들 세료자의 만남
안나와 아들 세료자의 만남

 

그다음으로 생각한 방법은 이혼이다. 당시 러시아의 이혼법상으로 이혼이 가능한 경우는 남편이나 아내의 육체적인 결함이나, ‘5년 이상 행방불명일 때’, ‘남편이나 아내의 간통에 대한 죄증(罪證)의 제시가 있을 때이다. 간통에 대한 증거는 직접적인 방법, 주로 증인들로부터 얻어진 것이 아니면 안 되었다. 아니면 쌍방의 합의에 따른 간통 증명이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소란을 최소한도로 그치게 하는 것이 성취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혼을 하게 되면, 아니 이혼 수속을 하기만 해도 아내는 남편과의 관계를 끊고 애인과 결합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포기한다.

세 번째 방법은 별거이다. 그러나 이것도 이혼과 마찬가지로 아내를 브론스키의 포옹 속으로 내던져버리는 격이어서 또한 거부한다. 그가 내린 결론은 사건을 세상에 비밀로 붙여둔 채 그들의 관계를 끊도록 온갖 수단을 다 강구하고 아내를 벌하기 위해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의 곁에 그대로 붙잡아 두는 것이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훌륭하게 처리되고 관계도 이전으로 되돌아가겠지라고 결론 내린다.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사랑을 위해 자신의 과거와 미래, 아들까지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데 남편 카레닌은 그녀가 갈구한 사랑과 열정 대신에 충고를 하고 체면을 내세운 것이다.

나중에 안나가 브론스키의 아이를 낳다가 죽을 고비를 맞자, 카레닌은 안나를 위해 아들까지도 포기하는 이혼을 생각하며, “저 사람은 그 사내하고 어울리겠지. 그리하여 1, 2년쯤 지나면 사내한테 버림을 받든지 아니면 자기 스스로 다시 다른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맺겠지.”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 교회법은 이혼을 하더라도 여자는 전남편이 죽을 때까지 재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안나는 카레닌이 이혼을 해준다고 하더라도 브론스키와 합법적으로 재혼할 수는 없기에 그의 정부(情婦)밖에는 될 수가 없다는 것을 카레닌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브론스키는 가정생활을 도무지 몰랐으며,” “결혼이라는 것은 그에게는 단 한 번도 가능한 일로 생각된 적이 없었다.” 또한 그는 안나와의 관계가 공공연하게 드러나게 되자 안나와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러시아를 떠나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꽃의 아름다움에 끌려 그만 그것을 따서 쓸모없게 만들어놓고는 시든 꽃에서 이전의 아름다움을 찾지 못하고 있는 사람과 같은 심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게되는 그런 태도를 취한다.

그런데도 브론스키는 안나가 낳은 자신의 딸에게 카레닌이란 성 대신에 자신의 성을 주기 위해서라며 안나에게 카레닌과 이혼할 것을 계속 요구한다. 결국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불안한 관계 속에서 괴로워하다가 죽음을 떠올리며 그렇게 하면 그이를 처벌하게 되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아니 나 자신으로부터도 벗어나게 되는 거야.”라고 결심하고 기차 바퀴 아래로 뛰어들게 된다. 그 후 안나의 죽음은 안나와 전혀 상관없는 인물인 레빈의 이부(異父)형 세르게이와 안나를 미워했던 브론스키의 어머니에 의해 언급되는데, 브론스키의 어머니는 그 여자는 죽을 때까지도 그런 지겹고 비천한 방법을 골라서 죽었다라고 혐오스럽게 말한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 사진출처(나무위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 사진출처(나무위키)

 

고리키는 톨스토이가 여성에게 뿌리 깊은 적대감을 지니고 있어, 언제나 여성을 학대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는데, 그래서인지 작품 속에서 파멸한 사람은 안나뿐이다. 모두가 거짓과 허위로 가득 찬 결혼생활을 유지하는데 안나는 육욕에 휩싸여서 사랑을 고백하고 가정을 깨뜨린 결과이다. 카레닌이 안나에게 쓴 편지에서, “가정이란 일시적인 기분이나 자유 의지, 혹은 부부 가운데 한 사람이 지은 죄에 의해서 파괴될 수는 없다라고 밝혔듯이, 결국 톨스토이는 불행한 가정도 유지되어야만 하며 그 이유는 제각각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는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서 보듯이, 결혼생활이란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성공적인 결혼생활의 중요한 요소로 제시했던, 성적 매력, , 자녀, 종교, 사회적 지위, 인척 등 중에서 어느 한 가지만 맞아도 유지되며, 오히려 한 가지 이유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들이 맞물려야 결혼이 파탄에 이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은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행복에 필요한 중요한 요소 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어긋난다면 그 나머지 요소들이 모두 성립하더라도 그 결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라고 단정한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에 대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설명에 다시금 의구심이 든다.

 

| 김은희(한국외국어대학교 특임교수)

김은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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