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교 이야기

벌써 12. 올해 1학년에 입학한 승언이를 학교까지 데려다주던 봄이 지나고 여름, 가을, 벌써 겨울이라니. 차로 15분 정도 거리여서 3월 학교 가는 첫날부터 몇 주 동안은 등굣길에 우리끼리의 아침 뉴스를 했었다. 이런 식으로. “오늘은 32일 화요일입니다. 오늘 날씨는 어떨까요? 최승언 기상캐스터 나와주세요.”, “네 최승언 기상캐스터입니다. 오늘은 하늘에서 똥이 내립니다(날씨는 늘 똥이나 오줌, 방귀가 내리는 것으로).” 이런 식의 방송을 하고 그날의 수업(“생태 나들이 가는데 루페는 준비했나요?”, “오늘은 산회의가 있겠네요”)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 오늘 기분이 어떤지 등등을 말하면서 학교 가는 시간을 보냈다.

학교라는 사회생활에 첫발을 딛는 건 아이지만 나도 무지 설레고 긴장한 탓에 하루하루를 마음에 새기며 잔뜩 힘을 주어 지냈던 것 같다. 사실 엄마인 나는 내 아이의 학교 입학을 잠이 안 올 정도로 고민했으면서도 수업 시간표를 꼼꼼히 보지 않았던 탓에 어떤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몰랐다. 학기 초가 지나면서 내 몸의 힘도 슬슬 풀릴 즈음에 승언이가 학교 수업을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해졌다.

 

 

수업 시간 중 젤 좋은 시간이 뭐야?”

몸 깨우기랑 쉬는 시간

, 수업 중 몸 깨우기라고 있었지. 역시 머리 쓰는 게 아니라서 젤 좋아하는군. 그 후로 잊어버릴만 하면 한 번씩 물어봤다.

몸 깨우기랑 미술시간

몸 깨우기랑 마음놀이

역시 머리를 많이 안 쓰는 시간을 좋아하는군. 그런데 몸 깨우기는 계속 좋다구?

 

 

아침에 등교하면 교사와 하루열기를 한 후 몸 깨우기를 한다고 알고 있다. 승언이가 속한 모올반 친구들과 몸 깨우기를 하지만 가끔은 위 학년들과도 함께 한단다. 아침이니 몸을 깨우고 하루를 시작하면 좋겠네. 나도 학창시절 국민체조를 했었지. 그리고 서른이 넘어 몇 년간 근무했던 군대에서도 하루 시작을 국군도수체조를 구령에 맞춰서 하지 않았던가. 체조, 몸에 좋은 활동이겠지. 근데 대열에 맞춰 가능한 뒤쪽에 서서 흐물흐물 팔다리를 움직이던 그 시간이 즐겁지는 않았던 기억이다. 몸은 구령에 따라 자동 플레이되지만 딴생각을 하거나 멍할 때가 많았다. “넌 학교에서 무슨 시간이 좋아?” 누가 과거의 나에게 묻는다면? “, 난 국민 체조할 때야!” , 이런 건 상상이 안 된다.

그런데 승언이는 몸 깨우기가 좋단다. 뭐가 좋을까? , 평소 승언이는 놀이터에 가자는 말을 안 하는 아이였는데, 집에서 꼼지락거리며 노는 걸 좋아해서 애 아빠랑 내가 다 같이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얼마나 달래고 어르고, 해도 안 되면 협박하고(‘너 혼자 집에 있어라’), 그랬는데 웬일? 물론 승언이는 여전히 집돌이다. 그런데 몸 깨우기는 뭣이 다르길래?

 

 

학교 수업시간을 직접 보기는 어렵지만, 몸 깨우기가 뭔지 살짝 엿볼 기회가 있었다. 학교 건물 아래 별채처럼 있는 산제로 상점에서 상점 지킴이를 할 때였다. 승언이를 등교시키고 내가 상점 문을 여는 날이었다. 간단한 오픈 준비를 하고 느긋해진 마음으로 앉아있으려는데 우당탕탕 운동장에서 계단을 지나 아래 상점 쪽으로 내려오는 여러 발소리. “안녕 달팽이(학교에서 나의 별칭)”, “안녕 달팽이라며 몇몇 아이들이 다급하게 들어온다. 그러고는 갑자기 사라진다.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자기 몸을 구부려 어디론가 숨어 들어갔다. 위층 다락 어느 구석, 세제를 올려놓은 선반 아래 작은 틈, 심지어는 싱크대 아래 칸으로 들어간다. 쏙쏙. 너희 엄청 유연하구나. 술래가 찾으러 왔을 때 얼굴 가득 긴장감이 돌던 아이들이 떠올라 웃음이 났지만 나도 시치미 뚝. 그런데 또 술래는 잘도 찾아낸다.

지금은 여러 이유로 몸 깨우기 때 상점 방문이 안 되지만 이때 본 아이들의 진지함과 생기 있는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다. 그래, 승언이가 몸 깨우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런 건가 보구나! 치열하게 놀이를 하고 싶은 재미가 있기 때문에, 엄마 아빠와의 나들이에서는 찾기 어려운 것(. 이건 우리 부부가 반성할 대목인 듯ㅠㅠ),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국민체조에도 없는 것은 알고 보니 내가 본 몸 깨우기 시간은 경찰과 도둑이란 놀이였다.

 

 

그래 놀이였어.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몸을 깨웠었구나. 그래서 재미있게 몸 깨우기를 할 수 있었구나. 몸을 즐겁게 워밍업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구나. 몸 활동에 취미가 적은 내 아이도 즐거운 놀이로 이루어진 몸 활동에는 적극적이구나. 맞아. 운동을 싫어하는 나도 어릴 적 친구들과 고무줄놀이, 색깔 찾기, 우리 집에 왜 왔니? 등등 놀이를 할 때 참 재밌어했지.

그러고 보니 어른이 되고 나서 나는 참 몸 활동이 없구나. 때때로 걷기를 해야겠다,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맘먹고 잠시 하다 말곤 했었다. 더구나 일이 바쁠 때는 눈을 뜨자마자 모니터 앞에 앉는 날들도 있으니 소홀하게 대한 내 몸에게 미안해진다. 아침부터 몸 깨우기로 신나게 시작하면 기분이 어떨까?

잠시였지만 작년 여름 새벽 달리기를 했던 적이 생각난다. 새벽인데도 공원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달리거나 걷고 있었고 그 틈에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천천히 그날의 목표만큼 달리고 나면 얼마나 뿌듯했던지. 그리고 아침에 달린 날은 평소보다 조금 더 기운이 나고 뭔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었다.

아침마다 몸 깨우기를 하는 아이들도 이런 기분일까? 아이들의 작은 몸이 한바탕 놀이에 집중하며 깔깔거리다가 하루를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하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즐거운 몸 깨우기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어른들도 정신없는 아침 시간이 아닌 하하 호호 웃으며 몸도 마음도 즐겁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 이숙희(산학교 1학년 최승언 엄마)

 

*산학교는 공동육아의 철학과 이념을 바탕으로 세워진 초, 중등 9년제 대안학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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