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헌의 ‘아름다운 베르네川’

고추바람이 텀블링한다. 고즈넉한 가을이 떠나고 눈보라 휘몰아치는 거친 계절이 문턱을 넘어왔다. 세상의 허욕을 모두 버린 구도자인 양, 발가벗고 인내하는 나무의 가르침을 조심스레 읽는다. 누구나 한 번쯤 찾고 싶은 곳. 부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베르네천에 한 편의 서정시보다 더 감동을 주는 눈부신 나무가 있다. 키다리 병정들이 사열을 기다리는 듯 줄을 맞춰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늠름하고 의연하다.

낙우송은 미국 플로리다주()의 미시시피강이 멕시코만으로 흘러드는 진펄 유역이 자생지이고, 메타세쿼이아는 중국의 양쯔강이라고 한다. 서로 사촌쯤 되는 나무다. 메타세쿼이아는 늘씬하게 위로 곧게 뻗고 깃털 같은 잎이 두 개씩 마주 보는 데 비해, 낙우송은 원뿔형으로 나무의 폭이 넓고 잎이 서로 어긋나게 달리며 열매가 구슬 모양으로 둥글다. 낙우송은 이파리가 솔잎처럼 가늘면서 부드럽기 그지없는 낙엽 침엽수다. 잎이 지지 않고 사시사철 내내 푸른 것과는 달리 바늘잎나무로는 드물게 단풍이 들고 떨어진다. 나무껍질은 적갈색이며 세로로 길게 갈라진다.

 

눈 내린 베르네천의 아름다운 모습. 흰뺨검둥오리가 겨울을 즐기고 있는 뒤쪽으로 길게 늘어선 낙우송들이 보인다.(21.12.19 아침)
눈 내린 베르네천의 아름다운 모습. 흰뺨검둥오리가 겨울을 즐기고 있는 뒤쪽으로 길게 늘어선 낙우송들이 보인다.(21.12.19 아침)

 

조선 시대 고종이 가로수 조성을 시작하면서 외국에서 나무들을 대거 수입했다고 한다. 1920년경에 들여온 낙우송은 떨어질 낙(), 깃털 우(), 소나무 송(), 세 글자의 이름에 가장 중요한 특징을 담고 있다. ()이라는 글자를 쓰지만, 소나무와는 관련 없다. 물속이나 질퍽한 습지에서도 자라며 삼나무에 가깝다. 중국에서는 낙우삼(落羽杉), 일본은 소삼(沼衫)이라고 하는데 수향목(水鄕木)이라고도 부른다. 약간 납작하고 긴 선형(線形)의 잎이 양옆으로 나란히 붙어 있어 새의 날개처럼 보인다. 보통 키 30미터, 둘레 6미터 정도로 하늘을 향해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원뿔 모양의 균형 잡힌 모양새로 자란다. 물이 있는 큰 정원이나 공원의 가장자리와 학교 등 넓은 공간에 잘 어울리며, 멋스러운 경치를 더하기 위해 숲을 만들기도 한다.

 

금빛으로 물든 낙우송 아래 일광욕하는 왜가리
금빛으로 물든 낙우송 아래 일광욕하는 왜가리

 

식물은 사람이나 동물보다 뛰어난 환경 적응능력을 갖추고 있다. 물기 많은 곳은 나무에는 기회의 땅이다. 풍부한 물과 유기물이 있고, 햇볕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른 식물과 경쟁할 필요도 없으니 천혜의 조건인 셈이다. 베르네천의 천변 폭이 넓은 곳에서 자란 낙우송은 키가 큰 데 비해 상류 쪽에서 자란 나무는 키가 작다. 물 가까이에 자라는 나무일수록 키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가의 흙이 대체로 진흙인 관계로 부족한 산소를 슬기롭게 해결하기 위해 기근(氣根)이라고 부르는 숨 쉬는 뿌리를 땅 위로 드러낸다. 생존 수단인 호흡뿌리에 영양분을 저장하고 매년 1~4센티미터 정도 자라는 작은 뿌리가 땅 위로 불쑥불쑥 솟아올라 있다. 특이하면서도 멋진 뿌리의 모습이 무릎을 닮아 무릎 뿌리(Knee root)’라고도 부른다.

 

둥굴둥굴한 낙우송의 호흡뿌리가 무릎을 닮았다.
둥굴둥굴한 낙우송의 호흡뿌리가 무릎을 닮았다.

 

단풍은 나무가 겨울 맞을 채비를 하는 신호다. 낙우송은 느티나무가 이파리를 거의 떨구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낼 즈음에야 계절을 받아들인다. 겨울을 나기 위해 털갈이한 새의 깃털처럼 초록색을 떠나보내고 계절을 닮은 색깔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낙우송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단풍과는 거리가 멀다. 은행나무나 고로쇠나무처럼 곱게 물든 노란색으로 눈길을 끌지도 않는다. 벚나무와 옻나무나 담쟁이처럼 울긋불긋한 아름다운 색깔로 치장하는 것과도 멀다. 홍단풍과 당단풍, 신나무와 화살나무처럼 붉거나 매혹적이기보다 단정한 차림이다. 푸른 이파리에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어 햇살에 빛나는 금빛으로 곱게 물들다가 황갈색에서 적갈색으로 점점 짙은 색의 단풍이 든다. 몸 줄기 쪽부터 시작하여 가지의 끝부분으로 서서히 옮겨가며 물감이 번지듯 차분히 물든다. 그저 무심하게 정진하는 구도자나 아량 넓은 군자처럼 검소하고 수수한 옷차림이다.

 

곱게 물든 낙우송과 베르네천의 아름다움
곱게 물든 낙우송과 베르네천의 아름다움

 

낙우송은 가을빛으로 채색한 낙엽이 대지를 수북이 덮고, 플라타너스의 넓은 이파리가 온기 가신 대지를 방황하듯 맵찬 바람에 쓸려갈 때야 조용히 잎을 내어준다.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고 무겁게 침묵하다가 시드럭시드럭 마른 바늘잎이 한순간 소리 없이 진다. 결국에는 잎 모두를 내어주는데, 눈보라가 휘날리듯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이 아름다워 볼 때마다 절로 탄성을 자아낸다. 가만한 바람결에도 작디작은 잎이 춤추는 무희처럼 공중을 유영하다가 뭇 마음에 스며들어 시가 되고 철학이 되어 사색의 뜰로 안내한다. 낙우송 이파리는 밟히는 소리조차 내지 않아서 걸음을 내디뎌 밟는 것조차 미안하다. 가랑잎처럼 요란스럽게 바스락거리거나 퍼석거리지도 않아 애잔하고 가냘프지만 가볍게 굴지도 않는다. 은행나무 등 대부분 단풍잎이 2주 정도면 떨어지지만, 12월 중순에서 하순까지 오래도록 볼 수 있다.

나무가 주는 정서적 가치는 실로 크다. 잎과 가지의 조화로움, 호흡뿌리까지 내미는 놀라운 지혜,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약점을 극복하고 한 곳에 뿌리박고 꼼짝없이 살아가는 낙우송에 탄성마저 터져 나온다. 나무는 이파리를 모두 떨구고 아무것도 거치지 않는 맨몸으로 의연하게 서서 매서운 겨울을 맞는다. 살을 모두 발라낸 생선 가시처럼 휑뎅그렁한 몰골을 드러내고 빈 가지만 남아있는 모습은 애잔하기 그지없다. 화려하고 요란한 삶보다는 청빈한 겸손을 가르치고 있었다. 구도자처럼 숙연한 삶의 자세와 엄숙하게 서 있는 자태에는 진솔한 서정마저 깃들어 있다.

 

구도자처럼 숙연한 모습의 베르네천 낙우송.

 

연인과 함께 걸으며 추억 만들기 좋은 베르네천 산책길. 낙우송의 멋진 모습과 아름다운 이야기, 하늘에 닿을 듯 늠름한 기상과 원뿔 모양의 수려함은 머지않아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할 것이다. 베르네천을 상징하는 명물이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단풍 지는 모습을 보면서 상실감으로 한바탕 가슴앓이를 한다. 빈 몸으로 거친 호흡을 가다듬고 묵묵히 인내하는 낙우송. 한겨울 추위에 맞서 따스한 봄을 기약하며 가지에 햇살을 주워 담는 인내를 배운다. 겨울이 한참이다. 성급한 마음에 낙우송이 펼칠 연둣빛 새봄을 그려본다. 푸르름이 빛날 나무의 언어를 읽는다.

 

| 김태헌 조합원(수필가, 한국공무원문인협회 사무국장)

 

김태헌 수필가
김태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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