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 군사령관은 쌍방의 관계 각국 정부에 정전협정이 조인되고 효력이 발생한 후 3개월 내에 각기 대표를 파견하여 쌍방의 한급 높은 정치회담을 소집하고, 한국으로부터의 모든 외국 군대 철수 및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의 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이에 건의한다.’

 

1953727일에 발효된 정전협정 4조 쌍방 관계 정부들에의 건의내용이다. 3개월 내에 평화적 해결을 위한 회담을 약속하였지만 남과 북은 70년이 지나도록 이를 해결하지 못한 채 전쟁 중에 잠깐 총성을 멈춘 휴전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정전협정 관계국 중에서 남북과 북미 간의 관계는 불신의 골만 깊어졌을 뿐 아니라 안보 딜레마로 인한 남북 간의 군비경쟁으로 북한은 실질적인 핵보유국이 되었고 체재와 생존보장, 제재 완화 없이는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남북 간에는 50년 전의 남북공동성명(72.7.4)에서 조국 통일원칙을, 30년 전의 남북기본합의서(91.12.13)에서 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한 노력에 합의한 바 있고 그 이후 여러 정부에서 통일과 평화 정책을 내어 놓았지만 주변국은 물론 국민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였고 소위 흡수통일론과 대화 우선론 간의 남남갈등은 더욱 깊어만 가는 실정이다.

20182월의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1년간은 평화의 길이 열리는 듯하였지만 20192월의 북미 간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이후 대북 제재의 지속, 체제 안전보장에 대한 신뢰 부족, 비핵협상의 부진과 코로나19의 확산 등으로 북미와 남북 간의 대화는 단절된 지 3년이 되어간다.

임기 만료를 4개월 남짓 남겨 둔 이번 정부의 지속 가능한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한 평화 프로세스 구상의 현실은 어떠한가?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평창을 재현해보겠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미중 패권 경쟁은 격화되고 있으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의 북미대화를 인정한다지만 취임 1년의 성과는 실망스럽고, 정권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군산복합체의 위력을 실감할 뿐이다.

북한은 2018년 남북 간의 합의 이행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남한에 실망하여 한미연합훈련의 중단과 첨단 전략무기의 도입 중단 등 이른바 적대시 정책의 철회와 남한의 이중적 태도시정을 요구하며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모색하는 듯하다.

이렇듯 앞날을 예측하기 불가능한 일들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한 줄기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남북미가 대화의 여지를 남겨 두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상원은 지난 5일(현지시간)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지지하는 취지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프랑스 상원은 지난 5일(현지시간)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지지하는 취지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두 차례 UN 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촉구하는 등 꾸준하게 평화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으며, 북한도 파국이 예상되는 핵실험을 하지 않았고 절단하였던 통신선의 복구를 비롯하여 주적은 전쟁 그 자체이지 남조선이나 미국 그 특정한 국가나 세력이 아니다(21.10.11, 김정은 위원장 국방발전전람회 기념사)’라고 하였다. 미국도 새해 들어 계속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염려하면서도 대화 가능성은 열어 두고 있다.

비록 가는 길이 험하다 하여도 우리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대화를 계속해 나가야만 한다. 무엇보다 이 땅에서 동족끼리 총을 겨누는 끔찍한 역사가 반복되게 해서는 안 된다. 대화 없는 대립과 대결의 지속은 끊임없는 분단의 고통만을 초래할 뿐이다.

남과 북은 하나의 생명 공동체다. 전쟁으로 끊어진 허리를 안고 70년을 앓고 있는 공동체를 살리는 길은 정전협정 이후 수많은 합의서의 약속을 조속히 이행하는 길, 즉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라고 판단한다.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있는데 웬 종전선언이냐고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종전선언은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의 항구적이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한 협상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분단 77, 북한은 외부의 도움 없이 주민들의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가난한 나라가 되었지만 남한은 중견 국가를 뛰어넘어 세계경제력 10, 무역고 8, 군사력 6위의 선진국이 되었고 국제 사회에서의 역할도 전과 달리 높게 인정받고 있다. 좁은 국토와 빈약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한차원 더 높은 경제 발전과 번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남한의 물류가 북한을 거쳐 대륙과 유라시아로 뻗어나가는 일은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이다.

이제 몇 달 후면 새로운 정부가 탄생한다. 부디 남북관계와 한반도의 평화가 미국 전략의 종속변수가 되지 않도록 하며, 미중 간의 패권 경쟁 속에서 균형 외교는 물론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제 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훌륭한 정부가 되기를 바란다.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가 낫다는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함석헌 선생의 가르침대로 휴전 70년의 의미를 한민족에게 한반도와 동북아평화의 사명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역사가 내려 준 고난의 선물로 생각하며 평화의 길을 찾으면 좋겠다.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마지막 문장이 그 길을 가리키고 있다.

칼을 꺾고 생각을 깊이 하자.”

 

| 정인조(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천시협의회장, 부천희망재단 이사장)

정인조 이사장
정인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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