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 선생님과 함께 하는 ‘엄마와 아이를 위한 독서지도’ 18

간식거리가 마땅치 않았던 시절, 어머니께서는 고구마를 구워 땅속에 묻어둔 얼음 동동 띄운 동치미와 함께 꺼내 놓곤 했습니다. 불 땐 아궁이에서 막 꺼낸 김 나는 고구마를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오종종 앉아서 호호 불어 까먹을 때, 입 안에 감돌던 그 달콤한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요즘에는 고구마 굽는 기계가 많지만 이런 차가운 날씨에는 아궁이에서 막 꺼낸 고구마 맛이 그리워집니다. 우리가 보는 책들도 그 시절의 군고구마처럼 아이들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는 그런 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군고구마같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귀한 책이 있습니다. 독일의 여성작가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책 먹는 여우라는 책입니다.

책의 앞표지를 보면 여우가 식탁에 앉아 책에다 조미료를 뿌리는 장면이 눈에 띕니다. 아주 신이 난 표정으로요. 뒤표지는 제복을 입은 사람이 한 손에는 주전자를 들고 다른 손에는 연필을 잔뜩 쥐고 여우에게로 오고 있는 장면이지요. 표지만 보고도 아이들은 질문을 던집니다.선생님 진짜 책을 먹어요?” “진짜 책 먹을 수 있어요?” “, 먹을 수 있나 책을 보면 알 수 있겠지. 여기 여우처럼 책에 조미료를 치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얼른 보자고 합니다.

아이들은 여우가 그림처럼 책을 먹는가 보려고 막 궁금해합니다. 또 진짜로 책을 먹을 수 있는지 빨리 보자고 책장을 넘기자고 보챕니다. 면지에는 온통 오려진 영어철자들만 널려있습니다. 저자 이름의 첫 글자인 ‘F’도 보이고 두 번째 글자인 ‘B’도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여우인 ‘Fox’의 앞 글자고, 책이라는 뜻의 ‘Book’의 앞 글자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는 철자는 한 번씩은 다 읽어 보고 넘깁니다. 드디어 면지의 제목란에서는 후추와 소금이 흩뿌려지고 바로 다음 장에는 여우 아저씨와의 질의응답 같은 말이 적혀있습니다. 이를테면 좋은 책 고르는 방법이라든가 맘에 쏙 드는 책을 발견하면 냄새나는 침을 듬뿍 발라 찜하기 같은 말들입니다.

 

 

이 책은 책을 너무나 좋아하는 여우 아저씨가 책을 다 읽고 나면 소금 한 줌 툭툭, 후추 조금 톡톡 뿌려 꿀꺽 먹어 치운다는 이야기로 시작을 합니다. 워낙 식성도 좋아서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지요. 그래서 집안의 가구란 가구는 몽땅 전당포에 맡기고 책을 사 온 터라 더 이상 먹을 책도 전당포에 맡길 물건도 없었답니다. 너무너무 책이 고팠던 여우 아저씨는 길모퉁이서점보다 열 배, 아니 백 배, 아니 천 배나 많은 책들이 있는 국립중앙도서관엘 갑니다. 그리고는 침을 발라 쪽쪽 맛보기도 하고, 정말 맛있는 책은 몰래 가방에 넣어가지고 집으로 오기도 하였지요. 그런 지경이니 도서관을 찾은 이들이 불평불만을 늘어놓았겠지요. 책에서 더러운 냄새가 나느니, 축축하게 젖어있다느니 하고 말입니다. 여우 아저씨는 결국 특별하게 멋진 책을 골라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덥석 책을 무는 순간을 사서에게 들키고 말았답니다.

덜미가 잡힌 여우 아저씨는 그길로 도서관에서 쫓겨나고 몰골은 말이 아니게 수척해져 갔지요. 먹을 책이 없으니 길거리에서 나누어주는 광고지라든가 심지어는 헌 종이 수거함을 뒤지기까지 했으니 소화불량까지 걸리고 말입니다. 여우 아저씨는 결심을 하고 털모자를 쓰고 가방을 메고 길모퉁이 서점을 향해갑니다. 그리고는 책을 강도질하여 집으로 가져와서는 게걸스레 먹는 도중에 붙잡히고 말지요. 감옥에 갇힌 여우 아저씨에게는 독서 절대 금지라는 벌이 내려진답니다.

아이들에게 물어봐 주세요.

얘들아, 너희들에게 독서 절대 금지라는 벌이 내려지면 어떻겠니?”

음 당분간은 편할 텐데 좀 오래되면 아는 게 없어지고 불편할 것 같아요.”

그래 그럴 거야. 우리는 책에서 얻는 지식이라는 게 있으니 어찌 보면 독서 절대 금지라는 벌은 그런 면에서 엄청나게 큰 벌일지도 몰라 그치?”

그러면서 아이들은 여우 아저씨의 상황을 궁금해 합니다. 감옥에 갇힌 여우 아저씨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지요. 그게 무엇인지는 아이들과 차분히 앉아 책을 읽으면서 해답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처음 뒤표지의 그림이 누구인지도 알 수 있답니다. 이 책은 아이들이 꿈을 그리기에도 또 꿈을 설명하기에도 본보기가 되는 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책을 다 읽기 전에 여우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보라고 물어봐 주세요.

얘들아, 나중에 여우는 어떻게 되었을까?”

어른들은 곧잘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 먼 미래의 꿈을 가지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꿈을 꾸기 위해서는 우선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즐겨하는지를 살피는 일이 중요합니다. 바로 우리가 지금 하는 일처럼 즐겁게 하는지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도 어떻게 꿈을 키워 나가야 할지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작은 일부터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살피다 보면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관심과 사랑이 되고, 그것이 축적되어 습관이 되고 행동으로 발전하면 곧 아이들의 미래와도 직결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좀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세요.

 

| 정령(시인, 부천시 아동복지교사, 독서지도강사)

정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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