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 /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 지음, 이주영 옮김

멍청이와 같은 뜻의 우리말 바보’, ‘천치’, ‘쪼다’, ‘등신’, ‘얼간이’, ‘머저리등은 일상적인 대화에서 한결같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친한 친구끼리 또는 연인끼리 즐겁게 대화를 나누다가도 누군가의 입에서 불쑥 위와 같은 단어가 튀어나온다면 분위기는 금방 싸늘해지고 상대방은 모멸감에 치를 떨 것이 분명하다(그중에는 내색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멍청이라는 말 속에는 인격모독적 요소가 들어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사용을 꺼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발전할수록 멍청이 또한 증가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프랑스의 심리학자이자 과학저널리스트인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이 저명한 심리학자, 교수, 편집장 등 28명의 석학과 함께 우리 시대의 금기어(?) 중 하나인 멍청이를 연구한 책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이주영 옮김, 시공사, 2021)를 펴냈다. 이 책에는 멍청이의 종류부터 멍청함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멍청함이 끼치는 해악까지 그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멍청함의 거의 모든 것이 망라되어 있다. 저널리스트 니콜라 드모랑의 표현에 따르면 이 책의 등장으로 인해 마침내 멍청학(stupidology)’이 탄생한 셈이다.

 

 

세상에는 똑똑한 바보들도 많다

 

멍청함은 단순히 지성의 반대가 아니다. 아주 똑똑한 사람도 놀랄 정도로 멍청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현명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에는 똑똑한 바보들도 많다. 빌 클린턴은 조사를 받는 중에도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대통령 자리까지 위협받았다.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197795일 외계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에 실어 발사했다.

200310, 스티브 잡스는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 췌장의 양성 종양은 수술이 가능했지만 잡스는 수술을 거부했다. 불교신자이자 채식주의자였던 그는 의학에 회의적이었고 이상한 대체요법을 굳게 믿었다.

2010116,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의 가든인호텔에서는 갈릴레이는 틀렸다. 교회가 옳았다라는 제목의 과학세미나가 열렸다. 연사 열 명은 자신들을 전문가라고 소개하며 태양이 지구 주변을 돈다는 천동설을 증명하기 위해 애썼다.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다. 아인슈타인이 다리를 저는 밀레바 마리치와 결혼하려고 했을 때, 그의 어머니는 밀레바처럼 다리를 저는 아이들이 태어날 거라며 결혼을 극구 반대했다. 아인슈타인은 이후 편지에 아내 밀레바의 병과 아들의 병에 관해 이렇게 썼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해버렸으니 벌을 받아 마땅해. 윤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열등한 여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은 것은 나의 죄야.”

 

멍청이는 호모사피엔스가 다른 종에게 입히는 피해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

 

21세기 초에도 여전히 과학 실험, 산업용 생산, 혹은 식량 조달을 이유로 인간이 죽이는 동물의 수는 어마어마하다. 전 세계적으로 약 1억 마리의 동물들이 매년 실험에 사용되고, 700억 마리의 새와 포유류가 인간이 먹을 고기로 도축되며 1조 마리의 물고기가 어업활동으로 잡힌다. 더구나 인간은 생산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과학적인 방법과 정교한 축산 기술을 개발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멍청이들은 동물 착취로 인해 일어나는 피해를 외면하거나 정당화하는 심리 메커니즘에 매몰되어 있다.

 

SNS 시대의 멍청이

 

SNS 시대는 팩트보다 감성이 우선인 시대다. 진짜라고 믿어달라며 감성에 호소하며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이에 대해 자비를 베풀며들어주는 사람이 합심해 엄청난 멍청이들도 공개적으로 쉽게 발언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 책은 SNS 시대의 멍청이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SNS상에서 멍청이들은 자기 자랑을 많이 하며 과장하고 남을 조종하려는 성격이 강해 반사회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지나치게 비판적인 댓글을 달거나,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댓글을 보면 공격적으로 반응해 체면을 지키려 하거나 분노 조절을 못 하고 폭언을 한다.

 

포퓰리즘을 이용하는 자와 이용당하는 자

 

이 책은 정치인들이 어떻게 포퓰리즘을 이용하는지 보여준다.

트럼프는 선거운동에서 예의를 상실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덕분에 대권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자신이 정신적으로 결함이 많다는 것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미성숙한 정신, 자아도취로 가득한 모습을 숨김없이 보여주었고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기도 했으며 도덕의식이라고는 배운 적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트럼프의 거짓말, 자기 자랑, 비논리, 불량스러운 모습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많은 미국인들이 예의 없고 증오를 부추기고, 생각이 이분법적이며, 음모론과 인종차별을 과감히 내보이고, 미국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트럼프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포퓰리즘이 끌어모으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감정에 휩쓸려 판단을 제대로 못 하고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아 잘 흥분하는 탓에 인지능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포퓰리즘이 제시하는 마법적인 방법과 정신은 사회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에게 인상적으로 각인된다. 지식인들의 정치적 의견이라고 해서 완벽하지는 않다.

도널드 트럼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이탈리아 총리), 주세페 베페 그릴로(이탈리아 오성운동 대표)가 세상을 리얼리티 쇼와 공연의 세계처럼 만들고 신화와 마법 같은 세뇌 방식을 교묘히 섞어 포퓰리즘을 부추긴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이 만든 거짓 세상은 진짜 세상처럼 행세하며 개인과 집단의 환상을 자극한다. 거짓 세상은 사회에 반항적인 각종 충동을 부추기면서 쾌락주의에 불을 붙인다.

 

멍청함에 맞서는 방법

 

멍청함은 전염성이 강하다. 멍청함이라는 바이러스에 전염되면 누구나 상식을 잃어버린다. 그렇다면 이 같은 멍청함에 맞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멍청함과 맞서려면 멍청함을 비난하고, 멍청한 것을 향해 멍청하다고 해야 한다. 자신에 대해서도 멍청하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사용해야 한다. 제대로 생각하지 못한 자신의 무능력함이 창피하다고 고백해야 스스로 말과 행동을 절제하게 된다.

어떤 사회든 구성원의 시민의식과 협력이 있어야 정상적으로 살아남는다. 멍청한 인간은 시민의식과 협력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한다.

이제 얼마 후면 우리도 대통령 선거, 지방선거를 차례로 치르게 된다.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표를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들의 선동적 포퓰리즘에 휘말리는 멍청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한 번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멍청이의 유형과 특징

 

아래 글은 이 책에 소개된 멍청이의 유형과 특징을 모아 놓은 것이다. 글을 읽으며 스스로 멍청이가 아닌지 체크해보기 바란다. 다만 멍청이로 판명되더라도 너무 상심하거나 슬퍼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을 쓴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도 이미 멍청이임을 자백했고, 필자 역시 멍청이임을 고백하는 바이므로.

 

멍청함은 그 종류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폐를 끼친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의 멍청함은 잘도 보면서 정작 자신의 멍청함은 제대로 보지 못한다.

멍청한 인간은 자신이 멍청한지도 모르고 다른 사람이 멍청하다고 비난한다.

똑똑하고 교양 있는 척하는 멍청이는 책은 열심히 읽는데 작가들의 사상이나 대가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멍청한 인간은 책으로 읽은 내용이 전부인 줄 알며 마치 책이 새장인 양 그 속에 갇혀버리는 재주가 있다.

멍청한 인간은 자아도취가 강하다. 멍청한 인간은 근거 없는 자신감에 취해있다.

멍청한 인간은 생각하지 않고 설득당하지 않으며 고민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확신할 뿐이다.

멍청한 인간은 주의력이 부족하다. 울고 있는 사람에게 눈치 없이 안녕, 별일 없지?”라고 말한다.

멍청한 인간은 보통 사람보다 유독 착각을 잘한다.

멍청한 인간은 자신이 충분히 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다.

멍청한 인간은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자신감이 없어서 남의 쓴소리를 그대로 듣고만 있는 멍청한 인간이다. 또 하나는 자신에게 매우 관대한 멍청이들, 즉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치는 멍청이들이다.

멍청한 인간은 비꼬는 성격에 남을 잘 믿지 못한다.

멍청한 인간은 평소 자신의 생각을 단정적으로 말한다.

멍청한 인간은 현재 사는 세상이 쓸모없고 사악하다고 생각한다.

멍청한 인간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더 무게를 두고 주목하는 성향이 있다.

멍청한 인간은 주변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뻔뻔하게 사회생활을 한다(새치기,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아 자리 양보하지 않기 등).

멍청한 인간은 현실과 관계없이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멍청한 인간은 모든 질문을 이분법적으로 한다(“내가 좋아, 싫어?”).

멍청한 인간은 모순을 견디지 못한다(“서로 반대인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는 없어”).

멍청한 인간은 같은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하며 단정적으로 말한다(“비즈니스는 비즈니스야”, “유태인은 유태인이야”).

멍청한 인간은 진실을 알면서도 왜곡하거나 숨기려는 거짓말쟁이와 달리 진실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 현해당(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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