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택시』 / 이모세 글 · 그림 / 밝은세상

아빠, 도서관에 있던 턴테이블 아직도 있어요?”

작년 10월쯤 첫째가 LP판 하나를 주문했다고 하면서 묻는다. 사실 도서관을 이전하면서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갖고 있던 LP를 다른 분들께 드리고 턴테이블은 당근을 통해 판매했다. 대신 휴대폰 공기계와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해서 공간을 더 넓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음악을 아주 편하게 듣고 있었다. 그러다 20219월에 언덕위광장 문화공간 <더써드>를 확장하면서 실내장식을 깔끔하고 세련되면서도 복고풍의 분위기(가능한가?)를 위해서 턴테이블을 고민하고 있었다. 딸의 요청도 요청이지만 공간에 필요하다 싶어 결국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저렴하면서 다양한 기능을 갖춘 턴테이블을 하나 장만했다.

딸이 주문한 LP판은 ‘cigarettes after sex’라는 밴드의 노래다(한국 팬들 사이에서는 일명 섹후땡이라고 불린다). 딸은 A‘K’를 좋아하지만 광장지기는 B면의 ‘sweet’의 몽환적이고 감미로운 여성 목소리에 푹 빠져들었다. 노래가 귀에 딱 달라붙기에 검색을 해 보니 꽤 유명한 밴드이고 2018년에 내한 공연까지 했던 밴드였다. 게다가 여성인 줄 알았던 보컬 Greg Gonzalez는 수염과 구레나룻이 잘 어울리는 멋진 남성이라는 사실이 노래와 함께 밴드의 매력을 한층 더해준다. 딸과 함께 음악을 공유하는 것도 즐겁고, 딸에게 턴테이블 작동과 LP판을 다루는 방법을 알려주니 뭔가 뿌듯하고 행복하다.

판을 갖고 있을 걸 하는 후회 가득한 마음을 가지고 인사동에 나갔다. 음반 가게를 다니며 오래된 판을 구경하니, 마치 80년대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며 추억이 올라온다. 함께 나간 청년이 마냥 좋아하는 내 모습에 ‘Nat King Cole’의 크리스마스 캐럴 판을 선물로 사준다. 선물 외에도 더 사서 오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 선물로 받은 판만 가슴에 안고 안타까운 눈물을 흘리며 돌아왔다. 혹시 당근에서는 저렴하게 구할 수 있을까 싶어 살펴보니 ‘Melanie Safka’‘Stevie Wonder’의 옛 판을 싸게 판매하는 분이 있다. 바로 메시지를 넣고 달려가 판을 구해 왔다. 기쁜 마음에 이 소식을 SNS에 공유했는데 수원에 계시는 교수님 내외분께서 LP 음악이 듣고 싶다고 연락을 주시고 일요일 오후에 직접 찾아오셨다.

LP판의 매력은 살짝 섞인 잡음에 있다. 거친 듯한 소리가 오히려 긴장을 풀어 준다. ‘그래 이 맛이야!’ 하며 황 교수님 내외분과 공간 가득 음악으로 채워진 순간을 몸으로 반응하며 누린다. 추억이 담긴 옛 음악이 가슴 깊이 가라앉아 있던 추억의 조각을 흔들어 충동하니 자연스럽게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다. 음악 덕분에 오랜 친구가 된 우리. 서로의 이야기에 공명하고 미소 지으며, ‘우와! 이 순간만큼은 부족함 없이 행복하다!’는 놀라운 경험을 한다. 문득 동네에 음악 감상실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싶어진다. 누구나 좋아하는 판을 갖고 와서 듣는 거다. DJ가 되어 음악 안에 담긴 자기의 이야기를 이웃에게 들려주는 거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위로가 된다.

 

 

2022년 첫 만화로 이모세 작가의 개인적인 택시를 만난 것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의 실현으로 차원 다른 복, 아무도 손댈 수 없는 나만의 소중한 복을 누리는 문을 열어준다. 예약한 단골만 탈 수 있는 택시, 가는 동안 손님이 듣고 싶은 노래를 듣는 (개인택시가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택시는 누구에게나 있는 추억의 힘을 경험하도록 이끌어 준다. 재미와 따뜻한 내용, 그림으로도 독자는 충분한 보상을 받지만, 에피소드마다 작가가 선곡하는 팝과 가요는 탁월하다. 마치 이종환, 김광한, 김기덕아저씨들과 택시를 타고 가는 착각이 든다. 개인적인 택시덕분에 광장지기도 고3이었던 88년 봄, George Benson<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 가사를 적어 건네준 영동여고의 그 친구가 생각난다. 잘살고 있겠지? 잘살고 있으면 좋겠다.

 

| 남태일(언덕위광장 작은도서관 광장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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