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다, 때마다 나오는 동네북 여가부 폐지’. 누구의 관심과 사랑을 구걸하려고 욕설처럼 쏟아내는 구호가 난무할까. 이번뿐이겠는가? 여가부 폐지론은 정권 교체기 전후 때마다 등장하는 해묵은 논란이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선 이후 여성부는 여성 권력을 주장하는 사람들만의 부서라며 여성부를 평가절하했다. (2009년에는 가족, 청소년 등 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책을 여성부에 이관하여 여성가족부가 된다) 유승민 전 의원은 2017년 대선을 치를 때도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올해 1월 윤석열 후보는 뜬금없이 여가부 폐지라는 구호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경선 후보 시절까지만 해도 윤 후보의 공약은 여가부를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는 것이었다. 윤 후보는 젊은 층에 어필하고자 멸공 코스프레에 이어 이대남을 유혹하는 여가부 폐지까지 다양한 호소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원희룡 국민의힘 선대위 정책본부장은 여가부를 충치에 비유했다. (그러더니 며칠 후에는 정부의 주된 업무여야 하고 실제로 더 강화돼야 한다고 한다. 머선 소리?)

여성혐오, 비난의 메시지를 유감없이거리낌 없이 발언할 수 있다는 건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증거다. 예전에 어떤 대통령 후보가 노인 비하 발언을 한 이유로 곤혹을 치렀던 적이 있었다. 여성비하 관련 발언은 이미 대중적인 승인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명백한 백래시다. 우리나라만 이런 게 아니다. 1980년대 미국은 레이건 정부의 신보수주의를 기치로 여성들에 대한 공격이 거세어졌다. 이후 트럼프 정권 역시 여성혐오와 재앙적인 여성정책이 이어졌다.

 

 

도대체 왜 여가부를 들들 볶는가? ‘공개적인 이유는 우리나라가 이미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데 왜 굳이 가족부 앞에 여성을 붙여서 여성과 남성을 편가르기 하는가? 여가부는 예산을 너무 낭비하면서 일도 못 한다. 게임 셧다운제 책임져라. 여성가족부는 있는데 남성가족부는 왜 없냐? 등등이다.

왜 여성가족부일까? 그렇다면 왜 흑인민권운동이며, 왜 장애인인권운동이고, 왜 청소년권리운동이며 왜 민주시민운동인가? 인권과 권리는 누구의 것을 빼앗는철면피한 운동이 아니다. 성인지감수성 교육을 한다고 해서 남성을 짓밟는 것일까? 장애인 인권에 대한 학습을 하면 비장애인을 탄압하게 되는가? 청소년의 권리교육을 하면 성인의 권리를 빼앗아 오는가? 하다 하다 여성운동은 빨갱이라는 허황된 말도 있다. 80년대까지 동네북이었던 빨갱이가 이제는 혐오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일까?

권리 운동이 존재하는 이유는 평등하지 않다는 실질적 정황 위에 움직이는 것이다. 한 사회의 평등은 단 한 사람의 소수자까지 인권보장이 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유독 여성운동은 누군가(남성)의 권리를 빼앗는 혐오적 운동으로 치부되고 있다. 드라마, 게임, 각종 광고물을 보라. 여성혐오, 여성의 성 상품화가 절대없는 것은 극히 소수다. 유리천장, 여성의 고용률. 승진율, 임금의 차이, 돌봄노동의 사적 영역화 등 삶의 전반에 걸쳐 불평등의 사례는 수없이 많다.

여가부가 예산을 낭비한다는 썰도 있다. 여가부가 성인지예산을 무려’ 35억을 쓴다고 한다. 성인지예산은 우리 세금이 성평등하게 잘 쓰이고 있는지 살펴보고 분석하는데 쓰는 돈이지 여가부가 쓰는 돈은 아니다. 2022년 편성된 여가부 예산은 14,650억 원으로 전체 정부 예산의 0.24%이고 다른 부서 예산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작고 가난한예산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게다가 여가부의 예산 중 가장 많은 돈이 경력중단 여성 지원에 쓰이고 있다. 당연히 임신과 육아로 경력 중단된 여성들이 고용을 도와 가계소득을 높이기 위한 취지이다.

게임 셧다운제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셧다운제는 누가 만들었을까? 여가부는 행정부 소속이고 법, 제도는 입법부인 의회에서 주로 만든다. 셧다운제는 국민의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한나라당 소속의 김재경 의원(남자임)이 처음 발의했고 여가위와 법사위를 거쳐 이명박 정권에서 최종 입법된다. 의회에서 만든 법을 여가부가 담당 부서라는 이유로 10년 내내 손가락질받고 전용기, 권인숙, 허은아, 류호정 의원이 대표 발의하여 폐지까지 이르게 되었다.

정책에 대한 비판은 정확한 근거하에 합리적인 토론과 공론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건강한 민주사회라고 생각한다. 여가부에 대한 정책비판은 전후 맥락을 따져 해야 함이 옳다. 선거에 이용하기 위한 인기몰이 방식은 대중에게 왜곡된 인식을 전달하게 된다. 교육정책에 문제가 있으면 교육부를 폐지해야 하나? 군인 성폭행 사건, 부대 내 폭력 사건이 발발하면 국방부를 폐지하고 주택정책에 문제가 있으면 국토부를 없애야 하는가? 드라마에 문제가 생기면 방송국을 없애버리고 부천시의 정책에 문제가 있으면 시청을 통째로 날려버려야 하는가? 왜 여가부는 유독 폐지하라고 하는가?

정치인들과 시민들은 정책이나 시스템에 문제가 있을 때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모색하며 건강한 공론화를 형성해야 한다. 일자리 경쟁이 여성과 남성이 벌이는 것인가? 정치가 해결해야 한다. 군대 문제? 여성이 군대 가라고 떠밀었나? 전쟁을 지향하는 구조에 대해 객관적으로 성찰하고 비판해야 한다.

여성가족부는 성평등을 기초로 가족정책과 청소년 정책을 쌓아 올린다. 그래야 가장 취약한 계층을 위한 정책을 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건강가정기본계획에서는 한부모, 1인 가구, 비혼공동체 등에 대한 맞춤형 지원책을 설계했다. ·가정 양립 및 출산, 양육지원 등 우호적인 근로 여건을 조성한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가족친화인증도 평등관점에서 접근해 나온 제도다. 물론 비판받아야 할 여러 사항이 있다. 합리적으로 비판하고 조직에 문제가 있다면 개편방안을 내면 된다.

선거를 위해 여가부 폐지를 주구장창 외치는 분들. 그 대신 본인이 생각하는 성평등, 2030을 위한 구체적 정책과 공약을 고심하고 발표하고 실행할 준비를 하면 된다. 대선후보의 젠더공약을 보면 성소수자 인권, 포괄적 성교육 비전은 전무하다. 국민의힘 윤 후보는 임산부 여성만을 위한 지원책과 뜬금없는 성범죄 무고죄 신설을 내놨다. 민주당 이 후보는 인구 재생산의 문제, 성별임금공시제에만 집중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정책에 성평등 관점이 포함된 플랜은 전무하며, 생물학적 특징과 성폭력 예방에만 치중하던 성교육보다는 인간의 생애 전반을 포괄하는 교육인 포괄적 성교육에 관한 비전도 전혀 없다. 우리 시민들은 좀 더 그럴싸한 정책, 대안, 멋진 비전을 보고, 듣고 싶다.

우리 사회는 좀 더 합리적인 비판의식이 필요하다. 차별과 혐오에 묻어가서 득표를 노리는 행태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지금 과연 누가 편 가르기를 하고 있을까?

 

| 오세향(해봄부천시청소년성문화센터장)

오세향(해봄부천시청소년성문화센터장)
오세향(해봄부천시청소년성문화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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