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방문이 소리 없이 닫혔다. 늘 열려있던 문이었다. 나의 친구이자 사랑하는 딸이 지내는 방. 딸은 화장실 갈 때 빼고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우리 집 아이 세 명도 모두 등교가 중지되었는데. 딸은 동시에 자가 격리 조치를 통보받았다. 딸과 같은 반 친구가 코로나19에 확진돼 반 전체가 등교할 수 없다고 했다. 딸의 방문이 닫히고 격리 생활이 시작됐다.

앞으로 9일 동안 가족과 함께할 수 없고 현관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자신의 방과 화장실만 사용하면서 밥도 혼자 먹어야 했다. 혹시 감염되었을지도 모를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딸의 몸에 잠복해있을지 모르는 바이러스가 정체를 드러내기 전에는 알아챌 방법이 없었다. 소풍날 보물찾기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게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야 겨우 이기는 시간과 싸움이 시작됐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차분했다. 우선 딸이 지낼 최소한의 공간을 경계로 붉은색 접근금지 표시줄을 그었다. 보이지 않는 것과 싸우면서도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며 승리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더는 딸을 마주하지 못하는 것이 마치 먼 외국으로 유학 보낸 엄마와 같았다.

 

 

아이들 셋은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방역수칙에 따라 딸과 대면하지 않고 외부활동도 줄여야 했다. 아들 둘도 딸과 같은 생활을 시작했다. 밥도 각자 방에서 먹고, 잠도 따로 잤다. 매 끼니를 식판에 준비해, 각자 방문 앞으로 배달했다. 영상통화로 딸이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필요한 게 있는지 물었다. 방문만 닫혀 손 내밀면 닿는 거리였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었다. 잠을 잘 잤는지, 밥맛은 어떤지, 체온은 몇 도인지, 심심하지는 않은지를 물었다. 딸의 상태를 확인하며 시간을 보낼 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먼 곳에서 유학 중인 딸을 그리워하는 엄마라도 된 듯 안아주고 쓰다듬으며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했다.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부리나케 달려가 접근금지선 밖에서 손을 흔들며 아쉬움을 달랬다. 금메달을 딴 운동선수가 받을만한 환대였다. 딸은 화장실을 갈 때마다 그런 분위기를 즐겼을지 모른다. 어쩌면 박수받는 일인가 싶어 멋쩍었을 것이다.

격리 초반 긴장했고, 지켜야 하는 방역수칙으로 번거로움과 수고가 늘었다. 식기를 관리하고 주기적으로 환기하는 것 모두가 내 몫이었다. 긴장감이 피곤함을 이겨내게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간이 더디 흐르기 시작했다. 아들은 자기 방을 나와 접근금지선 근처에서 놀며 닫힌 방에서 들리는 인기척을 확인했다. 딸은 배가 고프지 않다며 밥을 남기기 시작했고 침대에 누워 자는 시간이 늘어났다. 간식을 준비해 문 앞에 가져다 두면 방문을 30cm 정도만 열고 말없이 손만 내밀어 집어갔다.

격리 기간에도 학교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수업이 시작되면 닫힌 문밖으로 딸의 씩씩한 목소리가 들리고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웃음소리가 거실에 가득 채워지자 전염이라도 된 듯 따라 웃었다. 나는 딸이 유학 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막내가 놀라서 어디를 갔냐고 따져 물었다. "누나는 프랑스 파리로 공부하러 갔어!"라고 하자, 놀란 눈치였다. 딸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냐고 물었다. 딸이 자기 방이라고 해도 믿지 않고, 어디에 있냐며 물었다. 방문을 열어볼 수 없자 지금 있는 곳을 보여 달라고 졸랐다.

방문이 닫혔을 뿐인데 딸은 닿을 수도 없는 먼 곳에 머물렀고, 나는 문 여는 방법조차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손꼽아 기다리던 크리스마스에도 식탁에 함께 둘러앉지 못했다. 아이들이 각자 방에서 밥을 먹고 나는 식탁에 혼자 있었다. 식사 시간이면 늘 소란하다고 볼멘소리를 할 때가 엊그제였는데, 그때가 그리웠다. 조용히 12월의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123012, 드디어 격리 조치가 해제되었다. 우리 가족은 그동안 고생한 딸에게 손뼉을 쳐주고 꽃다발을 전해줬다. 먼 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딸을 공항에서 만난 기분이랄까.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만큼 시끌벅적했다. 식탁과 주방을 다람쥐처럼 바삐 움직이는데도 계속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 사이에 높이 세워져 있던 보이지 않는 칸막이가 사라지자 닫힌 방문이 열렸다. 오랜만에 가족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가끔 혼자가 되고 싶을 때가 있었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문을 열 수 없다는 것과는 달랐다. 한동안 닫혀있던 문은 우리 사이를 가로막더니 어느 순간부터 열 수 없는 문이라고 여겨졌다. 그 시간 딸은 자기 세계의 주인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새삼 평범한 일상에서 누렸던 가족 사랑과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소소한 행복이 가득하길 소망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가져온 또 다른 세계에서.

 

| 이은주(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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