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규 변호사의 ‘인권 칼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근무했을 때의 일이다. 40대 초반의 여성 청각장애인 두 분이 찾아왔다. 두 분은 유명 회사에 네일아트 담당자로 취업하여 기간제 근로자로 근무 중인데 회사에서 최근에 2년 계약만료 이후 계약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통지를 보내와서 답답한 마음에 인권위를 찾아왔다고 했다. 두 분은 계약만료 문제에 더하여 직장에서 회식과 같은 모임을 할 때 자신들을 배제하여 장애인 차별을 하였다는 호소를 하였다.

회사는 직원 수가 천여 명 정도 되니까 법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고용 의무가 있어서 두 분을 고용하였을 것이다. 회사는 두 분과 시각장애인 한 분을 고용하여 하루에 4시간씩 주 20시간 동안 직원들에 대한 안마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두 분의 절박함이 느껴져 인권위가 개입할 여지가 있는지 이것저것 살펴보았으나 마땅한 방법을 찾기가 여의치 않았다.

우리나라의 기간제법은 기간제 사용을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하고 있는데 두 분과 같이 1주 동안 소정근로시간이 뚜렷하게 짧은 경우에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회사는 이러한 법적인 예외 규정을 활용하여 1개의 일자리를 두 개로 쪼갠 뒤 두 분을 주 20시간으로 고용하고 2년이 되자 무기계약직 고용 의제를 피하려고 계약연장을 거부한 것이다. 한사람이 해도 될 일을 두 명이 하는 걸로 쪼개면 장애인고용촉진법상 고용 의무비율을 채우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고용 의무비율을 채우면 국가로부터 혜택도 많이 받는다) 기간제 사용의 예외적 허용에 해당하게 되어 이렇게 한 것 같다.

인간에게 일자리는 단순히 생계 수단의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 일자리를 매개로 한 사회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의의를 확인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인격체로서 대접받고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한 것이 과장이 아니다. 비장애인들도 그러하건대 사실상 고용시장에서 채용되는 게 거의 불가능한 장애인들의 경우는 말해 무엇 하랴!

우리나라의 장애인 일자리 정책의 주요 내용은 국가와 지자체, 기업에게 일정 비율의 장애인을 고용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와 보호 고용을 통해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을 설치하여 장애인의 직업능력개발과 일자리 확대를 도모하는 제도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장애인의무고용제도는 중증장애인의 경우 혜택을 보기 어렵고 두 분의 사례와 같이 취업이 된 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주로 부수적인 일자리에 배치되며 일자리의 지속성도 담보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용 주체에게 법률상 고용의무만 부과하는 방식으로는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사진출처 : '삼할' 홈페이지
사진출처 : '삼할' 홈페이지

 

스웨덴은 장애인 고용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삼할(Samhall)’이라는 국영기업을 설립하여 장애인들을 직접 고용하고 장애인들을 훈련시켜 이들을 원하는 다른 기업에 취업을 연결시켜주고 있다. ‘삼할2022년 기준 약 26,000여 명을 고용하고 지점이 500여 개에 이르는 스웨덴 최대의 기업이다. 장애인들은 삼할에 고용되어 돌봄업무, 청소업무, 물품제조업무 등을 하는데 업무 숙련도가 향상되면 관련 기업에 의해 캐스팅이 되어 일자리를 옮긴다. ‘삼할은 해마다 소속 장애인 중 다른 기업으로 전출시킬 목표치를 공표하는데 올해에는 1,500명을 목표로 하였다. ‘삼할의 홈페이지에 가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일하러 갈 곳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노동자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〇〇 사회복지관에서 일하는 지인은 일할 때 만났던 뇌성마비 장애인에 대해 반복하여 이야기하였다. 이분은 걷는 건 물론 신체를 자기 의사대로 움직이는 것도 힘에 부쳐 하면서도 〇〇시에서 제공하는 버스정류장 잡화박스를 맡아 운영하면서 온갖 소소한 것들을 판매하여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럼에도 항상 웃는 얼굴로 주변 도움을 사양하면서 본인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갔다고 한다. 지인은 이분을 보면서 인간이 왜 존엄한지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국가와 사회는 장애인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지원할 의무가 있다.

올해 들어 부쩍 한국이 1인당 GDP 30,000달러, 인구수 5,000만 명 이상인 7개국 중 하나가 되었으며, 2차대전 이후에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성취한 유일한 국가여서 이제 선진국이 되었다는 언론보도를 많이 접하였다.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경쟁의 논리가 지배적인 고용시장과 더불어 고용시장을 통한 일자리 접근이 어려운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연대의 정신이 관철되는 국가 주도의 고용시스템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 김원규 변호사((부천이주민법률지원센터 모모센터장)

김원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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