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YMCA 진단과 전망(3월 2주)

바둑에 있어서 갈라치기는 상대방이 좌우, 양쪽에서 집을 이루는 형태를 갖고 있을 때, 중간을 공격함으로써 상대방의 집을 양분하게끔 하고, 각각 생존하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수로, ‘끊기보다 더욱 강한 수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갈라치기 수를 적시 적소에 활용하면, 상당한 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에 있어서도 갈라치기는 매우 효과적으로 사람들을 내 편(내집단)과 네 편(외집단)으로 만들면서, 쉽게 구도를 변화시키고, 유리하게 판을 뒤집을 때 활용된다.

우리 현대 선거 역사에서 가장 악질적인 갈라치기는 소위 우리가 남이가로 회자되는 초원복국집사건이다. 19903당 합당으로 형성된 노태우·김영삼 여당- 민자당은 1992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쉽게 선거에 승리할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전국 득표율 38.5%의 저조한 성적을 내었고, 의석 역시 130여석을 획득하는데 그쳤다.

이에 위기감을 느끼고 1992년 그해 12월 치러지는 14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민자당 후보를 당선시킬 목적으로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은 선거를 1주일 앞둔 1211일 부산 주요 기관장(김영환 부산시장, 박일용 부산경찰청장, 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 우명수 부산교육감, 정경식 부산검찰청 검사장,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장)을 초원복국집에 모이게 하여, “우리가 남이가,” “부산, 경남, 경북까지만 요렇게 딱 단결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지역감정이 유치할진 몰라도 고향 발전에 도움이 된다,” “하여튼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라는 대화를 주고 받으며, 부정선거를 획책하였다. 이러한 모임에 대한 정보를 미리 입수한 정주영 후보의 통일국민당 선거원들이 초원복국집에 미리 설치한 녹음기를 통해 이러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천인공노할 선거부정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당시 언론은 불법 도청에만 초점을 맞췄고, 정주영 후보는 역풍을 맞았다. 그렇게 김영삼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이후 우리가 남이가는 지역감정 갈라치기의 상징적 구호가 되었다. 그 당시 불법 선거운동을 모의한 이들은 모두 승승장구하였고, 지역감정과 특정 지역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분할통치(divide and rule) 방식도 갈라치기와 유사하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영국 식민지의 분할통치라 할 수 있다. 인도에서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간 분할통치는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 로힝야 사태, 스리랑카 내전, 수니파-시아파 갈등, 남수단 사태 모두 영국의 분할통치의 유산이다. 이와 같은 갈라치기는 효과적이다. 그러나 사회 발전과 정치 발전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 유혹은 너무나 달콤하다.

(외집단)와 내(내집단)가 다르다도 아니다. 나와 너는 틀리다이다.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정서 속에서 선과 악으로 집단을 매도한다. 특히 선거에서는 아주 효과적인 갈등 프레임을 구축하여, 더 많은 유권자들을 자신의 집단 안으로 끌어 드리려고 한다. 매우 잘 통할 수 있다. 그러나 교묘하게 우리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 편견과 혐오, 그리고 차별을 양산한다. 갈라치기의 필연적인 부산물이다.

20223월 대선 과정에서 과연 갈라치기전략은 여전히 유효한가? 그렇다. 여전히 잘 통하는 것 같다. 특히 한 후보가 유독 갈라치기를 주요 선거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성부 폐지 등으로 대표되는 남성-여성 갈라치기, 멸공 인증 릴레이를 통한 색깔론 갈라치기, 종부세 폭탄 운운하며 부자-서민 갈라치기, 에너지전환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원전 갈라치기,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으로 일할 수 있게 하고, 저질의 식품도 소비할 수 있게 하라는 계급 갈라치기, 노조를 무조건적인 악으로 규정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무시하는 자본-노동 갈라치기 등 무수히 많은 갈라치기 전략을 사용하고 있고, 이러한 전략은 쉽게 내집단 유권자들을 자극하게 된다. 그리고 갈등과 분열, 그리고 논쟁은 더욱 가중되어, 내집단 결속을 통해 선거 승리를 도모한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갈라치기 유세의 결말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느 대통령 선거에서 이토록 분열을 통한 선거 전략이 횡횡한 적이 있었는가? 그렇지 않다. 설사 그런 마음을 갖고 있더라도, 통합과 연대를 외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이번 대선에서 야당 후보가 보여준 갈라치기는 정치 퇴행을 가져왔고, 무엇보다 진보와 보수의 정책 대결을 무산시켰다. 정책은 사라지고, 갈등만 남게 되었다. 과연 우리는 이번 대선에서 어떠한 미래를 보았는가? 암울하기 짝이 없다.

 

영화 돈룩업(Don’t look up) 스틸 컷
영화 돈룩업(Don’t look up) 스틸 컷

 

최근 화제가 된 영화 <돈룩업(Don’t look up)>은 지구 종말이라는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갈라치는 정치인의 모습과 그 결과를 보여주는 매우 훌륭한 작품이라 생각된다. 미국의 트럼프가 보여준 갈라치기는 민주주의의 훼손과 미국 사회의 분열로 나타났으며,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90만명이 사망하는 참사로 이어졌다. 트럼프는 코로나19 속에서 사망자가 급등하는 가운데에서도 중국 혐오로 점철된 갈라치기에 몰두하였으며, 그 결과 21세기 유례없는 인종차별이 미국 내에 성행하고 있다.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부정하고, 개발과 환경을 갈라치기 하며, 지구온난화와 환경파괴를 가속화 시켰다. 폭도들이 국회의사당에 총을 들고 난입하여 난동을 피우는데도, 트럼프는 그들을 응원하였다. 민주주의의 상징인 국회는 그렇게 폭도들에게 점거되었다.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았던 미국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대통령 한 사람이 가져온 역사의 후퇴를 정상화 하는 것은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과연 이러한 갈라치기의 정치로부터 자유로운가? 과연 우리 자신은 어떠한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가?

 

3월 9일 여러분의 손에 달렸다, 통합을 선택할지, 갈라치기를 선택할지...

 

| 정종원(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 부천YMC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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