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왕진하는 의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별나라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 같았다. 마치, 40~50년 전의 세상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착각에 빠졌다. 아직도 우리나라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의술은 인술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을 살리는 기술이라는 뜻이다. 10년간 800회 넘게 진료를 다니는 그에게 산간마을 슈바이처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한국수자원공사의 도움으로 간호사와 코디네이터와 함께 세 명이 한 팀을 이뤄 두메산골 마을을 찾는 그의 모습에는 영락없는 슈바이처의 성스러움이 스며있었다. 의료장비를 챙겨 든 모습조차 해맑고 기쁨이 가득했다.

배를 타고 소양강댐 건설로 강에 갇혀 섬이 된 작은 마을을 찾는 모습은 평화의 사도처럼 느껴졌다. 한 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복약 처방을 내리는 데까지는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하루에 네 명 정도의 환자만을 진료하는 것도 놀라웠다. 의사와 눈 맞춤 할 시간도 없이 끝나는, 우리가 마주한 의료 현실과도 너무나 달랐다. 환자 한 명당 진료 시간이 길어야 오 분 내외라는 뉴스를 보아왔는데,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에 봄눈 녹듯 마음이 푸근했다. 그저 놀랍고 감사할 뿐이었다.

다큐멘터리에서 소개한 양창모원장은 왕진하며 사랑을 실천한다. 강원도 내 3,000명의 의사 중에 왕진하는 의사는 세 명뿐이라고 한다. 의과대학에서 왕진 의료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돈을 따르는 물질만능주의 세태와는 동떨어진 의사였다. 의술로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사랑의 천사임이 분명했다. 오죽했으면, 그의 환자였던 한 분은 항상 그의 사진을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일했던 의료협동조합에서 수술비를 모금하여 치료해주었던 환자라고 했다. 애초부터 따뜻한 마음 바탕을 타고났을까, 사람을 살리는 진정한 의사였다.

 

 

왕진팀이 오면 진료가 끝난 뒤에 환자나 보호자가 커피를 내놓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환자 대부분은 혼자 살거나 나이 많은 어르신이라고 한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는 진료 시간을 통해서 어르신들의 병을 단순히 진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돌보기까지 하면서 묵묵히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그가명의는 환자의 삶에 가깝게 있는 의사, 좋은 이웃이 되면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다.”라고 했던 말이 천둥처럼 뇌리에 각인되었다.

1997, 친정엄마가 식도암으로 일 년 정도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칠순에 발견하여 고령으로 수술조차 할 수 없었다. 진통제와 영양제를 투약하며 통증이 심할 때면 119구급차로 응급실을 오가며 고통스러워하셨다. 친정 근처의 가정의학과 의원 원장님께서 처음으로 진단하셨고 仁術을 베푸셨다. 통증이 심해지고 약으로 다스려지지 않을 때면 원장님이 간호사와 다녀가셨다. 엄마의 상태를 살피시고 진통제를 주사하셨다. 이십오 년이 지난 지금, 친정엄마를 돌봐주시던 의사 선생님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병원 이름과 선생님의 성함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방송 덕분에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그 의사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생각났다.

보건복지부는 2019년부터왕진 수가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의사가 거동이 불편하여 의료 기관을 방문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환자를 대상으로 왕진하는 제도이다. 집 밖을 나서면 건물마다 병원과 약국이 무수히 많다. 소문난 일부 병원의 경우, 몇 개월 전에 진료를 예약하고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진찰 시간은 겨우 이삼 분 안에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사와 눈 맞춤도 못 하고 마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것은 질병이지만, 왕진에서 마주하는 것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던 산간마을 슈바이처의 얼굴이 천사처럼 빛났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의사가 있지만 왕진하는 의사는 드물다. 왕진 가방을 들고 오지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왕진 의사의 모습이 의료계의 빛이 되길 소망해본다. 춘천의 양창모 산간마을 슈바이처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 조열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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