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까락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운명적인 두 남녀의 사랑을 그린 ‘소년, 소녀를 만나다(1984)’, ‘나쁜 피(1986)’, ‘퐁네프의 연인들(1994) 등 초기작 3편을 만날 수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강원도 최초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인 강릉독립예술극장에서 19일부터 23일까지 5일간 프랑스 영화계의 거장 레오 까락스 감독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레오카락스 감독 작품 “소년 소녀를 만나다 (Boy Meets Girl, 1984)”을 1995년에 본 것 같다. 우울한 사랑이야기 정도로 기억난다. 사랑의 공허함과 절망을 시적이고도 감각적인 영상으로 표현한 레오 카락스의 데뷔작품이다. 어긋난 사랑의 공허함과 절망을 시적이고도 감각적인 영상으로 표현하여 '제2의 고다르'라는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사랑의 고통을 나누지만 두 사람을 더욱 공허하게 만들었다.
 
사랑과 예술은 기쁨, 환희도 있지만 우울하게 하고 공허하게도 한다. 미치도록 사랑을 하지만, 미치도록 그림을 그리지만 만족과 행복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을 느낀 예술인들이 더러 있다. 아니 다수일 수도 있다. 2015년 양띠 해를 맞아 희망을 품고 뛰어보겠다고 숨 고르기를 한 것 같은데 벌써 1월 중순이다. 허무와 공허함이 밀려온다. “소년(최주철) 소녀(임평예)을 만나다.” 라는 영화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소년, 소녀의 사랑 이야기를 말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허무한 소년이 공허한 소녀의 화실로 일방적으로 찾아갔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다. 그림 그리면서 공허함을 느낄 작가와 티타임을 가지면서 세상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김문덕 교수님과 함께 임평예 화실을 찾았다.
작가들은 다들 화실을 방문하면 누추하다고 한다. 작가의 화실은 누추한 게 정상 아닌가? 잘 나가는 작가의 화실은 다를 줄 모르겠지만 창작의 방, 화실이 화려하면 그게 더 이상하다.
 
다방 커피를 내놓았다. 임평예 작가는 다소곳하다. 수다쟁이도 아니고 표현 욕구가 강하게 생긴 것 같지도 않다. 이미지가 그렇다는 것이다. 임평예 작가가 붓을 잡은 이유를 물어 보지 못했지만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뜨거운 사랑 뒤에는 말 못하는 로맨스가 있듯이 붓을 놓지 못하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각양각색이다.
 
14년 전 도록을 펼쳐보니 임평예 작가를 알 수 있는 글이 있었다. 강선구(한국화가)의 글이다. “인천에 거주한 서양화가 박치성 작가에게 그림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나이로만 보면 만학의 화업을 하고 있는 가정주부로서 별도의 개인 작업 공간까지 갖추고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은 면모를 엿볼 수도 있다.” 이 글에서 임작가의 열정과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강선구(한국화가)는 “ ‘무엇을 어떻게 왜 그릴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 속에서 진정 의미 있는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기를 바랍니다” 메시지를 남겼다. 14년 전 글이다. 임평예 작가는 강선구 화가의 메시지를 가슴에 담고 작품활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13년 전 첫 전시회에서 귀한 말을 남겨 주신 선배를 고마워하고 그리워할 것 같다. 첫 전시회가 얼마나 두려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첫날밤처럼 떨렸을 것이다. 아니다. 떨렸어도 행복했을 수도 있다. 다음에 물어봐야겠다.
 
임평예 작가의 2006, 2번째 전시회에서 이진숙 미술평론가는 “임평예 작가는 나무의 이미지를 반복함으로써 위안의 대상이자 경외의 대상인 자연을 반복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그가 그리는 것은 나무의 초상이 아니라 포괄적인 자연의 이미지이다.” 라며 “이번 전시에 출품된 그의 작품들을 2001년 첫 개인전에서 보여주었던 작품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첫 개인전 작품들이 산뜻하게 디자인된 느낌으로 모든 것을 명료하게 표현했다면, 이번 두 번째 개인전 작품들에서 나무들은 구체적인 얼굴을 지워버리고 등장을 한다.”고 평했다.
 
 
나무를 주제로 한 진짜 이유를 언젠가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평론가의 글을 읽다 보면 알듯 모를 듯 너무 어렵다. 일반 관람객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평론은 없을까. 평론가를 탓하기보다는 무지(無知)를 탓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관람객을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 평론가들이 쉽게 설명해주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드러내 본다.
 
임평예 작가를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많을 것 같다. 2015년 6월 소로로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갖는다. 수다를 떨면서 작가의 작품세계를 알아가는 것도 큰 재미로 다가올 것 같다.
 
임평예 작가<작업 노트>를 훔쳐본다.
“우리는 날마다 죽으면서 또 다시 태어난다. 얼어붙은 대지에 다시 봄이 움트는 것처럼 나의 작업도 원래의 사물을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지워가며 기억과 정서로 윤색된 자연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이런 작업을 통해 순수하게 자연을 사유하고 느낌으로써 자연과 합일하고 싶다.”
 
소년(최주철)은 소녀(임평예)의 만남은 행복했다. 진한 사랑에 의한 절망과 공허는 아니지만 예술로 인한 절망과 공허를 공유할 수 있어 소년, 소녀의 만남은 계속되지 않을까. 화실을 나올 때 임작가는 "다음에는 예쁜 옷 입고 있을께요"라며 작업복을 부끄러워했다. 사실 작업복이 더 예뻐 보인다. 작업복에서 열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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