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교 이야기

산학교는 학기가 시작되면 아이들과 같이 결정하는 것들이 있다. 함께 지낼 약속도 정하고, 자리도 정하고, 당장 해야 할 청소 당번과 직접 밥을 퍼서 배식을 하니 누가 밥을 퍼올 건지, 누가 밥상을 닦을 건지 그 역할들도 정해야 한다. 그중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정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반 이름이다.

산학교는 반 이름을 아이들이 짓는다. 1학년 1, 2학년 3반 이렇게 숫자로 반을 부르지 않고, 부모님이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듯, 회사를 창업한 구성원들이 회사 이름을 짓듯, 1년 동안 3, 4학년을 대표해서 불리게 될 반 이름을 스스로 짓는다. 예전 어떤 반은 목공을 주제학습으로 해서 이름을 나무동구반으로 지었고, 실과 바늘을 엮어내는 직조를 주제학습으로 해서 이름을 바늘반으로 짓기도 했다. 또 어떤 반은 한번 들으면 까먹기도 힘든 양념반 후라이드반이라고 지어서 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충격적이었다. 또 작년 모올반은 모두가 올 수 있는 반을 줄여 만든 이름이었는데, 정말 이름처럼 모올반 교실엔 여러 곤충과 다양한 학년이 모여 함께 지냈다.

 

 

이름은 힘이 있다. 이름을 통해 각 반의 특색이 드러나고, 불리는 대로 만들어져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반 이름을 지을 때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배우고 연습해야 할 것들이 이름 안에 잘 담아지길 바라는 마음이라 꽤나 진지하다.

아이들에게 우리 반의 1년 목표를 알려주었다. ‘편안한 마음’, ‘즐거운 추억’, ‘쌓이는 습관이 세 가지가 올해 반의 목표이다. 언제 어디서나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용기 있게 들여다보고,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표현들이 무거운 면담이 아닌 언제나 자연스럽고 가볍게 수다같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편안한 마음이 첫 번째 목표이다. ‘즐거운 추억3, 4학년들이 이제 막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을 하는 1, 2학년 시기를 지나 다양한 세상과 사람을 만나 일상 속 작은 모험들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이들이 많이 도전하고, 다양하게 경험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쌓이는 습관은 책 읽기와 글쓰기를 매일매일 꾸준히 하고 싶어 목표로 넣었다.

 

 

아이들에게 반 운영 방향성에 대한 보고를 마치고, 이 목표가 잘 녹아든 이름을 정해달라고 부탁했다. 편안함을 상징하는 침대 브랜드 에이스부터, 별자리의 이름들, 등등 이름이 후보로 나왔다. 너무 많아서 다 기억이 안 나는데, 대략 20개의 후보가 나온 것 같다. 두 번의 긴 회의를 마치고 결국 3, 4학년 반은 뚱이반이 됐다. 뚱이, 스폰지밥의 뚱이. 에이스와 박빙을 이루다 결국 뚱이반이 됐다. 나는 스폰지밥을 잘 보지 못해 뚱이가 어떤 캐릭터인지 몰랐는데,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친구라 반 이름이 마음에 든다. 아이들도 뚱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니면 뚱이반이 된 게 자기들이 생각해도 웃겼는지 자꾸 피식피식 웃었다. 나도 이제부터 아이들을 부를 때 뚱이반 모여라~”하면 운동장과 작은마당 곳곳에 있던 아이들이 샤샤삭 반으로 모일 생각을 하니 웃기기도 했다. 왠지 모르게 정감 가고 귀엽다.

 

 

반 이름을 뚱이로 정하고, 나는 뚱이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려면 나도 스폰지밥 세계관을 익혀야 했기 때문이다. 뚱이에 대해 알면 알수록 아이들이 어떤 이유로 우리 반 이름을 뚱이로 지었는지 알 수 있었다. 뚱이는 어떤 때는 바보 같고 아무 생각 없이 둔해 보이기도 해서 스폰지밥에게 당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늘 스폰지밥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좋은 것을 주려고 한다. 뚱이가 스폰지밥에게 하는 말을 들으면 어른인 나도 마음이 찡해진다. 나도 누군가를 이렇게 계산 없이 좋아하고 믿어주었던 적이 있었을까 하는 마음도 든다. 내가 아이들에게 알려준 편안한 마음’, ‘즐거운 추억’, ‘쌓이는 습관도 좋지만, 뚱이를 보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속상한 친구 옆에 있어 주는 것, 친구가 실수해도 넘어가 주는 것, 친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주는 마음이 먼저였다. 우리반 이름이 뚱이반이어서 너무 좋다. 역시 아이들의 안목은 탁월하다.

 

| 노을(산학교 생활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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