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춘당』 / 고정순 글 · 그림 / 길벗어린이

얼마 전 작은 모임에서 책 3권을 추천하는 시간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를 만든 인생 책 3권이 있기에 그 책을 소개하려고 했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은 만화 몇 권을 소개했다. 그중에 잔잔한 재미와 함께 감동을 선사해준 초년의 맛이라는 만화가 있다. ‘초년이라는 말 그대로 어떤 과정의 처음 시기로, 풋내나고 어설픈 시절 깊이 가슴에 박혀버린 맛을 그린 만화다. 미각을 담당하는 혀의 맛봉오리를 통해 대뇌가 기억하는 맛이 아니라 가슴으로 담아냈기에 음식 앞에 서면 언제나 애틋하고 아련한 추억을 먹게 되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들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모른다. 장담컨대 음식 앞에서 초년의 맛을 본 사람과 안 본 사람이 구별된다. 앞에 차려진 음식을 통해 맛과 배부름을 넘어 헛헛한 마음까지도 채워지는 것을 경험하고 감사하리라.

 

 

옥춘당, 예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말이다. 옛날 어느 시절에 사람들이 만나던 장소가 아닐까 생각했다. 다정하게 손을 잡은 표지 그림을 보니 아마도 주인공들이 첫 만남을 한 추억의 찻집이지 싶었다. 그러나 표지 뒷면 제사상에서 가장 예뻤던 사탕, 옥춘당. 김순임 씨가 천천히 녹여 먹던 사탕이라는 글을 보고 옥춘당이 사탕이라는 것을 알았다. 비록 이름은 낯설었지만 옥춘당은 사실 어린 시절부터 익히 본 사탕이다. 건어물 가게에서, 특별히 북어나 약과, 산자 등과 같은 제수용품들 사이에 진열된 것을 늘 봤다. 화려한 색깔에 동그란 자태를 자랑하는 옥춘당에 눈길이 가지만 제사를 지내지 않는 우리 집과는 상관이 없는 물건이었다. 그러니 이름을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맛은 알고 있다. 반백 년 사는 동안 딱 한 번 먹어 봤다. 40년 전인가? 아마도 초등학교 5, 6학년쯤으로 기억한다. 기찻길 옆에 살고 껑충하게 키가 큰 친구 집에 갔는데 그 녀석이 제사를 지냈다고 하면서 한 개 건네줬었다. 까끌까끌하면서도 달았던 그 사탕이 바로 옥춘당이다.

 

 

전쟁고아였던 두 남녀가 서로를 의지하고 낯선 지역을 고향 삼아 살아간다. 삼 남매를 낳고 또 그들이 장성하여 손주까지 두었다. 할머니의 휴지 사용법은 오줌은 한 칸, 똥은 두 칸만이다. 그 잔소리에도 언제나 웃으시는 유쾌한 할아버지. 손녀의 눈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정말 다정하고 유쾌하게 사신다. 손녀는 말수가 적고 낯가림이 있는 할머니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며 옥춘당을 입에 넣어 주시는 할아버지 모습을 기억한다. 할머니 순임 씨 곁에 영원토록 있을 것 같은 할아버지가 폐암으로 먼저 떠나시고, 할머니는 점차 말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서서히 진행되는 치매. 가족들의 따뜻한 돌봄도 할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할머니, 우리 순임 씨는 옥춘당을 입에 넣어 주던 할아버지의 손과 자신을 부르던 목소리가 그리웠다. 조용한 치매를 앓던 할머니는 더 이상 가족들이 돌볼 수 없어 요양원으로 들어가신다. 금산요양원 13번 침대가 우리 순임 씨, 할머니의 새로운 보금자리다. 10년 후 어느 날 손에 옥춘당을 들고 순임 씨를 찾아온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두 분이 함께 걸어가신다.

요양원에서 유난히 조용하셨던 할머니는 종이에 늘 동그라미를 그리셨고, 동그라미를 그리다 지치면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셨다 한다. 할머니가 10년간의 요양원 생활을 마치고 남긴 220mm 실내화에는 옥춘당의 이쁜 색이 칠해져 있었다. 옥춘당은 할머니를 향한 할아버지의 사랑이다. 할머니에게 옥춘당은 할아버지 그 자체다. 그리고 손녀에게 옥춘당은 그리운 할머니, 할아버지이다. 작은 사탕 하나가 3대를 가족으로, 그리움으로, 사랑으로 이어준다. 하여 옥춘당은 노년의 맛, 가족이다.

 

| 남태일(언덕위광장 작은도서관 광장지기)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