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지축을 뒤흔드는 타악기 소리가 순식간에 친숙함으로 다가온다. 어우러진 울림은 무한 해체되어 객석의 숨소리를 가쁘게 몰아간다. 쏟아내는 추임새는 젊은 청춘을 불사르며 민족의 정신으로 곧추세운다. 저들의 정열은 서서히 공중 부양을 하고 내 오감의 세포들은 박자를 따라 흔들리니 드러나는 동작을 감출 수가 없다. 혼자 찾은 공연장이지만 <김덕수 사물놀이>에 빠져드는 나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의 가락에 동요하는 관객들이 마음 맞는 동료이고 친구들이다. 감성의 최대치를 연기하는 출연자인 양 저들의 전율에 휘말려 간다. 카타르시스다.

어릴 적 동네에 약 팔러 오던 사당패들의 공연은 화려한 무대와 분장으로 사람들의 넋을 나가게 했다. 밤마다 스토리가 달랐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심청전이면 효녀 심청이가 되어서 울었고, 춘향전이면 열녀 춘향이가 되어 혀를 차며 약을 샀다. 수군거리는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저들은 떠돌이라 우리보다 더 가난해서 슬픈 사람들이란다. 저들의 속사정을 알 리가 없는데도 비 오는 날이면 자갈밭에 처진 젖은 국방색 천막이 어린 나를 슬프게 했다. 저들의 목쉰 노랫가락에 울음을 묻혀 뿌리는 듯했다.

지금 이 순간 관객을 휘몰아가는 저들은 국악을 전공한 20대의 건장한 젊은이들이다. 앳된 얼굴에 어깨춤으로 흥을 돋우는 모습이 신선하고 사려 깊어 보인다. 약을 팔러 이 동네 저 동네로 천막을 옮겨 가며 공연을 하던 가난하고 초라한 사당패들의 모습이 아니다. 우리 가락을 온몸으로 느끼며 소름 돋는 울림을 예술로 승화시켜, 민족의 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자랑스러운 문화 전령사들이다.

 

사진제공 [군산시]
사진제공 [군산시]

 

젊은 상쇠꾼의 꽹과리 잡은 손의 리듬을 따라가 본다. 꽹과리를 잡은 손은 내가 찾던 갈망의 손짓은 아닌 것 같다. 아버지의 거친 손은 꽹과리 안에서 무한히 자유로웠다. 손의 리듬은 잔잔한 미소와 꾹 다문 입술을 대신해 굴곡 많은 인생의 편린을 음률로 풀어내던 춤사위였다. 아버지의 삶은 어느 것 하나 예술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마당을 쓰는 모습도 먹을 가는 모습도 그러했다. 송음의 호만큼이나 청아한 목소리로 시조를 읊으시던 아버지. 일제 징용에서 광복을 맞아 풀려나기는 했으나, 신식 공부깨나 한 사람이 살던 우리 동네는 공산주의 이론에 휘말려 들었다. 공산주의에 동조했던 사람들에게 체포령이 내려지고 아버지를 향한 총구는 죽음의 문턱을 수없이 넘나들게 했다. 마산 형무소에서 갖은 고초를 당한 탓에 평생 약골로 사셨지만, 선비다운 풍모와 선한 인품은 저들의 몽둥이로도 주저앉힐 수 없었다.

감시의 대상인 어머니가 딸아이를 업고 날마다 경찰서에 불러 다니며 문초를 당하는 동안, 숨어 사는 아버지의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 하신 분은 큰어머니시다. 밤마다 어둠을 뚫고 뒷산 밭 기슭에 파놓은 서너 개의 구덩이에 숨어있는 아버지를 위해 가슴을 졸이며 밥 광주리를 이고 나르셨다 한다. 그때 큰어머니께 진 빚은 아버지의 평생 빚이 되었다.

어머니를 따라 오일장에 가는 날이면 니 아부지 덕에 내가 살아났니라라며 과자를 사주시던 할아버지가 계셨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주이던 그분이 감옥살이할 때 아버지가 간수 몰래 먹을 것을 갖다준 덕에 연명할 수 있었다고. 그래선지 아버지 성함은 오래도록 면 단위 어른들께 덕스런 사람으로 회자되곤 했다. 우리들이 자랐을 때는 돋우어진 구덩이마다 부추가 심겨져 있었다. 그 남새밭을 가꾸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버지는 시대의 변화에 휘말리며 당신의 꿈을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쇠하고 말았다.

젊은 놀이꾼이 두들기는 장구채의 현란함과 잡티 없는 울림에 빠져든다. 앉아서 연주하는 저들 속으로 장구를 맨 큰어머니의 움직임이 겹쳐진다. 한복 치맛자락을 끌어 올려 비스듬한 장구에 각을 이루고, 소맷자락 오르내리는 가는 장구채로 밤이 두려웠던 지난날을 두드리며 이제야 살아난 듯 사푼사푼 돌아간다. 어린 우리들은 재미로 흥겨웠지만 풀어놓는 애환은 그것으로 보상이 되었을 리가 없다. 그 틈에 숨죽인 어머니의 인고와 서러운 눈물은 또 어이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귀천은 멋졌다. 병원에서 목사인 아들의 인도를 받으며 이 땅에서의 모든 미련을 접고, 이제는 준비가 되었으니 집에 가자시고는 고향 집에서 평안한 모습으로 소천 하셨다. 남은 우리는 어머니의 숨죽인 인고의 눈물도 큰어머니의 두려운 애환도 녹일 수 있는 처소를 위해 기도를 쌓는다.

삶의 고통을 알 리 없는 사물놀이 청년들의 열정은 공연장을 환호로 불사른다. 저들이 쏟아내는 열정 사이로 내 눈은 이미 젖어 버렸다. 눈물을 훔치며 인생이 밝은 저들에게 큰 박수를 오랫동안 보냈다. 관객을 끌어들인 무대에선 덩더꿍 장단으로 어우러져 피날레를 장식한다. 얼른 일어서지지가 않는다. 정갈한 한복의 밀풀 내음을 풍기며 꽹과리를 잡은 아버지의 손짓이 보고 싶다. 등을 떠미는 듯한 아버지의 배웅은 드러내지 않던 사랑을 배태케 한다. 나는 이제 이 땅에서 풀어내지 못한 아버지의 인생에 서투른 펜으로 갈망채를 엮어 드려야 할 것 같다.

 

| 최숙미(한국수필가협회 이사, 부천신인문학상운영위원)

 

최숙미 수필가. 2010년 계간《에세이문예》 봄호 수필 등단2018년 《한국소설》 2월호 소설 등단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 한국본격문학가협회 중부지부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창작산맥 자문위원, 동심문학회 회원, 부천신인문학상운영위원풀꽃수필문학상, 한국에세이문학상, 문학신문사 수필 작품상, 원종린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수필집 『칼 가는 남자』 『까치울역입니다』소설집 『데이지꽃 면사포』 정계순 산문집 『전전반측』 엮음sukmi57@hnamail.net​​​​​​
최숙미 수필가. 2010년 계간《에세이문예》 봄호 수필 등단2018년 《한국소설》 2월호 소설 등단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 한국본격문학가협회 중부지부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창작산맥 자문위원, 동심문학회 회원, 부천신인문학상운영위원풀꽃수필문학상, 한국에세이문학상, 문학신문사 수필 작품상, 원종린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수필집 『칼 가는 남자』 『까치울역입니다』소설집 『데이지꽃 면사포』 정계순 산문집 『전전반측』 엮음sukmi57@hna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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