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성 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우리가 어떠한 아픔이나 슬픔, 고통 같은 것을 겪게 되면 그 힘든 일을 가장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을 기대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나의 어려운 일을 외면하게 된다면 그로 인해 더욱더 견디기 힘들게 될 수 있다.

나의 아픔을 함께하리라 믿었던 그 사람으로부터 그러한 외면을 받게 된다면 그 사람에 대한 마음과 애정도 식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 애프터 워(제임스 켄트 감독, 2019년 개봉)는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후 전쟁으로 소중한 아이를 잃은 한 여인의 상처를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런던 폭격으로 아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레이첼(키이라 나이틀리)은 전쟁이 끝나자 런던을 떠나 남편이 있는 독일로 온다. 그녀의 남편인 루이스는 육군 대령으로 전후 함부르크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런던에서 아들에 대한 아픔을 떨쳐내기 위해 남편이 있는 독일로 왔지만, 남편인 루이스는 따스한 사람이기는 하나, 아들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은 채, 레이첼의 아픔을 애써 외면하곤 했다. 남편의 위로를 기대했던 레이첼은 그러한 남편의 태도에 실망하고 외로움을 느낀다.

아이를 잃은 자신의 곁에 머무는 시간도 별로 없이 남편은 계속 집 밖으로만 나돌고 자신의 임무에만 충실할 뿐이었다. 그러한 남편이 이제는 너무나 서운했고, 시간이 갈수록 남편에 대해 절망하기에 이른다.

결국 레이첼은 혼자 힘들어하고 울다 지쳐 남편에게 당신은 나처럼 슬픈 것 같지 않다고, 나처럼 아픈 것 같지 않다고 하며 남편을 원망한다.

극심한 고립감에 빠진 레이첼은 자신을 이해해 주는 독일 남자인 루베르트와 사랑에 빠져 불륜에 이르게 되고, 남편을 떠나 그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한다.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영화 『애프터 워(The Aftermath)』 포스터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영화 『애프터 워(The Aftermath)』 포스터

 

레이첼이 짐을 싸서 떠나는 순간, 남편인 루이스는 레이첼과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그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마음을 고백한다. 레이첼을 보면 죽은 아들이 자꾸 생각나고, 레이첼을 껴안으면 레이첼에게서 죽은 아들의 냄새가 나고, 레이첼을 만지면 죽은 아들을 만지는 것 같았다고. 자신은 아내인 레이첼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 아내를 볼 때마다 사랑했던 죽은 아들 생각으로 도저히 어쩔 수 없었다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마지막으로 하고 레이첼을 떠나보낸다.

독일인 루베르트와 기차역으로 간 레이첼은 기차가 떠나려는 순간 깨닫는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길 바랐고, 남편으로 위로를 받기를 원했던 레이첼은 자신 또한 남편의 속마음을 전혀 몰랐고, 죽은 아들의 아픔을 가지고 있었던 남편을 한 번도 위로해 주지 않았음을. 전쟁터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으며 죽음이라는 것을 매일 마주하면서도 가족에 대한 사랑을 깊이 간직한 채 혹시나 레이첼에게 더 커다란 상처로 남을까 봐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속 깊이 감추고만 있었던 남편의 내면세계를 레이첼은 그제서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레이첼은 루베르트와 함께 떠나려는 기차를 타려던 순간 루베르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시 남편인 루이스에게 돌아간다.

레이첼은 왜 남편인 루이스를 믿지 않았던 것일까? 자신의 아픔을 위로받기 원하면서도 그녀는 왜 같은 아들의 아버지인 루이스의 아픔과 상처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루이스는 레이첼의 아픔에 대해 왜 용기를 가지고 대해 주지 못했던 것일까?

자신의 입장보다도 상대가 어떠한 처지에 있는 것인지, 한 번만 더 깊게 생각해 보았다면 아마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서로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레이첼과 루이스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만약 그것마저 없었다면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영원히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 정태성(한신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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