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의 ‘명화로 보는 색채 심리’ 14

앙리 마티스와 그의 작품 '빨간 물고기와 고양이'
앙리 마티스와 그의 작품 '빨간 물고기와 고양이'

 

우연한 계기로 인생이 180도 뒤바뀐 사람이 있다. 그는 촉망받던 변호사를 그만두고 야수파(Fauvism)라는 색채 혁명을 이끌었다. 프랑스 화가인 앙리 마티스(Henry Matisse, 1869-1964)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림은 편안하고 행복한 휴식처 같아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그의 예술철학은 레몬 옐로 색깔 가득한 작품에 오롯이 담겨있다.

마티스는 프랑스의 부유한 곡물상 아들로 태어났다. 변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파리의 법률사무소에서 행정관으로 일했다. 맹장염을 수술하고 합병증까지 겹쳐서 요양하는 동안 어머니가 심심풀이로 그림을 그려보라며 물감을 선물했다. 그림을 그릴 때면 파라다이스에 있는 것 같이 행복했다. 퇴원 후 법률사무소에서 점심시간을 아껴가며 그렸고, 퇴근하자마자 화실로 달려가서 붓을 잡았다. 미래가 불확실해도 화가의 길을 가기로 결단하자 아버지는 노발대발하였지만,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22세에 파리의 국립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다. 후기인상파 화가들의 색채와 형태를 연구하기 위해 빚을 내서 고갱과 세잔의 진품을 사들였다. 1905년 파리의 살롱 도통전시회에 아내를 모델로 그린 작품 모자를 쓴 여인을 출품하자, 물감을 내동댕이친 것 같은 거친 색채에 충격을 받은 미술계가 들끓었다. 평론가 루이 보셀은 미술 평론잡지 <질 블라스> 지에 마치 야수(野獸)에 둘러싸인 *다비드상 같다.”고 했다. 그의 작품을 야수에 비유하며 조롱하는 비평문을 실었다.

 

앙리 마티스, '삶의 기쁨', 176.5X240.7cm, 캔버스에 유채, 1905~1906, 반스재단, 미국
앙리 마티스, '삶의 기쁨', 176.5X240.7cm, 캔버스에 유채, 1905~1906, 반스재단, 미국

 

그의 작품 삶의 기쁨(Joy of Life), 1905~1906은 야수파를 대표하는 유화 작품이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의 시 여행으로의 초대에서 영감을 받았다. 전라의 고혹적인 여인들이 둥근 원을 그리며 평화롭게 춤추는 모습을 그렸는데, 눈부신 레몬 옐로와 싱그러운 녹색과 화사한 주황색의 향연이 펼쳐진 에덴동산에서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평화로운 모습을 담았다. 그는 내가 꿈꾸는 것은 균형 잡힌 예술이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며 휴식을 주는 안락의자와 같다.”라고 말했다.

마티스와 피카소는 20세기 초 유럽의 미술계를 이끌던 쌍두마차였다. 당시 파리의 미술계를 좌지우지하던 미국인 컬렉터 거트루드 스타인은 재능 있는 젊은 예술가를 후원하고 토론의 자리를 마련했다. 그는 야수파의 수장인 마티스를 주목하고, 작품 삶의 기쁨을 사들여 눈에 잘 띄는 식당에 걸어두었다. 마티스가 든든한 후원자의 도움으로 미술계의 왕좌에 있을 당시 스페인 출신의 파블로 피카소(1881-973)는 떠오르는 신인 화가였다.

피카소는 거트루드의 저택에서 삶의 기쁨을 보고 경쟁심을 불태웠다. 거트루드의 초상화를 무료로 그려주며 그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고, 마티스가 전시회를 열면 그보다 더 크고 더 많은 작품을 전시했다. 1907년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로 입체파의 탄생을 알리며 파란을 일으켜 거트루드의 관심을 독차지하였고, 미술계의 1인 자로 우뚝 올라섰다.

 

앙리 마티스, '모자를 쓴 여인', 80.65X59.69cm, 캔버스에 유채, 1905,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앙리 마티스, '모자를 쓴 여인', 80.65X59.69cm, 캔버스에 유채, 1905,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앙리 마티스, '왕의 슬픔', 292X386cm, , 과슈를 칠한 색종이 컷아웃, 퐁피두센터, 프랑스
앙리 마티스, '왕의 슬픔', 292X386cm, , 과슈를 칠한 색종이 컷아웃, 퐁피두센터, 프랑스

 

마티스와 피카소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달랐다. 냉철한 마티스는 항상 정장 차림으로 그림을 그렸고 여성 모델을 직업적으로 대했지만, 정열적인 피카소는 편한 옷을 입고 작업하며 여성 모델들과 염문을 뿌렸다. 겨우 4~5년 정도만 미술공부를 했던 마티스는 편안하고 장식적인 그림을 그렸고, 어릴 때부터 미술천재였던 피카소는 관능적이고 정치적인 작품으로 늘 화제를 몰고 다녔다. 두 거장은 서로를 자극하며 20세기 50년 동안 유럽 미술계에 풍성한 발전을 가져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파리를 함락한 나치는 퇴폐적인 예술가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마티스는 나치에게 모든 작품을 몰수당하였음에도 행복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70세에 이혼을 하고, 1941년에는 십이지장암 수술과 합병증으로 13년간 병상에 누워있었다. 심한 관절염으로 붓조차 들 수 없자, 조수가 막대기 끝에 달린 붓에 물감을 묻혀주면 긴 막대기를 움직여서 벽에 그림을 그렸다. 의사가 유화물감 성분이 폐를 악화시킨다.”라고 하자 물감 대신 연필로 드로잉(drawing, 소묘)을 그렸다. 휠체어에 앉아서 가위로 색종이를 오려내면 조수들이 캔버스에 붙이는 컷아웃(cut-out)’ 작품에서도 기쁨과 행복을 그렸으나 1954년 심장마비로 눈을 감았다.

 

침상에 누워 긴막대기로 벽화를 그리는 앙리 마티스
침상에 누워 긴막대기로 벽화를 그리는 앙리 마티스

 

15세기 콜럼버스에 의해 남미에서 유럽으로 전해진 레몬은 당시 값비싼 약재이고 사치품이었다. 이전에는 수선화에서 추출한 혼합물로 레몬 옐로를 만들었으나 1911년 독일 화학자가 합성 안료를 개발했다.

레몬이 지닌 성분은 노화를 억제하고 혈액 순환을 개선하며 피로 해소에 좋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 뜨거운 레몬차는 몸을 회복시켜주며 진취적으로 만들어준다. 평화와 휴식과 기쁨을 상징하며, 따뜻하고 낙관적이며 긍정적인 생각을 주는 색깔이다. 레몬 옐로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아실현에 의욕적인 성향이 있다. 부정적인 의미도 있는데, ‘삶이 너에게 레몬을 줄 때(when life gives you lemons.)’라는 영어 관용구에서 시련을 레몬으로 비유한다. ‘쓸모없는 물건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여성멍청이를 뜻한다. 20세기 말 일본에서 레몬은 어린 여성(롤리타)을 지칭하는 은어였다. ‘크림 레몬 시리즈’, ‘레몬 피플등의 작품에서 어린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창작물이나 집단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했다.

레몬 옐로를 좋아했던 지인은 틱 현상이 심한 아이와 치매를 앓는 친정어머니까지 돌보았다. 증상이 심해 더는 돌볼 수 없어 요양원에 위탁하였으나 치료비가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작은 집으로 이사하며 살림을 줄였다. 부유하게 사는 동생은 병문안은커녕 치료비조차 보태지 않았다. 필자가 그녀에게 엽서 크기의 레몬 옐로 색깔로 그린 그림을 선물했다. 힘들 때마다 보면서 용기 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몇 년 후 연락이 닿아 만났는데, 레몬 옐로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어머니는 여전히 병상에 계시지만 선물 받은 명화를 보면서 힘을 얻었다.”라며 밝은 표정이었다. 정품은 아니지만, 명품 가방을 늘 들고 다닌다며 행복해했다.

 

페라리 로고
페라리 로고

 

페라리(Ferrari)’는 이탈리아 명품 스포츠카의 대명사다. 로고에는 레몬 옐로 방패에 뛰어오르는 검은색 말을 그렸다. 1923, 엔초 페라리 회장은 라벤나에서 열린 자동차 경주대회에서 지인이 권유한 행운을 주는 말 그림을 로고에 넣고 자기 고향 모데나를 상징하는 카나리아 색을 바탕색으로 정했다. ‘프랜싱 호스(Prancing Horse, 뛰어오르는 말)’는 스포츠와 스피드를 상징한다. 로고를 바꾼 후 페라리는 번창했다. 2019년 우리나라 국가기술표준원은 익숙하지 않은 색깔의 이름을 개정하면서 카나리아 색을 레몬색으로 바꾸었다.

레몬 옐로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밝아진다. 마티스는 나치에게 모든 작품을 빼앗기고 건강이 무너지는 시련을 겪었지만, 그림은 편안하고 행복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지켜냈다. 세상살이에 지치고 힘들 때 푹신한 안락의자같이 편안한 레몬 옐로 색깔이 가득한 그림을 보며 잠시 쉬어 가기를 바란다. 봄날, 향긋한 레몬차 한 잔을 마시며 행복한 시간 갖기를 소망한다.

*다비드상 : 르네상스의 거장 도나텔로(Donatello)가 조각한 다비드상(David)’으로 당시 전시회에 참가한 화가들이 모방하여 만든 다비드상이 전시되어 있었다.

 

| 김애란(화가, 미술 심리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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