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교 이야기

산학교는 봄, 가을 두 차례 전체 학년이 들살이를 갑니다. (들살이의 뜻 : 비가 내리면 일을 못하고 잠을 잔다는 뜻에서 유래한 말. 들살이는 들에 천막을 쳐 놓고 휴양을 하는 생활을 일컫는 말로 캠핑을 대신 쓸 수 있는 우리말입니다) 올해 5, 6학년은 태안 해변길 5코스에서 시작해서 원산도까지 걸어갔습니다. 원산도에 도착해서는 해양쓰레기를 줍고 들살이 평가를 하는 일정이었습니다. 목표는 혼자서 생활을 꾸리고 맡은 역할을 챙기면서 자립하는 힘을 기르고, 서로 협력하며 안전하게 도보 들살이를 마치는 것입니다.

2주 전부터 아이들과 함께 들살이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먼저 3월부터 매주 금요일 도보 연습을 하며 도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체력 때문에 부담이 커 보였는데 도보 연습을 하면서 하루에 어느 정도는 걸을 수 있겠다는 가늠도 생기고 체력적인 부담도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지내는 45일 동안 지켜야 할 약속과 인솔, 기록, 일정, 살림, 의료, 하루 나눔 역할을 정하고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인솔은 걸어야 할 길을 지도를 보고 찾고 프린트해서 인솔 일정을 나누고 살림은 식사 모둠의 레시피를 받아 식재료를 구입하고 일자별로 포장하고 식사 때마다 필요한 식재료를 준비하였습니다. 의료는 사전 들살이 안전교육을 통해 물집이 잡히거나 근육통이 왔을 때, 가벼운 찰과상에 대한 치료법을 배우고 약품을 챙겼습니다. 일정과 기록, 하루 나눔은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순서를 정하는 회의를 진행하였습니다. 또한 식사 모둠을 정해 식단을 짜고 식단으로 정해진 요리는 주말에 모둠원들이 모여 연습을 하였습니다.

들살이 시작. 아이들은 도보에 대한 긴장감도 있지만 어쨌든 일상을 떠나 함께 45일을 지낸다는 기대감도 커 보였습니다. 교사들은 코로나 이후 첫 대중교통으로 가는 들살이라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지만 이렇게 일상이 조금씩 회복된다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태안 5코스가 시작하는 창기리 정류장에서 도보가 시작되었습니다. 5학년들이 걷는 데 어려움이 있으면 인솔하는 6학년 아이들이 어깨동무도 해주고 뒤처지는 친구를 기다려주기도 하고, 바다를 보며 쉼을 갖기도 하고, 살림이 나눠준 간식으로 잠깐 힘듦을 잊고, 해변길이지만 오름 내림이 반복되는 길을 걷었습니다. 도보가 끝나면 식사 당번을 제외하고 삼삼오오 놀이를 하거나 얘기를 나누거나 먼저 씻기도 하며 여유롭게 저녁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녁 9시 모여 하루 나눔을 진행하고 하루 이야기를 쓰고 내일 일정을 공유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렇게 45일의 들살이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산학교 5,6학년 봄 들살이 장면. 3박 4일 44킬로미터의 도보 일정을 안전하게 마무리했다.
산학교 5,6학년 봄 들살이 장면. 3박 4일 44킬로미터의 도보 일정을 안전하게 마무리했다.
산학교 5,6학년 봄 들살이 장면. 3박 4일 44킬로미터의 도보 일정을 안전하게 마무리했다.
산학교 5,6학년 봄 들살이 장면. 3박 4일 44킬로미터의 도보 일정을 안전하게 마무리했다.
산학교 5,6학년 봄 들살이 장면. 3박 4일 44킬로미터의 도보 일정을 안전하게 마무리했다.
산학교 5,6학년 봄 들살이 장면. 3박 4일 44킬로미터의 도보 일정을 안전하게 마무리했다.
산학교 5,6학년 봄 들살이 장면. 3박 4일 44킬로미터의 도보 일정을 안전하게 마무리했다.
산학교 5,6학년 봄 들살이 장면. 3박 4일 44킬로미터의 도보 일정을 안전하게 마무리했다.

 

들살이 목표로 다시 돌아가 보면(물론 목표는 결과이기보다는 과정의 의미가 더 큽니다.) 들살이 기간 동안 스스로 생활을 꾸리고 주어진 역할을 통해 일머리를 배우고 친구들과 소통하면서 큰 무리 없이 일상이 진행되었습니다. 처음 고학년 들살이를 경험한 교사로서 평소에 학교에서 했던 일상의 생활 기술들이 들살이 기간 동안 빛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3444킬로미터의 도보 일정을 안전하게 마무리하고 도보하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힘든 만큼 만족감이 높고 힘든 과정 속에서 친구들과 협력하며 함께 어울려 노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물론 갈등도 있고 힘들다는 투정도 있고 도보는 교사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기 위한 음모(!)이지 라는 질문도 들었지만, 도보는 하는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도보는 인생과 같구나.’ 힘들지만 즐거움도 있고 친구도 있고 해야 할 일도 있고 죽을 것 같은 순간도 있지만 모든 게 삶의 과정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이들도 올봄 진하게 인생을 맛본 것 같습니다.

 

| 이진희(징검다리, 산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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