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칼럼

며칠 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작년 부천시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에서 아파트 미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건강권 심층실태조사및 건강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만나 뵀던 한 아파트 미화 팀 반장님이셨다.

반장님 웬일이세요? 그렇잖아도 제가 전화 한 통 드리려 했는데.”

그래요? 국장님은 무슨 일로 전화하시려 했어요? 다른 게 아니고.”라면서 반장님이 전화하신 이유는 2019년부터 아파트 미화 팀과 용역을 맺은 업체가 최근 폐업을 했는데 4월 급여와 퇴직금을 못 받으셨다는 내용이었다. 한 달이 넘게 어쩔 줄 몰라 하시다가 작년에 비정규센터에서 건강프로그램 진행했던 것이 생각이나 전화를 하신 거였다.

진작에 전화하시지, 그러셨어요? 얼마나 황당하고 기가 막히셨어요. 잘 전화해 주셨고요, 저희 센터에 방문하셔서 노무사님에게 상담을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전화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전화를 끊고,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 일찍 미화 팀 몇 분이 센터에 방문하셨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한 손에는 음료수를, 한 손에는 따끈따끈한 쑥떡을 들고 반장님이 다시 센터에 찾아오셨다.

국장님. 제가 어제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빈손으로 와서, 퇴근길에 다시 들렀어요. 따뜻할 때 좀 드셔보세요.”라며 쑥떡과 음료수를 내미셨다.

아니 퇴근하시고 힘드실 텐데 댁에 가셔서 쉬시지 왜 이런 건 사 들고 오셨어요. 앞으로 절대 이런 거 사 오지 마세요. 언제든 그냥 오셔도 돼요. 아직 일도 해결이 안 됐는데. ”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내게 아니에요. 진짜 너무 막막했는데 그때 갑자기 국장님과 비정규센터 생각이 나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요. 우리 같은 사람들 방법을 몰라서 어떻게 해결하나 걱정만 가득했는데, 이렇게 방법을 알려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요라는 말씀에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모 아파트 청소노동자의 휴게공간
모 아파트 청소노동자의 휴게공간

 

대부분 6~70대 고령의 여성 노동자들이 대부분인 아파트 미화 노동자분들. 하루 6~7시간 노동을 하면서 월 130~140만 원이 채 안 되는 저임금에, 청소도구라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탈라치면 주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하고, 용역업체, 관리사무소, 입주민 등 이중삼중의 눈치를 보며 고된 노동을 하시는 분들이다. 아파트 직접 계약이 아닌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다 보니 늘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하고, 때로는 임금을 떼이고, 일하다가 손가락이 변형되기도 하고, 변변한 휴게시설조차 없어 아파트 지하 배수처리 시설에서 식사도 하시고, 용변을 처리할 때도 있으신 그 열악한 환경에서 묵묵히 힘든 노동을 감내하시는 분들께 어찌 보면 센터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너무도 큰 감사 인사를 받았다. 실질적으로 일이 해결되지도 않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방법을 알려준 것만으로도 너무도 감사하다며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따뜻할 때 드셔보라며 쑥떡을 사 들고 오신 그 마음이 황송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틀 뒤 다행히 아니 당연히 미화 팀은 4월 급여와 퇴직금을 받게 되셨다.

아직도 세상은 노동자들이 임금을 떼이고, 일하다 다치고 죽고,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다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당연한’, 그래서 때로는 그 권리조차도 알아서 포기하는 편이 속 편한 세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가장 힘들고, 가장 고된 노동을 하는 분들이 가장 존중받고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그런 것이 당연한 세상이 올 때까지 반장님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쑥떡을 잊지 못할 것 같다.

 

| 최현주(부천시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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