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의 설립과 활동 8

부천시가 일제 잔재 청산을 해야만 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바로 조례 때문입니다. 부천시의회는 20218월에 <부천시 일제 잔재 청산 지원에 관한 조례안>를 제정하였습니다. 조례에 의하면 제2조 제1항에 의해 일제 잔재를 일본 제국주의 식민 통치로 부천시에 남아 있는 유무형의 흔적으로 정의하였으며, 2조 제6항에 의해 청산을 일제 잔재에 대한 연구·조사·교육·홍보·제한 등의 활동으로 정의하였습니다. 즉 일제 잔재를 조사하여 시민들이 알 수 있도록 교육과 홍보를 하는 것입니다.

부천시장은 5년마다 일제 잔재 청산 지원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부천시 일제잔재청산지원위원회>를 설치하여 지속적인 사업을 시행해야 한다는 것을 조례는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의무의 사항입니다. 부천시장과 부천시 담당 부서 공무원들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친일파와 후손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 부천에 있는 친일파 박제봉의 일제 잔재는 독특합니다. 박제봉이 살았던 집과 묘와 함께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일제 잔재 청산에 대해 이해를 잘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후손이 버젓이 살고 있는데 어떻게 박제봉이 살았던 집에 단죄비를 세울 수 있느냐?’라고 하면서 부천지부의 활동을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천지부는 2021년 초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사실은 친일파 박제봉과 후손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친일파 박제봉은 박제봉이고, 후손은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파와 후손과 연결을 하지 않았으며, 후손들에게 반성과 사죄를 요구하지 않으며, 명예를 훼손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친일파 박제봉이 살았던 집 근처에 단죄비를 세우는 사업이 후손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라고 믿는 것은 바로 일제 잔재 청산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며,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제 잔재 청산에 대한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친일파 박제봉의 역사는 후손이나 죽산 박씨의 역사이자 부천시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역사인 것입니다.

 

다른 지역의 일제 잔재 청산의 사례

일제 잔재에도 여러 유형이 있지만, 친일파 박제봉과 관련된 잔재는 살았던 집과 무덤이 있습니다. 두 사례를 통해 다른 지역에서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무덤을 중심으로

 

전주 이두황 단죄비

전북 전주에 가면 기린봉 아래 친일파 이두황 단죄비가 있습니다. 기린봉은 전주 한옥마을에서 바라보면 동쪽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 후백제 견훤이 도읍으로 정했던 궁궐이 있는 곳으로 추정이 되며 동시에 치명자산과 연결되어 천주교 성지로 여겨집니다. 또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들이 잠들어 계시는 군경묘지도 있습니다. 이처럼 기린봉은 전주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신성시되는 산인데 여기에 친일파 이두황이 잠들어 있고 전주시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이두황은 1894년에는 동학농민군을 탄압하였으며, 을미사변 때는 일본 낭인들을 도와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습니다. 1908년에는 전라북도 관찰사에 임명되어 호남 의병을 초토화하는 데 앞장섰으며, 1910년 합병 이후에는 전라북도 도정관을 역임하면서 지방토지조사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습니다. 이러한 적극적 친일 행위로 인해 일제로부터 1915년 다이쇼천황 즉위 기념 대례기념장을, 1916년에는 훈3등 서보장을 받았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는 전주시와의 협의를 통해 이두황 무덤으로부터 365m 아래 시유지에 단죄비를 세웠습니다. 전북지부가 단죄비 내용을 작성하였으며, 전주시가 단죄비를 세우는 장소를 제공하고 단죄비 제작비도 지원하였습니다. 전주시장이 직접 참석하여 김재호 전북지부장님과 단죄비 개막식 행사를 주관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업은 공적인 기관인 전주시가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친일파를 함께 단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제 잔재 청산을 민관이 함께 진행한 사례입니다. 만에 하나 단죄비가 훼손되는 경우 이는 불법행위에 해당이 되며 손해배상 청구와 원상복구까지 할 수 있습니다.

이두황 비
이두황 비
이두황 단죄비
이두황 단죄비

 

춘천의 민영휘 묘

민성기 가옥은 춘천시 동면 장학리의 민영휘 묘를 관리하기 위해 세운 묘막입니다. 1920년대 건축적 가치가 인정되어 1985117강원도의 문화재자료66호로 지정되었으며 유지보수에만 44천만 원의 혈세가 들어갔습니다. 201767일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항단연)는 친일파인 '민영휘' 묘가 있는 '춘천민성기가옥'의 문화재 지정 해지를 강원도청에 요청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대안으로 문화재를 설명하는 안내판에 친일 행적을 제대로 기록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살았던 집을 중심으로

전북 부안 김상만 고택

김상만 고택은 전북 부안군 줄포면에 위치한 것으로 친일파 김성수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입니다. 김성수의 장남인 김상만의 이름을 따서 김상만 고택이라고 하는데, 문화재청은 지난 1984114일 국가민속문화재 제150호로 지정해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2018년 김성수가 친일파로 규정됨에 따라 문화재 지정 취소가 대두되었습니다. 친일파와 문화재 가치가 충돌하였는데 전라북도는 절충안으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문화재위원회, 전북도의회 등의 의견을 고려해 국가민속문화재로 유지하면서 안내판에 친일파 김성수의 행적을 함께 기록하는 것으로 합의를 본 것입니다. 즉 문화재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친일파 행적을 함께 기록하는 새로운 일제 잔재 청산의 새로운 대안을 보여줬습니다.

 

서울 백인제 가옥

백인제가옥은 1977317일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고 있으며 백병원 설립자인 백인제가 소유하고 있어 백인제 가옥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하루평균 수백 명이 방문하는 서울의 명소입니다. 하지만 이 집은 1913년 친일파 한상룡이 압록강 흑송(黑松)으로 지은 집으로 백병원 설립자 백인제 원장이 인수하여 백인제가옥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집을 설명하는 안내판에 친일파 한상룡에 대한 내용이 없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 박종선(민족문제연구소부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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