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의 ‘명화로 보는 색채 심리’ 15

벌거벗은 채 잔뜩 웅크린 여인이 있다. 그녀는 끊임없이 사랑을 찾았고 성이 다른 네 자녀를 키우며 세상의 모진 비난에도 당당하게 버텨냈다. 동양화가인 천경자(千鏡子 1924 2015) 화백은 화려한 채색화로 꽃과 여인과 여행을 소재로 환상적인 세계를 표현했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자신의 슬픈 49년의 삶을 자서전처럼 그려낸 작품이 있다. 작품 속 배경에 가득한 카멜 컬러(camel color, 낙타 색깔)가 주는 효과와 색채 심리를 알아본다.

 

천경자 화백(1924~2015)
천경자 화백(1924~2015)

 

천경자는 1924년 전남 고흥에서 유복한 집안의 맏딸로 태어났다. 194117세에 일본의 도쿄 여자미술전문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동양화(일본화)를 전공했다. 재학 중 1942년과 1943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작품이 연달아 입상하며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귀국 후 결혼해서 두 자녀를 낳았지만, 성격 차이로 이혼했다. 신문기자인 김남중과 만나면서 아이를 가졌다. 6. 25전쟁이 터지자 군대에 입대한다며 헤어지자는 편지 한 통만 달랑 남기고 떠나버렸다.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가족에게 말할 수 없었던 그녀는 배신감에 치를 떨며 아이를 지웠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이혼과 연인의 배신으로 절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졌다. 전쟁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폐병으로 여동생을 잃고 무너져 내렸다. 아버지 사업의 실패로 집안의 경제를 짊어져야만 했다. 한꺼번에 휘몰아친 고통의 짐에 짓눌려 신음하다가 목숨을 끊으려고 약을 먹기도 하였다.

삶의 의지를 불어넣은 뜻밖의 계기를 만났다. 당시 광주역 앞에서 뱀 장사가 파는 우글거리는 뱀을 보며 징글징글한 자신의 인생과 닮았다고 느꼈다. 섬뜩한 뱀의 눈과 마주치자 뱀처럼 독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뱀 그림에 매달리면서 힘든 현실을 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천경자, 「생태」, 51.5x87cm, 종이에 채색, 1951, 서울시립미술관
천경자, 「생태」, 51.5x87cm, 종이에 채색, 1951, 서울시립미술관

 

1951년 부산의 작은 다방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전남일보(현재, 광주일보)를 창간한 김남중과 또다시 만나게 되면서 아이를 가졌다. 35세 뱀띠인 김남중과 애증 관계를 35마리 뱀으로 표현한 작품 생태(生態)로 미술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이 작품을 인상 깊게 본 김환기(당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의 추천으로 1954년 홍익대 동양화과 교수가 되었다. 뱀 화가로 알려지면서 뱀을 수호신처럼 여기고 꽃과 여인을 소재로 한 작품 곳곳에 그려 넣었다. 1955대한민국 미협전에서 작품 ()으로 대통령상을 받고 은관문화훈장등 각종 상을 휩쓸며 명실상부 우리나라 최고의 여성 화가 반열에 올랐다.

김남중과 사이에 두 아이를 두었으나 그의 발걸음이 현저하게 뜸해지면서 파경을 맞았다. 화가로서는 승승장구했으나 사랑받고 싶은 여인으로서는 처참하게 실패한 굴곡진 삶이었다.

 

화실에서 천경자 화백
화실에서 천경자 화백

 

그녀는 1970년대 먹빛 수묵화가 주류였던 미술계에 화려한 채색화로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20년간 재직한 교수직과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로 세계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통해 여인과 꽃 그림에서 환상적인 세계로 탈바꿈했다. 천 화백이 “49세의 자화상이라고 말한 1976년 작품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는 아프리카 탄자니아를 여행했던 기억을 그린 것이다. 130× 162크기의 한지에 광석을 분쇄하여 만든 동양화 안료로 1년 동안 공들여 채색한 대작이다. 작품 속에 만년설이 덮인 킬리만자로를 담았다. 얼룩말과 멧돼지와 가젤이 사자와 친구처럼 평화롭게 어울리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커다란 회색 코끼리 등에 올라탄 벌거벗은 여인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 많은 인생의 굴레를 껴안은 듯 동그랗게 움츠려있다. 슬픔 가득한 49년을 버텨낸 집념이 담겨있다. 수호신처럼 여겼던 뱀과 화려한 꽃장식은 그려 넣지 않았다. 그녀는 자연 친화적인 카멜 컬러로 배경을 색칠했다. 드넓게 펼쳐진 낙타 색깔의 초원에서 따뜻하게 위로받고 마음의 안정감을 찾았을 것이다.

 

천경자, 「내 슬픈 인생의 49 페이지」, 130㎝x162㎝, 종이에 채색, 1976년, 서울갤러리.
천경자, 「내 슬픈 인생의 49 페이지」, 130㎝x162㎝, 종이에 채색, 1976년, 서울갤러리.

 

1991년 희대의 위작 사건이 터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가 소장했던 작품 미인도가 미술관에 걸리자 천 화백은 내 자식이 아니다.”라고 했다. 위작 논쟁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그녀의 의견은 깡그리 무시당했고 법원은 진품으로 판결해버렸다. 이 사건으로 자기 그림도 못 알아보는 치매 화가’, ‘불륜녀등의 가혹한 비난이 용광로처럼 들끓었다. 소설가 박경리마저 고약한 예술가라고 말할 정도였다. 크게 상처 입은 그녀는 붓을 던져버리고, 주요 작품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후 1998년 미국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스트레스성 뇌출혈로 쓰러져 오랫동안 병석에서 지내다가 2015년 향년 91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천경자 화백의 「장미와 여인」(왼쪽)과 위작 논란에 휩싸인 「미인도」(오른쪽)
천경자 화백의 「장미와 여인」(왼쪽)과 위작 논란에 휩싸인 「미인도」(오른쪽)

 

필자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석파정 서울미술관을 찾았다.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전시회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근현대 걸작 140여 점이 즐비했다. 천 화백의 작품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를 감상하면서 필자가 8년 전에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국립공원을 혼자 여행했던 추억에 빠졌다.

세렝게티는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을 촬영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여행 중에 시력이 좋지 않은 코끼리가 코를 휘두르며 나무를 쓰러뜨리는 광경을 마주했다. 사파리 여행을 안내하는 지프 운전사는 시동을 껐다. 괴력의 코에 맞아서 차가 전복될 수 있으니 조용히 하라고 했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잔뜩 긴장했으나 그대로 지나쳐서 서늘했던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아프리카 풍경은 환상적이었지만, 여행하는 내내 외로움과 사투를 벌였다. 세렝게티의 호텔 레스토랑에서 가족이나 친구끼리 온 유럽 여행객이 왁자지껄 떠들며 행복한 만찬을 즐기는 모습이 부러웠다. 넓은 레스토랑에서 쓸쓸하게 식사하는 사람은 필자뿐이었다. 눈치 없는 웨이터가 왜 항상 혼자 식사해요? 친구도 없나요?”라고 정곡을 콕 찔렀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곳을 빠져나와 착잡한 마음을 달래려 석양이 곱게 물든 노을과 길게 펼쳐진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친근하게 다독이는 카멜 색상의 초원을 눈에 가득 담았다. 여행하며 꾹꾹 눌러두었던 외로움과 심란하고 복잡했던 마음이 수그러들었다.

필자는 힘들 때마다 작품 속 웅크린 여인을 떠올린다. 의지의 여인을 바라보며 용기를 얻는다. 카멜 컬러의 물결이 넘실대는 세렝게티의 광활한 초원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럴 때면, 낙원에 있는 것처럼 외로움과 불안이 사라지고 마음이 느긋해진다.

대지의 색깔인 카멜 컬러는 친근하며 심리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정신적인 고통을 완화해주며 피로감도 낮춘다. 카멜 색상이 눈에 쏙 들어온다면 그 색상이 가진 힘을 원하기 때문이다. 검소하고 성실하게 안정된 삶을 누리려는 욕구가 강할 때 찾는 색이다. 이 색상을 좋아하는 사람은 차분하고 신뢰감을 주며 책임감이 강하지만, 보수적이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거나 변화에 더딘 편이다. 남을 시키기보다 자기가 도맡아서 일하며 적당히 넘어가는 무책임한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 편이다.

 

천경자, 「초원Ⅱ」, 105.5x130㎝, 종이에 채색, 1978년
천경자, 「초원Ⅱ」, 105.5x130㎝, 종이에 채색, 1978년

 

브랜드 버버리(BURBERRY)’는 트렌치코트(trench coat)의 대명사다. 1856토머스 버버리가 세운 영국의 명품회사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사령부는 50만 장교의 전투용 트렌치코트를 버버리에 주문했다. 1924년 스코틀랜드의 신분을 나타내는 전통 문양으로 이중·삼중으로 겹쳐 독특한 체크 무늬인 타탄체크로 만든 체크 패턴을 코트 안감의 무늬로 사용했다. 지적이고 고급스러운 느낌의 카멜 컬러 바탕에 독특한 버버리 체크는 브랜드의 상징이 되었다.

세련되고 귀족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카멜 색상의 옷을 화이트와 블랙의 의상과 같이 조합하면 멋스러운 인상을 주고 도시적인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천경자, 「길례언니」, 46×34㎝, 종이에 채색, 1982년
천경자, 「길례언니」, 46×34㎝, 종이에 채색, 1982년

 

걸작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천 화백은 작품 하나하나를 자식처럼 소중히 여기며 혼을 다해 그렸다. 카멜 색상의 초원이 펼쳐진 그녀의 작품에서 따뜻한 엄마의 품을 느꼈다. 포근한 위로와 안정감을 받았다. 올해 918일까지 열리는 석파정 서울미술관의 전시회를 꼭 가보길 권한다. 명작을 조용히 바라만 보아도 풍족한 마음과 용기를 얻을 것이다.

 

| 김애란(화가, 미술 심리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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