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드디어 꽃을 피웠구나. 많이 기다렸단다.’

지난해, 어머니가 홀로 계시는 고향 집 화단에 수선화 뿌리를 묻어두었다. 올해도 꽃이 피었다면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퇴원하신 엄마를 뵈러 고향 집을 찾았다. 차창 너머로 손짓하는 노랗게 핀 수선화가 아름다웠다. 집 화단에는 봉오리가 제법 커졌지만, 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꽃이 피었나부터 살펴보았다. 나의 간절한 바람을 알기라도 했는지 예쁜 꽃을 피운 첫 송이가 너무도 예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고전소설 <심청전>의 주인공 심청이가 연꽃에서 나타났다는 것처럼 신비하고 반가웠다. 가로등 아래 상념에 빠진 듯 얼굴을 숙인 자태가 너무 예쁘고 매력적이었다.

 

사진 출처(위키백과)
사진 출처(위키백과)

 

81세의 엄마는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발을 헛디뎌 오른쪽 무릎이 골절되어 수술을 받고, 석 달 가까이 입원하셨다. 요양병원에서 기저귀를 계속 차고 침대 밖을 못 나가게 한다는 말을 듣고 걱정이 되었다. 병원에서 오래 생활하면 회복 불능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침, 시간이 나서 퇴원하는 날에 맞춰 엄마를 뵈러 갔다.

요양병원에서는 안전에 대한 책임 때문인지 침대 밖을 못 나가게 하고 기저귀를 채워 보살핌을 했다고 한다. 집에서도 기저귀를 하고 계신다. 혼자 지내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입원 전까지 요양보호사 재가 서비스를 받으셨지만, ‘요양 5등급에 해당하여 목욕 서비스를 받고 하루 2시간 30분씩 보호 서비스를 받는다.

엄마가 혼자 지내기는 어려워 보이고 누가 같이 돌볼만한 사람이 없으니 요양원을 알아보자고 했다. 잘 뒤집지도 못하고 일어나려면 양쪽에서 두 사람이 부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엄마는 "요양원 가기 싫다.”라고 하시고, 친구분들은 "한 번 들어가면 죽어서야 나올 수 있다."라며 "네가 어떻게 좀 해봐라.”라고 하셨다.

최근 몇 달 동안 요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면서 실상을 보았던 터라 내가 돌볼 테니 요양원에 가는 것은 보류하자.”라고 말했다. 요양원 생활은 폐쇄된 공간에서만 지낼 수 있도록 설계하여 외부와는 차단된다. 건강보험공단의 지원을 받고 본인이 부담금을 내면 주거와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병원 가는 것 외에는 바깥나들이가 극히 제한적이다. 가족이라고 해도 아무 때나 만날 수 없도록 제한한다. 실내에서 먹고 자기를 반복하다 보면, 스스로 할 수 있는 기능들이 빠르게 퇴화한다. 갇힌 공간에서 활동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화장실은 혼자 다닐 수 있어야 집에 있지, 그거 안되면 요양원 가야 해.”

처음엔 기저귀를 찬 상태로 오줌 누고 싶은 생각이 들면 변기에 앉아 시도해 보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엄마에게 필요한 복지 용구들을 알아보았다. 실내용 의자 변기는 인터넷을 통해 주문하고, 의료기 상사에서 미끄럼 방지 지팡이도 사고, 화장실 변기에 안전 바도 설치했다. 혼자서 용변 보기가 가능하게끔 했다.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움직임이 차츰 나아졌다. 기저귀를 차지 않고 실내 변기에 용변을 보다가, 나중에는 혼자서도 화장실을 다닐 수 있을 만큼 좋아지셨다.

혼자 지내기엔 무리가 있어 보여 건강보험공단에 등급 변경을 신청했다. 심사 나온 분께서 엄마의 상태 등을 살펴보시고 등급 상향 조정을 신청해 보고, 4등급으로 판정받으면재가 서비스·야간 보호를 병행하세요.”라고 알려주셨다. 건강보험공단에 등급 변경을 신청하고 장애인 차량 이지콜도 신청했다. 퇴원하고 2주 정도 지나니까 화장실을 혼자 다니시고, 끼니도 스스로 챙겨 드실 정도로 좋아지셨다. 엄마를 혼자 두고 2주 만에야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요양보호사가 방문하면, 한 끼 식사를 차려주시고 집안의 정리 정돈과 말벗도 해주시지만,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엄마가 지내는 곳에서 직장을 구하고 밤에라도 같이 지낼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실현 가능성은 반반으로 여전히 고민 중이다. 자주 안부 전화를 드려 건강을 살피고, 마음을 편하게 위로해 드린다.

아침 식사는 어떻게 했어요?”

내가 밥하고 챙겨 먹었다. 수선화가 다 피었다.”

밖으로도 슬슬 나가봐요. 건조장 옆에 심은 감나무랑 사과나무 싹 났는가도 봐.”

고향 집에 머무는 동안 적상추, 청상추, 치커리, 쑥갓, 고추, 시금치, 총각무 등 씨앗을 심었다. 과꽃과 코스모스 씨앗도 뿌렸다. 엄마의 친구가 될 것들이다.

수선화, 수선화야! 혼자만 놀지 말고 엄마 방 창문 좀 자주 들여다봐다오.”

 

| 서정선(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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