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의 ‘명화로 보는 색채심리’ 16

허풍쟁이 전과자의 그림에 최고의 화가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는 가난하고 불행했던 삶으로 해외여행 한 번 못 가봤지만, 이국정취가 물씬 나는 정글의 풍경을 25점이나 그리며 찬란한 미래를 꿈꿨다. 그의 작품에 가득 담긴 초록빛 샙 그린(sap green)’의 매력에 대해 살펴본다.

루소는 프랑스 라발에서 가난한 배관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십 대 후반에 일하던 변호사 사무실에서 다량의 우표와 현금을 훔친 죄로 감옥에 가지 않는 대신 입대하였다. 당시 나폴레옹 3세가 멕시코 전쟁을 일으켰고 죄수들은 군대를 선택하기도 했다. 군 복무 5년 만에 부친의 사망으로 제대한 후, 파리(Paris) 센강에서 배의 통행료를 받는 세관원으로 근무했다. 25세 때 15세의 클레망스와 결혼했지만, 7명의 자녀 중 5명을 잃는 비운을 겪었다. 그는 일요일마다 센강의 풍경을 그리는데 매달렸다. 그림은 버거운 현실을 잊게 하는 특효약 같았을 것이다.

 

앙리 루소, 「나 자신, 자화상과 풍경」, 캔버스에 유채, 113x146㎝. 1890, 프라하 국립미술관
앙리 루소, 「나 자신, 자화상과 풍경」, 캔버스에 유채, 113x146㎝. 1890, 프라하 국립미술관

 

그는 1886년부터 10여 년 동안 앙데팡당전()’에 참여하는 것에 사활을 걸었다. 이 미술 전시회는 진보적인 미술가들이 창설했고, 참가비만 내면 심사 없이 누구나 작품을 전시할 수 있었다. 앙리 마티스, 조르주 쇠라, 마르크 샤갈, 빈센트 반 고흐 등 인상주의 이후의 화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루소의 출품작을 본 관계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묘나 명암법과 원근법 등 미술의 기초도 모르고 그렸다는 혹평으로 시끄러웠다. 전시회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발로 그린 초등학생의 그림이라며 출품금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가짜 예금증서로 빚보증을 섰다가 또다시 법정에 서게 되었다. 변호사는 배심원에게 루소의 그림을 보여주며, 치매로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증을 선 것이 무효라고 변론했을 정도다. 결국, 벌금형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19세기 파리는 유럽 문화의 중심이었다. 동물원과 식물원 및 자연사 박물관이 등장했고, 엑스포 등 각종 박람회가 성대하게 열렸다. 그는 파리에 전시된 이국적인 풍경에 흠뻑 빠져들며 박제 동물과 식물 표본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1907년 식물원에서 그림을 그리던 중 귀부인 관람객이 인도 여행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작품 뱀을 부리는 여인을 그렸다. 외국에 나가 본 경험이 없었으나 인도 여행을 했다고 꾸며댔다. 정글에서 흑인 소녀가 피리를 불자 항아리에서 뱀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그렸다며 상상 속의 경험담을 늘어놓았다.

 

앙리 루소, 「뱀을 부리는 여인」, 캔버스에 유채, 169x189.5㎝. 1907, 파리 오르세미술관
앙리 루소, 「뱀을 부리는 여인」, 캔버스에 유채, 169x189.5㎝. 1907, 파리 오르세미술관

 

49세에 새로운 인생 2막을 열었다. 뒤늦게 찾은 화가의 꿈에 매진하기 위해 20년 넘게 다닌 직장을 그만두었다. 쥐꼬리만 한 연금으로 생활이 어려워서 닥치는 대로 일했다. 초상화 주문도 받았으나 닮게 그리지 않았다고 퇴짜를 당하기도 했다. 현실이 녹록하지 않았지만, 하루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세계 최고의 화가가 되어서 명성을 얻을 거라고 굳게 다짐했다. 과대망상증 환자라는 비웃음에도 웅크리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성실하게 노력의 탑을 쌓아갔다.

꾸준함은 기적을 낳았고 성실함은 명성을 가져왔다. 27세의 파블로 피카소는 길거리 고물상에서 5프랑을 주고 루소의 작품을 손에 넣었다. 단순한 표현과 신비로운 색채에 강렬한 자극을 받은 피카소는 64세의 루소를 초대하여 파티를 열고 최고의 화가라고 찬사를 보냈다. 루소는 20세기를 선도하는 젊은 예술가에게 빛나는 존재가 되었다. 독일의 비평가인 빌헬름 우데가 그의 작품에 소박파(素朴波, naive art)’란 말을 사용하였다. 화풍에 구애받지 않고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소박하게 그린 미술 경향을 뜻한다. 그는 마침내 소박파를 대표하는 화가로 명성을 얻었다.

간절히 원하던 명성과 찬사를 얻은 그는 감사한 마음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가로 3미터, 세로 2미터의 커다란 캔버스에 작품 , The Dream을 그려서 1910앙데팡당전에 출품했다. 다채롭고 기묘한 모양의 식물이 사연이 많은 것처럼 빼곡하게 화면을 채웠다. 흑인이 피리를 불며 뱀을 불러내는 소리에 코끼리와 사자와 검은 원숭이가 수풀을 헤치고 등장한다. 정글에 놓인 소파 위에 나체의 여인이 비스듬히 기대어 사자를 가리키고 있다. 마치 루소를 매섭게 비판했던 맹수 같은 비평가들에게 야유를 보내는 것 같다. 그는 정글을 초록빛 샙 그린으로 칠하면서 답답했던 과거의 응어리를 풀고, 멋진 미래를 마음껏 꿈꾸지 않았을까. 자신이 창조한 환상적인 파라다이스에서 휴식과 평화를 누렸을 것이다.

 

앙리 루소, 「꿈, The Dream」, 캔버스에 유채, 204.5x298.5㎝. 1910, 뉴욕 현대미술관 (메인.... 크게)
앙리 루소, 「꿈, The Dream」, 캔버스에 유채, 204.5x298.5㎝. 1910, 뉴욕 현대미술관 (메인.... 크게)

 

작품 은 그의 평생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64세에 소박파를 상징하는 최고의 화가로 인정받았지만, 영광을 누리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1910년 폐결핵과 다리의 괴사 현상으로 파리의 자선병원에서 향년 66세로 눈을 감았다.

샙 그린(sap green)은 갈매나무 열매에서 뽑은 암녹색 컬러다. 이 색은 휴식과 안정과 활력을 준다. 봄이 되면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듯이 새로운 생각과 변화에 도전할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색깔이다.

관계 회복에 도움을 주는 컬러다. 무너진 관계로 마음이 답답하고 스트레스 지수가 높을 때 싫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원활한 인간관계를 원할 때 찾는 색채다. 일상에 지쳤을 때 샙 그린을 바라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여유가 생긴다. 젊음과 건강을 상징하는 이 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긍정적이고 성실하다. 온화하고 언쟁을 싫어하지만, 신념에 따라 움직인다. 평화주의자면서 보수적인 면이 있다.

 

앙리 루소, 「호랑이와 물소의 싸움」, 캔버스에 유채, 170x189.3㎝. 1908, 클리브랜드 아트 뮤지엄
앙리 루소, 「호랑이와 물소의 싸움」, 캔버스에 유채, 170x189.3㎝. 1908, 클리브랜드 아트 뮤지엄

 

샙 그린에는 건강, 자연, 안전, 중립의 뜻이 들어있어서 비영리단체(NGO)나 친환경 경영을 하는 기업에서 많이 사용한다.

커피 애호가를 사로잡는 샙 그린은 '스타벅스 그린이라고도 부른다. 샙 그린 바탕에 하얀색으로 세이렌을 그린 로고는 고급스럽고 화려한 느낌이 난다. 이 로고는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선원을 유혹한 그리스 신화의 요정 세이렌(Siren)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1987년 미국의 하워드 슐츠가 작은 커피점 스타벅스를 인수하여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워냈다. 브랜드의 이름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의 일등 항해사인 '스타벅(Starbuck)'에서 유래했다.

스타벅스의 인기는 압도적이다. 2021년 우리나라에서 매출 23,000억 원을 돌파했다. 매혹적인 세이렌의 페르소나에 끌린 고객이 샙 그린으로 단장한 매장에서 편안함을 누리고 행복을 맛보면서 스타벅스에 애착을 갖는 것 같다.

오래전 필자는 샙 그린 컬러로 마음의 상태를 파악한 적이 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4명의 초등학생이 문방구에서 물건을 훔쳤다. 어느 날, 수상쩍게 여긴 엄마에게 추궁당한 B가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아이들은 스릴을 즐기기 위해 재미로 도둑질했다. 기겁한 엄마들이 소리소문없이 문제를 해결했다. 친구들은 고자질한 B에 앙심을 품고 지속해서 괴롭혔다. 여러 색깔을 보여주며 꼴도 보기 싫은 색이 무엇인지 묻자 샙 그린을 가리켰다. 마음이 꽉 막혀있다는 뜻이었다. 내성적이라서 분노를 표출하지 못하고 억누르기만 하여 스트레스 지수가 높았다. 수업하는 동안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조금씩 감정을 표현하면서 얼굴이 밝아졌다. 새로운 친구도 사귀기 시작했다.

샙 그린이 끌린다면 이 색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의 갈등으로 답답할 때 샙 그린을 바라보면,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해질 것이다. 초록빛 가득한 정글의 풍경을 25점이나 그리며 답답한 과거를 잊었던 루소처럼 샙 그린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좋은 에너지를 가득 충전할 것이다.

 

| 김애란(화가, 미술 심리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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