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1월 중순이었다. 출근했던 남편이 열이 난다며 보건소에 들러 PCR 검사를 받고 일찍 왔다. 그날 저녁, 생기 넘치던 둘째의 움직임이 달랐다. 이마를 짚어보니 체온보다 뜨거웠다. 작년 말부터 심심찮게 밀접 접촉자로 자가격리를 했던 터라 어느 정도 짐작이 되었다. 불청객 코로나19의 첫 번째 방문이었다.

하루 만에 우리 가족은 코로나 확진자와 자가 격리자로 나뉘었다. PCR 검사 결과 메시지를 받고 먼저 알아본 것은 가족 간 격리 기간의 최단기화였다. 앞서 경험한 확진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남편과 둘째 아이를 생활치료실로 보내고 딸과 자가격리를 시작했다. 1PCR 음성 결과를 통보받았음에도 잠복기에 대한 걱정은 멈추지 않았다. 개학을 코앞에 둔 딸은 학교에 코로나 확진자로 알려질까 두려워 평소보다 예민한 한 주를 지냈다.

바깥 외출이 금지된 일주일은 길고 지루했다. 집 앞 마트도 자유롭게 갈 수 없고 가족과 생이별했던 시간을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격리 종료를 하루 앞두고 PCR 검사를 받았다. 이튿날 최후통첩과도 같은 음성문자를 받고 나서야 불안으로부터 풀려난 듯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이 코로나19에 확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담임 선생님과 가까웠던 아이의 자리와 학급회장으로 선출되어 대화 시간이 잦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코로나19의 불안은 다시 수면으로 올랐고 아이의 낯빛 먼저 살폈다.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에서 기우임을 알 수 있었으나 잠복기를 생각하면 쉽사리 마음 놓기도 어려웠다. 아이는 평소처럼 줄넘기 학원에 갔고 마칠 시간쯤 데리러 갔다. 한 시간 남짓 후 만난 아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했다.

, 요놈이 다시 왔구나.’

오미크론의 급확산 때문에 증상이 있다는 것만으로 PCR 검사를 할 수 없었다. 자가 키트 검사 결과가 양성일 때만 PCR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음성. 아이의 상태로 보아 믿기 어려운 결과였다. 갈수록 증상이 심해지는 아이를 보며 어서 아침이 오길, 그리고 병원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결과는 역시나. 코로나19의 두 번째 방문이었다.

동전 뒤집듯 아이의 생활이 바뀌었다. 생활 반경은 달랑 아이의 방 한 칸. 보이지 않는 빨간색 통행금지 테이프라도 둘러싸인 듯 아이 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뜸해졌다. 화장실 이용 시간을 제외하고는 방에서만 지냈다.

아이는 삼일을 꼬박 앓았다. 입맛도 없는 데다가 어지럽고, 구토 증상이 있어 앓는 동안 잠만 잤다. 나흘째 되던 날에야 조금씩 기운을 차리더니 먹는 것도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나아졌다. 천천히 돌아오는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았고 이따금 닫힌 방문 너머로 목소리도 들렸다.

혼자 자는 게 무서웠는지 남들 자는 새벽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방문을 열어보았다. 격리하면서 엄마와 멀어진 것 같아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단다. 옆에서 밥도 먹고, 자고 싶다고 했다. 방에 누워 해가 뜰 때까지 뜬눈으로 지새웠던 이야기를 숨넘어갈 듯한 울음소리로 들려주었다. 어릴 때부터 지독한 엄마 껌딱지로 지냈던 아이다. 지금의 시간이 낯설고 외로웠을 것이다.

작은 체구가 흔들렸다. 안쓰럽고 측은한 마음에 한쪽 끝이 저릿했다.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자가격리를 끝내자고 했지만, 식구에게 옮기는 것이 더 속상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엄마 옆에 있고 싶은 마음과 가족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저울질하는 듯했다. 격리 기간은 7일이지만, 5일 만에 끝냈다. 예전처럼 볼을 비비고 온기를 나누며 엄마 옆에서 잠을 잔 아이의 얼굴이 한결 가볍고 편안해 보였다.

어제 너무 잘 잤어. 엄마 옆에서 자니까 잠이 너무 잘 오더라. 꿀잠 잤어.”

아이의 말에서 일상의 행복이 무엇인지 깊이 느껴졌다.

두 번이나 찾아온 불청객 코로나19. 요놈, 요놈 아주 고약하고 괘씸하다. 두 번씩이나 찾아온 것이 미안했는지 잊고 지냈던 일상의 행복, 가족 간의 사랑과 온기가 특효임을 알려주고 떠났다. 두 번이나 찾아온 불청객에도 끄떡없던 나, 사람들은 슈퍼 면역자라며 전염되지 않은 것이 대단하다고 했다. 가족의 쉴 새 없는 부름과 사랑 덕분이었다. 그래서, 또 와도 되겠냐고? 그건 아니다. 세 번은 너무하다. 요놈, 요놈, 고약한 놈! 세 번은 절대 안 될 일이다.

 

| 정수진(여월중학교 교사)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