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멸망 일주일 전, 뭐 먹을까?』 / 신서경 글 ‧ 송비 그림 / 푸른숲

어제 해가 동에서 떠서 서쪽 하늘로 넘어갔다. 궁금했다. 예전에는 해가 어떻게 움직였을까 싶어 인생의 연수가 적잖이 쌓인 분께 여쭤본다. 당신이 어렸을 때도 해는 동에서 떠서 서로 졌다고 하신다. 아마 오늘도 해는 그렇게 움직이겠지. 이렇게 수십 년, 수백 년 일정한 현상을 보통 과학적 사실, 진리라고 부른다. 또 과학적 사실에 기초하여 우리는 내일도 해가 뜰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인생의 계획을 그려보고 꿈을 찾아 도전할 계획을 세울 때, 우리는 내일이라는 시간이 나에게 있다는 점을 전제한다. 미래에 대해 장담할 이가 아무도 없음에도 우리는 동해 수평선 너머로 해가 떠오르며 또 하루를 시작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렇게 당연한 일이기에 주어진 하루가 선물로는 도통 느껴지지 않는다. ‘내일이 온다라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사실이고 언제나 변하지 않는 상수이다. 하여 우리가 희망을 노래할 때 고려할 지점이 전혀 아니다.

오늘 일정이 있어 중환자실에 누워 계신 아버지 면회를 하지 못하고 서둘러 출근했다. 지나가는 길목에 병원이 있어 죄송한 마음에 병원 건물만 한번 올려다보고 지나갔다. 어제 생각했던 내일이 오늘이 되었다. 아이들 등교를 시키고 오늘은 면회 시간에 맞춰 아버지께 가야지 하면 돌아오는 길에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았고, 10분 후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다시 받았다. 나의 내일은 오늘이 되었지만, 아버지의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았다. 내일이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은 아니구나 하는 사실을 제대로 알았다. 마지막 순간을 늘 염두에 두고 살 수는 없다. 또 그런 삶은 우울할 것이다. 하지만 가끔 멈춰서 내일이 없는 하루를 생각하는 것은 오늘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살에 애정을 북돋우는 일이 아닐까 싶다.

 

 

지구 멸망 일주일 전, 뭐 먹을까?라는 제목에서 이런 진지함을 예상하지는 않았다. 인생의 마지막 식사, 최후의 식사로 선택할 만큼 가장 사랑하는 음식 이야기가 유쾌하게 그려지겠지 생각했다. 표지의 그림 어디에도 심각하거나 슬픈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보통 지구 멸망 영화를 보면 멸망 직전 인류가 개과천선을 한다든지, 슈퍼 영웅이 나타나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온 인류를 살리지 않는가? 그리고 반성하고 착하고 선하게 살아가는 시즌2의 인류가 그려지고, 최소한 순수한 새로운 인류가 살아남거나 태어나 희망을 보여 주면서 마무리가 된다. 이 만화의 결론은 비밀이다. 상상에 맡기면서 읽어 보시길 바란다. 물론 마지막 만찬을 진행하고 만찬에 초대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음식이 준비된다.

음식 이야기지만 나에게는 음식 이야기만이 아니다. 멸망의 이유가 충격적이다. 글을 쓴 신서경 님은 지구 멸망의 원인을 이렇게 말한다. ‘최후를 상상한 우리들은 한참 헛짚은 거다. 바이러스도, 좀비도, 외계인 침공도 아니었다.’ ‘지구가 그냥 멈췄다.’ ‘지구가 우릴 거부한 것이다.’라고 한다. 멸망 원인으로 싱거울 수 있지만, 뒤통수를 맞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당연히 내일이 오리라 생각했는데 오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거다. 탄생 이후 한 번도 쉬지 않았던 자전과 공전을 멈춰버린 지구. 그것이 멸망의 원인이다. 그리고 이제 멸망까지 일주일 동안 먹방 유튜버인 봉구를 중심으로 친구와 이웃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일상이 멈추고 내일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공황에 빠진다. 태풍의 중심, 태풍의 눈에 있는 듯 봉구와 이웃이 함께 만찬을 한다. 지구 멸망의 순간을 맞는 만찬 자리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지구 멸망이라는 사건이 아니면 한자리에 모일 일 없는 조합의 이웃들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멸망 전에 반드시 만나야만 했던, 그리고 이야기를 나눠야 했던, 풀고 갈 마음의 숙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가볍게 집어 읽지만, 책을 덮을 때는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독자들은 그분과 함께 뭘 드실까 궁금하다.

 

| 남태일(언덕위광장 작은도서관 광장지기)

 

재배포를 환영합니다. 사진 및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문의바랍니다.